네 벗이 사는 집
허균
내가 사는 집 이름을 사우재(四友齋)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내가 벗하는 이가 셋이고 거기에 또 내가 끼니 합하여 넷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세 벗이란 것은 오늘날 생존해 있는 선비가 아니고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옛 선비들이다. 나는 원래 세상일에 관심이 없는데다가 또 성격이 제멋대로여서 세상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꾸짖고 떼를 지어 배척하므로, 집에는 찾아오는 이가 없고 밖에 나가도 찾아갈 만한 곳이 없다.
그래서 스스로 이렇게 탄식했다.
“벗은 오륜(五倫)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는데 나만 홀로 벗이 없으니 어찌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벼슬길에서 물러나 생각해 보았다. 온 세상 사람들이 나를 더럽다고 사귀려 들지 않으니 내가 어디서 벗을 찾을 것인가. 할 수 없이 옛 사람들 중에서 사귈 만한 이를 가려내서 벗으로 삼으리라고 마음먹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는 진나라 처사 도연명이다. 그는 한가롭고 고요하며 작은 일에 대범하여 항상 마음이 편안했으니, 세상일 따위는 마음에 두지도 않았다. 그래서 가난을 편히 여기고 천명을 즐기다가 죽었다. 그의 맑은 풍모와 빼어난 절개는 아득히 높아 잡을 길이 없으니, 나는 깊이 흠모만 할 뿐, 그 경지에 미치지는 못한다.
그 다음은 당나라 한림 이태백이다. 그는 뛰어나고 호탕하여 온 세상을 좁다고 여기고, 임금의 총애를 받는 귀인들을 개미 보듯 하며 스스로 자연 속에서 방랑했다. 그런 그가 부러워서 따라 가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다.
또 그 다음은 송나라 학사 소동파이다. 그는 허심탄회하여 남과 경계를 두지 않으므로 현명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 귀한이나 천한 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더불어 즐기니, 유하 혜가 자기의 덕을 감추고 세속을 좇는 풍모와 같은 데가 있다. 내가 본받으려 하나 아직은 그리 되지 못하고 있다.
이 세분의 군자는 문장이 천고에 떨쳐 빛나지만, 내가 보기에는 문장은 그들에게 취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내가 취하는 바는 그들의 인품에 있지, 그들의 문장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이 세 분 군자를 벗 삼는다 할 것 같으면 굳이 속인들과 함께 옷소매를 맞대고 어깨동무를 하며, 또 소곤소곤 귓속말을 할 것도 없으며,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친구의 도리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나는 이정(李楨)에게 명하여 세 군자의 초상을 그리게 하고, 내가 찬(贊)을 지어 한석봉에게 해서(楷書)로 쓰게 했다. 그래서 내가 머무는 곳이면 반드시 그 초상을 좌석 귀퉁이에 걸어 놓으니, 세 군자가 엄연히 서로 마주보고 품평하며 마치 함께 웃고 이야기하는 듯하고, 더욱이 그 인기척 소리까지 들리는 듯하여 쓸쓸히 지내는 나의 생활이 괴로운 줄을 거의 알지 못한다. 이렇게 하여 나도 비로소 오륜을 갖추었으니, 사람들과 사귀는 것은 더욱 탐탐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아, 나는 본디 글을 못하는 사람이라, 세 군자의 뛰어난 문장에도 따라가지 못한다. 게다가 성격마저 거칠고 망령되어 그런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바이다. 다만 그분들을 존경하고 사랑하여 벗으로 삼고자 하는 정성만은 귀신을 감동시키고도 남음이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그런지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고 하는 것도 모르는 사이에 그 분들과 서로 일치되는 바가 있다.
도연명은 팽택의 수령이 되어 80일 만에 관직을 그만두었고, 나는 세 번이나 이천 석을 받는 태수가 되었으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번번이 배척받아 쫓겨나고 말았다. 적선(謫仙) 이백은 심양과 야랑으로 귀양 가고, 소동파는 대옥과 황강으로 귀양 갔으니, 이는 모두 어진 이가 겪은 불해이었다. 그런데 나는 죄를 얻어 형틀에 묶여 곤장을 맞은 뒤 남쪽으로 귀양을 갔었으니, 아마도 조물주가 장난을 쳐서 그들과 같은 고통만은 맛보게 하면서도 주어진 재주와 성품만은 갑자기 바꿀 수 없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하늘의 복을 받아 전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되었으니, 관동 지방은 나의 옛 터전으로, 그 경치며 풍물이 중국의 시상산, 채석강과 견줄 만하고, 백성은 근실하고 땅은 비옥하여 또한 중국의 상숙현과 양선현보다 못지않으니, 마땅히 세 분 군자를 모시고 벼슬을 모두 버리고 경포 호숫가로 돌아간다면, 어찌 인간 세상에 한 가지 즐거운 일이 되지 않겠는가? 저 세 분 군자가 안다면 역시 즐겁고 유쾌하게 생각하실 것이다.
내가 사는 집은 한적하고 왜져서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으며, 오동나무가 뜰에 그늘을 드리우고 떨기로 난 대나무와 들매화가 집 뒤에 줄지어 심어져 있으니, 그 그윽하고 고요함은 꽤 즐길 만하다. 그런 중에 북쪽 창에다 세 군자의 초상을 펴놓고 분향하고 읍을 하는 생활을 한다. 이에 편액을 사우재라 하고, 그 연유를 위가 같이 기록해 둔다.
신해년(1611년) 2월 사일(社日)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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