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화

오쇼의 장자강의 -대자유의 길- 중에서

미송 2010. 4. 9. 07:53

“궁수가 재미로 활을 쏠 때는 그의 온 기술을 다해서 쏜다.”  - 장자(莊子)
  

독일 철학자 오이겐 헤리겔은 명상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 일본에서는 명상을 가르치기 위해 온갖 방법들을 사용한다.
활쏘기도 그중 하나다. 헤리겔은 원래 완벽한 궁수였다.
그는 백발백중이었으며, 한 번도 과녁을 빗나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 궁도를 통해 명상을 배우고자 동양의 스승을 찾아갔다.

배우는 데 3년이 지나자, 헤리겔은 그것이 시간 낭비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스승은 계속해서 그가 활을 쏘아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스승은 헤리겔에게 말했다.

“그대가 활을 쏘지 말고, 화살로 하여금 스스로 날아가게 하라.
화살을 겨냥할 때, 그때 그대는 사라져야 한다. 화살로 하여금 스스로
겨냥하게 하라.“

이것은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서양인에게는 더욱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화살이 스스로 날아가게 하라니 대체 무슨 뜻인가?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 헤리겔은 활쏘기를 계속했고, 한 번도 과녁을 빗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스승은 말하고 있었다.

“과녁은 결코 과녁이 아니다. 그대 자신이 과녁이다. 난 그대가 과녁을 맞추는가
아닌가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기계적인 기술에 불과하다. 난 그대를 보고 있다.
그대가 그곳에 있는가 없는가를. 재미로 쏘라! 그것을 즐기라. 자신이 결코 과녁에서
빗나가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말라. 편안히 하라. 그리고 화살이
스스로 날아가게 하라.“

헤리겔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노력하고 노력했으며,
스승에게 되풀이하여 말했다.

“나의 활쏘기는 백발백중인데 왜 나한테 증명서를 주지 않는 겁니까?”

서양인의 마음은 언제나 결과에만 관심이 있다. 그리고 동양에서는 그
결과가 아니라 시작에 더 관심이 있다. 동양의 마음에는 결과란 쓸모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작에 있으며, 궁도에 있는 것이지
과녁에 있지 않다. 그래서 스승은 말했다.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

헤리겔은 완전히 실망해서 떠날 것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다면 전 가야만 하겠습니다. 3년이란 긴 시간을 허비했는데,
전 얻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은 항상 그것이 아니라고만
말합니다. 그러나 전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떠나는 날 그는 스승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 스승이 다른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곳으로 갔다. 이날 아침 헤리겔은 스승의 가르침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떠날 예정이었고 모든 계획을 포기했다. 그래서 그는 스승이 어서
끝마쳐 그에게 작별을 고하고 떠나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처음으로 그는
스승을 바라보았다. 3년 만에 처음으로 그는 스승을 바라보았다.
실제로 스승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화살이 저 스스로
날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스승은 심각하지 않았다. 그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재미로 가르침을 행하고 있었다. 거기 아무도 과녁을 맞추는 것에 관심을 두는 주인공이 없었다.

에고는 언제나 과녁 지향적이다. 재미는 이르러야 할 과녁이 없다. 재미는, 화살이 활을
떠나는 그 시작에 있다. 그것이 날아가는 것. 그것은 우연적인 것이다. 그것이 과녁에
맞는가 아닌가는 관계없는 일이다.

심각하지 않을 때 그대는 휴식한다. 그곳에 진정한 그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