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바그다드 카페

미송 2010. 12. 16. 00:05

 

 

 

흙먼지 휘날리며 최고 속도로 달리는 트럭마저 드문 적막한 고속도로변의 한 작은 카페.

하늘아래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녹여버릴 기세로 작열하던 태양의 세(勢)도 기울고 오늘도 역시 다르지 않은 흔한 하루를 분주하게 달려온 갑남을녀는 삶의 권태와 허무와 허전함을 안고 카페에 찾아든다. 낡지만 익숙한 카페에서는 하루의 '피로'와 그 피로와는 상관없이 누적된 '공허'를 달래고 채워줄 치료약으로서의 농도 깊은 카페인이 제조되고 있다.

 

'coffee machine'이라는 주문이 유난히 귀에 들어와 박히는 주제곡 calling you.

나른함이 유혹적인 Jevetta Steele의 목소리는 황폐한 사막의 일부분으로 닮아 가는 우리들에게 바그다드 카페에 들를 것을 끈질지게 청한다. 삶에 무기력하고 흐르는 시간이 덧없다고 느껴지는 어느 날이라면 혼자서라도 바그다드 카페를 찾아오라고. 브렌다가 준비한 진한 커피와 야스민이 선물하는 마술쇼가 당신을 반길 것이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는 지리멸렬한 일상에 유쾌한 웃음과 따뜻한 감동의 파문을 만들어 내는 신선한 돌팔매질이 있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는 중년의 낯선 두 여자가 손님과 주인으로 만나 처음에는 경계하다 여러 번의 부딪침을 통해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여행 도중 남편과 대판 싸우고 캘리포니아 사막에 홀로 남은 독일 여성 야스민. 자신의 몸을 추스르는 것만으로도 버거워보이는 거구의 그녀는 가방을 힘겹게 끌며 정처 없이 사막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누가 봐도 이방인으로 보일 만큼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의 눈을 하고있다. 그 길의 끝에는 하루에 한 두 대의 차가 유일한 주유소와 다 쓰러져가는 모텔과 허름한 카페를 운영하는 브렌다가 있다. 그녀 역시 철없고 불성실한 남편, 살과 크게 다투고 난 후였고 급기야 살은 시위하듯 집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모래바람 이는 사막의 황량함을 정면으로 맞서고 앉아 있는 황폐한 표정의 브렌다는 먼길을 걸어온 야스민보다 더 지쳐 보인다. 야스민은 바그다드 모텔에 묵기로 하는데 브렌다는 어쩐지 그의 등장이 탐탁치 않다. 그도그럴것이 야스민의 출현은 고여있는 바그다드를 뒤흔드는 새로운 변화의 전조였다.

 

그 곳에 야스민과 함께 우리가 발을 딛었을 때, 커피도 맥주도 마실 수 없는 이름뿐인 카페 바그다드에는 삶의 덧없음과 상실감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다. 한 때 할리우드에서 영화세트를 그렸던 루디, 바그다드에 잠시 쉬어 가는 남자들에게 문신을 새겨주는 데니, 그리 할 일이 많아 보이지 않는 카페 종업원,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살, 피아노에만 매달린 채 자신의 아이는 돌보지 않는 아들 살라모와 철없는 딸 필리스 그리고 이들에게 삶의 공간 바그다드를 제공하는 브렌다. 그들은 서로 적당히 거리를 두고 불편하지 않을 무관심 속에서 공존한다. 브렌다를 지배하는 삶의 무게와 외로움의 깊이는 사소한 불합리에도 지나치게 공격적이 되거나 방어적인 성향으로 나타나고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이유 있는 혹은 이유 없는 난폭하기까지 한 거친 성격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태생적인 너그러움인지, 외지인의 자유와 거리낌없음인지 야스민은 기꺼이 먼저 다가감으로 상대의 고독을 껴안는다. 그녀의 순수한 노력은 문화 정서적 차이와 언어의 장벽에서 기인했을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과 둔한 행동들마저 오히려 귀엽게 보여 웃음 짓게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그다드카페 사람들은 야스민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게 되고 어느 날, 브렌다의 상대적 박탈감과 외로움은 폭발하고 만다. "당신이 원하는 게 뭐야? 당신 아이하고나 놀아!" 주인이라는 우월한 위치의 당당함으로 빼앗긴(?) 가족의 관심을 찾아오려는 브렌다. "난, 아이가 없어요." 영문을 몰라하며 눈물짓는 야스민을 홀로 남겨두고 방문은 거세게 닫힌다. 잠시 후 사과의 마음을 전하는 브렌다는 방문을 여는 것으로 마침내 야스민에게 쌓아올렸던 벽을 허문다.브렌다의 얼굴이 부드러워지자 바그다드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그늘지고 습했던 바그다드카페에 햇살이 스며들듯 생기 있는 피아노 연주가 퍼지고, 갈색물을 마시며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사람들은 진한 커피향을 즐기며 유쾌한 웃음소리를 되찾는다. 손님이 아닌 '가족'으로 카페에 있는 야스민은 사람들 사이에서 마술로 과자와 동전과 꽃을 만들어 선물함으로써 그들의 노곤한 하루를 위로한다. 바그다드 카페의 신비한 마법은 사막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타고 바깥세상으로 퍼지게 되고 세상 속의 고독하고 지친 영혼들은 휴식을 찾아 '사막의 오아시스'에 몰려든다.

 

 

 

너무나도 유명한 주제곡 calling you의 느낌으로 막연히 상상만 하던 바그다드 카페를 처음 찾던 날은 숨겨놓고 혼자서만 간직하고픈 소중한 보물 하나를 발견한 느낌이었다.(물론 다음 순간 좋은 사람들과 나눌 것을 생각하지만)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는 calling you 특유의 가라앉은 나른함에서 연상할 수 있는 단조로움 일색을 파괴하는 새로움과의 조우, 대부분 우리의 삶이 지루한 모노톤의 반복일지라도 노력여하에 따라 곳곳에 수채화를 그릴 수 있는 가능성이 포진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성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누구나 브렌다와 야스민의 두 모습을 함께 가지고 있다. 초반의 위악적인 브렌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필자는 브렌다쪽 성향이 우세한 게 아닌가 싶다. 동시에 진한 커피로 대변되는 열정과 즐거운 환상을 꿈꾸는 능동적인 야스민의 기질이 꿈틀거림을 느낀다. 이성적으로는 늘 따뜻한 인간성과 감동 있는 유머를 삶의 최고가치로 여기고 있지만 대부분 필요이상으로 방어기재를 레디고 상태로 유지하고 다소 공격적인 태세를 취하게 된다. 자가진단하건데 브렌다의 긴장감에 휴지기를 명령하고 야스민의 여유에 왕성한 활동력을 고취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바그다드카페>는 브렌다와 야스민을 통해서 단순 명쾌한 진리를 지적하고 있다. 한 사람만 마음의 문을 닫아도 두 사람 사이에는 벽이 쌓인다, 반대로 한 사람이 먼저 다가가도 둘 사이의 거리는 좁혀진다는. 다른 듯 같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이 두 가지가 우리의 삶을 달라지게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월간 change ME> 2002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