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안희선<거품, 무표정한>

미송 2011. 1. 31. 23:33

거품, 무표정한 / 안희선

부풀어 오른 빵에서 사람들의 식욕이 만들어 낸
이스트(yeast)의 효과를 보듯이,
거칠게 부글거리는 삶의 방울들은 한없이 가벼운
존재로의 효과라도 있는 것일까
인파가 넘치는 길목에서 안겨지는 노오란 현기증은
위태한 하루의 어지러움을 몽땅 실어 나르고,
거리엔 무심한 것만큼 슬픈 사람들
몸 속의 환상도 희미해지는 계절처럼 처량한 것일까
영화의 장면이 바뀌듯, 잃어버린 휴대폰이 멀리서
삐삐거리며 그리움 찾을 때마다 탐색의 비명으로
눈 앞에 드리워지는 주름진 커튼
그래도 의외롭게 나오는 편안한 웃음은 푸석한 삶에
도대체 어떤 효과라도 있는 것일까
아무도 모르게 홀로 늙어가는 도시의 가로수들
지워지는 추억으로 하얗게 탈색된 그들의 껍질 만큼이나
측은한 어느 중년의 느릿한 하루가 귀가 길 술 한잔에
몸 담그는 피곤함은 또 어떻게 흔들려야 하는
중심의 효과를 말해야 하는 것일까
한때는 희망으로 불리우던 것들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
그래도 아직은 눈감기 싫어 주걱주걱 형용의 언어를
긁어모아 차가워지려는 몸 안의 피를 돌리지만,
서쪽으로 사라지는 햇살은 언제나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요구하고 하루 내내 달구어진 존재로서의 불안은
기약없는 내일을 향한 외로운 수면
우리가 가꾸어 온 삶의 나날들이 기실 어색한 행복을 가장했을 때,
사라져가는 날들은 더 이상 우리를 기억 못하고
그래서, 진실로 상실의 효과는 가장 커지는 것일까
갈 길은 항상 아득하고 지나 온 인생은 추억 속에 부재 중
이제, 삶의 방울들로 꺼져가는 거품은 아무런 표정이 없다


 

<시감상>
지표(指標)를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 아이러니하게도 그 역력함의 배경은 잿빛이다. 피톨 속 한 방울 피마저 앗아가려는 저녁 태양 역시도 회색빛이다. 시 어느 구석을 살펴봐도 칼라플하다는 말은 가당치 않다. 왜 저토록 우울한 풍경을 그렸을까. 끝없는 길 위에서 중년의 남자가 묻는다.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 무엇을 위해 아찔함을 견뎌야 하는가, 어떻게 흔들려야 중심을 잡을 수 있는가. 한 잔 술잔 속에서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맹목적(盲目的)인 시간들은 맹신적(盲信的)인 삶과도 흡사하다. 그 안에 보람이란 없다.

주인공은 이스트로 부풀려진 빵맛조차 잃은 채, 사금파리가 된 언어들을 긁어모은다. 주걱으로 밥 대신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은 언어들을 득득 긁는다. 불안의 개념을 정리하기 위해, 아니면 생의 행복했던 지점을 되짚어 보기 위해서 였을까. 그러나 물방울로 사라지고야 말 인생이 한갓 거품일 뿐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걷어낼 필요도 명분도 없는 거품. 우리도 그 거품의 일부가 아닐까. 화자는 더 이상의 질문을 그친 채, 빛과 어둠의 경계를 벗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무표정은 투명함도 칙칙함도 아니다. 그 어느 낮과 밤도 아니다. 미지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을 담은 표정일 뿐. 

 

개구즉착(開口卽錯)의 감상을 접으며, 허물을 벗어놓은 남자의 자리를 살핀다. 오래된 아픔으로 분만한 오늘 안에 '희망'이란 주술(呪術)하나 걸어 둔다. (오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