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정현종<시간의 게으름>

미송 2011. 2. 19. 12:06
    시간의 게으름 / 정현종

     

     

    나, 시간은,
    돈과 권력과 기계들이 맞물려
    미친 듯이 가속을 해온 한은
    실은 게으르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 속도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보면
    그건 오히려 게으름이었다는 말씀이지요)

    마음은 잠들고 돈만 깨어 있습니다.
    권력욕 로봇들은 만사를 그르칩니다.
    자동차를 부지런히 닦았으나
    마음을 닦지는 않았습니다.
    인터넷에 뻔질나게 들어갔지만
    제 마음속에 들어가보지는 않았습니다.

    나 없이는 아무것도
    있을 수가 없으니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실은
    자기 자신이 없습니다.
    돈과 권력과 기계가 나를 다 먹어버리니
    당신은 어디 있습니까?

    나, 시간은 원래 자연입니다.
    내 생리를 너무 왜곡하지 말아주세요.
    나는 천천히 꽃 피고 천천히
    나무 자라고 오래 오래 보석 됩니다.
    나를 <소비>하지만 마시고
    내 느린 솜씨에 찬탄도 좀 보내주세요.

    1965년 현대문학 등단한 정현종(鄭玄宗 1939년 12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서울 출생으로 대광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고 1982년부터 2005년까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일했다


    <시감상>
    나와 시간 사이 점 하나가 긴장감을 늘린다. 기계와 동일화된 방황을 잃어버린 마음이요 잠으로 표현한 시인은 원시적 창조를 해체시킨 경험이 있었을까... 혹시 나처럼? 아름다운 인간이란 문명에 오염된 슬픈 짐승이라서 타인을 유희적 대상물로 전락시키고 결국은 자기조차 닫아 버리기 일쑤다. 나를 가장 많이 소비해왔던 사람은 누구일까. 뒤늦게야 제 정신이 돌아온 듯한 질문이다. 절대자의 공간에도 허방은 있으므로 이제 나, 시간은 분리와 조립을 거듭하며 자연으로 돌아가려 한다. 시간을 타이른다. 게으른 시간들이 파먹은 생살은 자연의 품 안에서만 부활할 수 있기에, 돌멩이 하나로도 자신을 잊고 하루종일 즐겁게 놀 수 있는 아이로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시가 말하고 있다.

    (2007, 오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