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거울놀이 외

미송 2011. 3. 5. 18:00

 
에곤 실레(이중 자화상 1915)

거울놀이

 

눈 뜬 후 첫 세상을 대할 때의 꽃들처럼
아침 새들처럼 거울 속 얼굴이
웃는다 따라 웃는다 연둣빛 나무가
지난해의 이파리 색을 묻는다
빨간 잎보다 누런 잎이 더 좋아요 나는
평범한 하늘처럼 대답하면
수맥 문을 닿았던 잎들이 물기를 나르는 시간
추억 무늬 갈피갈피 즐거움을
한 뼘 샛길을 비추인다
도서관 골목 놀이터에는 거울이 많아요
크로키한 얼굴도 참 다양해요
그러니 아빠 제발 절 내어 쫓지 마세요
수만 개의 팔랑이는 거울들이 뒤집힌다
햇살의 반사를 고지식하게 삼켜버린
상처의 실밥들이 올올 천개의 빛을 뿜어낸다
구멍 속으로 들어가시는 아빠
뒷모습도 비춰줄께요
제 온전한 손거울 속에선 허전한 아빠 모습도
따뜻해질 거예요 굴절 투성이 이중 자화상이
거울에 비치면서 물기가 올라간다
거울 속 나도 따라 훨-

 

 



질문 있어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잠간, 푸른 하늘 은하수라니요
낮에도 은하수가 뜨나요 이상하게도 저는 이런 질문하는 학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동
해의 철썩이는 파도 백령도 절벽을 때린다 할 때의 표현처럼 초보 소설가의 경험없는 문장
처럼 잘못된 노랫말을 잘못된 사랑을 무심코 노래하는 자들을 무어라고 이해할까요 동요
를 부르는 아이들에게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메타포야 하면 알아들을까요 근거 없는 가사들
을 한번만 살펴보세요 전설의 토끼까지는 받아들일게요 은하수는 검은 하늘에만 뜹니다
그믐밤엔 달이 없습니다 부슬부슬 비 내릴 뿐입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두 남자가

시인 김수영은 다음 시를 쓰기 위해 여태까지의 시에 대한
사변(思辨)을 모조리 파산(破算)시키거나 파산 시켰다
고 생각하라고 바꾸어 말해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
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라
고 역설했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시(詩)이고 시인의 수행과정이라는 뜻인데
대륙적 기질의 이 말(言)에 오금이 저린다
시인은 노가다꾼인가 2%의 체력이 모자라 사라진
장수와 달리 얼마나 튼튼해야 하는가

온몸으로 시를 쓰라니,

머리도 사지도 잃고 몸통만 남아
온통 몸통으로 뒹굴고 뒹굴어서
강물이 가자는 대로 내리꽂혀서
여울물 맴돌려도 거역할 수 없는
님, 당신 눈빛이 시(詩)라고 박장락도 말하니
거칠은 입술과 완급을 조절할 줄 아는 눈빛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고 시의 형식이라고
죽어서도, 등신불이 되면서도 말을 거는 시인들,
그 노역의 몸을 빌어 태어나는 결핍의 언어들이여
슬프고도 화려한 승천의 무덤들이여
열정에 서식하는 너희 단물과 쓴물이여!

 

 


핏덩이 버리고 간 어머니 찾아
십팔 년 만에 캘리포니아로 날아간 오빠
그 곳 언어가 무척 어려웠다는데
오스트레일리아에 가면 비엔나가 있고
다이아몬드로 폭탄을 만들고
다이너마이트로 목걸이를 만들고
호모 사피엔스가 게이의 시초였다고 그래서
인류최초의 섹스는 동성애였다고 말했다
지기 싫어하는 오빠의 여친도
오빠가 선물해 준 화장품을 바르며
크리미아 전쟁이 골드크림을 얻기 위해 터졌고
6.25동란은 동학란이고
한국동란은 동족상쟁이었으며
이라크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라고
맞장구를 쳤다 당신도 혹시
엘리베이터 설산에 최초로 오른 사람이
세계 최초로 호텔 체인점을 설립한
영국의 힐튼 경이라고 알고 있나요
지금도 치킨에는(부엌에는)기억의 닭들이 날아다니죠
오빠와 여친이 배가 고파서 전화를 합니다
거기 키친점이죠
양념 키친으로다 한 마리.


<시작노트>
요즘은 아가들이, 백일만 지나도 쥬니어네이버에 들어가 영어노래를 듣는다.
캬라멜과 카메라 치킨과 키친 에베레스트와 엘리베이터가 왜 그렇게 햇갈렸는지,
시험지를 받기전 나는 연신 웅얼거렸다. 그때만 해도 윤선생의 파닉스 발음법이 안 알려졌다.
아침 커피를 마시며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노벨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시상이 떠올랐다.
웃으면 개그가 되고 심각하자면 끝이 없는. 머리 나쁜 사람을 우리는 흔히
닭 머리라고 하는데, 사실 닭들 세계에서 보면 그들은 제법 영리한 편이다.    

 

 

오해하기 없기

훤칠한 키에 잘생긴 스치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은  
그 남자 한 번 지나가면 골목에 꽃들 시체처럼 즐비했다지
졸도의 꽃들 환호 했다지 자다가 일어나 하품하며 빗질도 안 하는 그 남자
그의 노래에 꿈이었으면 차라리 좋겠어 울부짖는 처녀들과
할머니들까지 그의 마차 안으로 배 사과 망고를 마구 던졌다지
헤아릴 수 없이 던져진 마음이 슬펐을까 또  
한 이웃집 남자 자다가 일어나 하품하며 그 남자 흉내라도 내듯
빗질도 안 하고 목청을 가다듬어 노래를 불렀다지
도레미파솔라시 존댓말로 했을지 반말로만 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
그 때 창문 아래 꽃향기 진동했을 거라 추측을 해
이웃집 남자 부스스한 모습으로 마차에 올라타며
기도했을 거야 오 나의 꽃들이여 그때
왁자하게 들려오던 아이들 함성과 날아든 깨진 기왓장들
마차 안으로 기적처럼 쌓였다나 어디까지나
세설신어에 나오는 청담淸談이니 그러니,

 

20011 , 거울놀이 외 4편 / 오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