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와 독백

삶은 간결하다

미송 2011. 3. 28. 22:07

 

 

 

삶은 간결하다

 

13년 동안 <변신>을 쓴 카프카는 왜 유언으로 그의 소설을 태워달라고 했을까.

거의 누워서 생활하다시피 한 그가 자전적 이야기를 끊임없이 퇴고할 정도였다면 집착이

대단했을 텐데. 역시 소설이 죽음 앞에 선 하나뿐인 삶보다도 못한 이야기였다는

의미일까.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삶은 내면으로의 고독한 여행이다. 분주하고 복잡하지

않은 단순하고 간결한 삶이야말로 소설이란 노동을 감내할 때의 전제조건이다.

사실 삶은 아주 소박한 것이다.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졸리면 자야 하는 지극히 동물적인

휴머니티가 전부일지도 모른다. 문명은 우리를 너무 오래 전등아래 두었으므로

낮과 밤의 자연스런 규칙에 역행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 관례적인 인사가

한결 더 진보되어 이제는 당신을 행복하게 열어 드리겠다고 까지 말한다. 미안하지만

난 속으로 참 웃긴다고 말한다. 행복이 그리 간단하다면 누구나 다 행복했을 텐데

밥 먹듯이 주문을 욀 이유가 어디 있는가, 안 그런가.

 

휴무일이라 오랜만에 반곡역에 올라갔다. 미술인들이 시청에서 지원금 오천만원을 받았다더니

서너 개의 조각품과 그림들로 역사 주변을 꾸며 놓았다. 일제 강점기 때 세워진 한이 서린 기차역. 금광도 아닌 시커먼 굴을 파느라고 수많은 주민들이 노역에 지쳐 죽어갔다는데. 그 곳엔 이제 기차가 서지 않고 지나간다. 얼마 있으면 폐쇄할 모양이니 덩그러니 역의 모습만 시대의 그림자로 남겠지. 꽃들이 아직 피지 않은 역 주변 시멘트 땅 바닥 위에 누런 잔디줄기만 힘자랑을 하고 있었다. 곧 꽃들도 아우성을 치겠지만 제 이름을 부르며 손짓하겠지만 역시 꽃은 지기 위해 잠시 피어날 것이고 철길의 차가운 침묵 위로 가을이 겨울이 봄이 여름이 또 겨울이 지나갈 뿐이니 이는 지극히 자연스런 흐름이라서 행복이며 순응하는 미소인 것이다. 음악마저 소음처럼 들리는 순간의 침잠, 칩거의 간결한 손놀림으로 쓰는 것들은 쓰는 자의 허무와는 상관없이 날개를 달고 날 것이나 그 외의 진정성은 개인의 노동하는 과정 속에서만 얻어질 무엇일 뿐. 소설의 절반은 퇴고. 삶의 그림자같은 소설을 다듬으면서 자신을 좀 더 간결하게 다듬는 것이다. 수만개의 자기 얼굴과 직면하면서 정직함에 대면할 능력을 키우는 행위, 자기를 잘 데리고 노는 것은 고단한 노동이자 또 하나의 능력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