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풍향계의 기억
미송
2011. 4. 29. 07:43
풍향계의 기억
새의 부리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길 가르쳐 주는
양철손가락 바람의 외출을 너그럽게 대변해 주던 화살표
끝없는 움직임은 한 곳으로 정지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미세한 바람에도 반동(反動)했던 회심의 내 이력에는
자력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던 정지 속 탐색을
천형이라 부르고 있다 고독한 회전의 운명을 사랑이라
말하고 있다 어떤 바람도 우리를 내밀지 못했다.
<시작노트>
미세한 바람의 움직임에도 자기 몸을 떨어야 하는 풍향계는 움직임을 그 생명으로 한다. 돌아가지 않은 자, 더 이상 풍향계가 아니다. 하지만 정작 움직임에 예민한 촉수를 가진 풍향계는 자력으로 한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비유하자면 상반신이 아닌 하반신 불구자다. 타자의 길을 손으로 알려줄 수는 있지만, 정작 자신은 한걸음도 이동할 수 없는 서글픈 운명. 이것이 바로 풍향계의 존재론적 비애다. 움직임 속의 정지, 혹은 정지 속의 움직임이 바로 풍향계의 천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