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송 2011. 5. 23. 09:02

지난 십 년 동안 <하늘호수>를 방문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과 명상음악이 있는 이곳이 있어서 우리 모두 행복했고 시인도 행복했습니다.

잠시 이곳의 문을 닫습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류시화 시인의 뜻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반갑게 만날 날이 오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나마스테.

 

나마스떼namaste;요가인들이 인사할때 많이 쓰는 용어.

그 뜻은 '지금 이순간 당신을 존중하고 사랑합니다.' 라는 뜻.

 

운영자 코코펠리 healingsongs@naver.com

류시화 시인 healingpoem@naver.com

 

 

 

류시화는 시인, 명상가,출판기획자. 번역가로 1959년 출생인 류시화의 본명은 안재찬이다.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하고 2학년 때 <아침>이라는 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하고 1980-1982년까지 박덕규, 이문재, 하재봉, 등과 함께<시운동>동인으로 활동했다. 류시화씨는 시운동 동인지에서 50여편의 시를 발표하고 '시인은 전쟁이 나도 다락방에서 사랑의 시를 쓸 수 있어야 한다' 는 말과 함께 1983년에 활동을 중단한다. 이 후 그는 안재찬을 버리고 류시화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명상서적 번역 작업을 시작한다. 또한 1988년부터 미국과 인도 등지의 명상센터에서 생활하고 인도여행을 통해 진정한 명상가로 변신하고 인도 대표 명상가인 라즈니쉬의 주요서적들을 번역한다. 그는 1년에 약 100권의 명상서적을 원고로 읽는 독서광이며, 16년 동안 겨울이 오면 인도를 방문하는 여행가이다. 1991년 그는 첫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에 이어 1996년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펴냈고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다.

 

[편집] 문단이 바라보는 시인 류시화

 

안재찬으로 활동했을 당시, 류시화씨는 민중적이고 저항적 작품을 지향했던 당대의 문단과는 달리 신비주의적 세계관의 작품세계로 인해 문단으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외계인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평론가 남진우는 평론집 <바벨탑의 언어> 를 통해 류시화시인의 시세계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안재찬(류시화)의 시에서 가장 중요한 상상력의 움직임은 외부로 확산하려는 힘과 내부로 수렴하려는 두 힘의 갈등이며, 그 중 항상 후자가 전자보다 우위에 있다. 그는 적극적인 현실참여를 주장하고 있는 민중주의자들에게 현실 도피라는 비난을 받을 수치를 안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앞만 바라보며 바빠 나아가는 이때, '온 곳으로 되돌아가며'라고 노래하는 그의 낮은 음성 속엔 우리가 경청할 만한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라고 기술하기도 했다.

 

독자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그이지만 문단과 언론에는 인정받지 못한 시인이기도 하다. 문단 시인들은 류시화씨의 시같이 대중의 심리에 부응하고 세속적 욕망에 맞춰 쓴 것은 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시는 대중에게 다가가는 글이 아닌 대중이 노력하여 다가가야 하는 장르인데, 류시화 시인의 글은 전장에 속한다고 비판한다.

류시화 시인의 작품은 문단과 문예지에도 외면당한다. 1997년 <죽비소리>에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은 '저급함도 역겨움도 모르는 외눈박이 독자들에게나 매혹적인 시집'이라 혹평한다.

 

시인 이문재씨는 류시화 시인의 작품과 당시 문단이 바라보는 류시화 시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의 시들은 거의 변하지 않고 초기의 시세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얼핏 중요하지 않아 보이지만, 그가 세상과 격절된 상태로 20대 중후반을 지내왔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댈 수도 있지만, 저 들끓던 80년대에서 자기를 지키며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은 큰 변화 못지 않은 견딤으로 본다. 일상언어들의 직조를 통해, 어렵지 않은 보통의 구문으로 신비한 세계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그의 시의 주요한 미덕이다. 낯익음 속에 감춰져 있는 낯설음의 세계를 발견해내는 것이 시의 가장 큰 역할은 아닐까. 그의 시를 비롯 시운동 초기의 시편들은 당시 '양쪽에서 날아오는 돌'을 맞으며 참담했는데, 돌을 던지는 그들의 관점은 그의 시가 '발명품'이라는 시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는 발명이 아닌 발견이다.' 이 시인의 언급과 같이 류시화 시인은 당시 시대상에 맞지 않는 작품으로 인해 문단으로부터 외면받아 왔지만 꿋꿋히 자신의 스타일을 지키며 지금까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편집] 독자가 바라보는 시인 류시화

 

이러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류시화 시인의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1989년~1998년 동안 21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는 <시로 여는 세상> 2002년 여름호에서 대학생 5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인에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과 함께 이름을 올렸으며 명지대 김재윤 교수의 논문 설문조사에서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 10위, 21세기 주목해야할 시인 1위, 평소에 좋아하는 시인으로는 윤동주시인 다음으로 지목된다. 또한 류시화 시인의 시는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낭송되는 시이기도 하다. [출처 필요](저작권협회 집계)

 

[편집] 특징

 

혹자는 류시화의 시를 <입으로 순화된 시>라고 표현한다. 그는 시를 입으로 수백번 되뇌이면서 결국, 독자들에게 낭송되 쉬운 시를 만들어낸다. 시인 류시화가 되고 난 후 명상서적 번역을 시작했고 1988년부터 시작한 미국, 인도의 명상센터 생활과 인도여행을 통해 그는 명상가가 된다. 그는 2009년으로 16번째 인도를 방문하는 여행가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류시화 시인의 서적 대부분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그가 번역한 명상서적 80권 중 80%가 초판조차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책을 출판할 때 굉장히 오랜시간 동안 작품을 준비하는 걸로 유명하다. 1998년 출판되어 베스트셀러를 차지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은 그가 13년 동안 꾸준히 좋은 시를 모아두며 편집한 작품이고,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역시 그의 10년간의 인도여행 뒤 만들어진 작품이다. 또한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는 당시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 이전에 류시화시인이 접하게 되어 싼값에 저작권 계약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 역시 2년 동안 3번의 번역을 거친 뒤 출판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류시화 시인의 오랜 작품 준비기간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은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편집] 류시화에 대한 비판

 

류시화의 인도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숭실대 이옥순 박사는 <우리안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저서에서 '우리 작가들이 인도를 보는 눈이 100년 전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인도를 바라보는 눈과 놀랍도록 똑같다'고 하며 류시화 시인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에 대해 '다 명상가 같고 철학자 같은 하층민들을 만나지만 인도를 단일한 세계, 작은 마을로 단순화하는 맹점을 보인다. 절대적 빈곤상태의 하층민들은 정말 가난해도 행복한가?' 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류시화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인도를 미화한 것에 대해 '인도를 여행하며 울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인도여행자는 두가지 감정에 빠진다. 체념인지 초월인지, 하지만 인도는 변하지 않는다. 혈족과 종교로 인해 변화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그 속에서 정신의 평화를 찾아냈다.'

 

[편집] 대표작품

 

1991년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1996년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편집] 【명상집】

1998년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1999년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

 

[편집] 【수필집】

 

1991년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1992년 《딱정벌레 -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별난 생각》

1994년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

1997년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2002년 《지구별 여행자》

 

[편집] 【번역서】

 

1997년]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1998년 《장자, 도를 말하다》

1999년 《한 줄도 너무 길다》

2001년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2002년 《예언자》

2003년 《그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2003년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2003년 《어디에 있든 자유로우라》

2004년 《갈매기의 꿈》

2005년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류시화 <딱정벌레 - 나의 인디아 꿈 중에서>

피리 부는 자가 한 음을 짚으면 한 음을 잃듯이, 어떤 것을 손으로 붙잡으면 우리는 또다른 것을 손에서 놓아야 한다. 외부의 것을 잃으면 내부의 것을 얻는다. 사랑을 잃은 자가 슬픔으로 내면의 깊이를 얻듯이. 그것이 여행의 의미다. 그러나 그러한 떠남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다. 두 사람만의 여행일지라도 여행의 의미는 반감된다. 온전히 떠나고, 온전히 사색하고, 낯선 세계와 교감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탈바꿈시키며, 여행의 끝무렵에 이르러 또다른 여행을 꿈꿀 수 있기 위해서는 혼자 떠나야 한다.

혼자가 아닌 떠남은 떠남이랄 수 없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누구나 고독하지만 고독의 길을 마다할 수 없다. 혼자 올라타는 낯선 고장에서의 기차, 해지는 저녁 차창 밖으로의 짧은 응시, 그러면서 자신이 기차를 잘못 탄 것이 아닐까 끝없이 질문하게 되지만 그 철로 위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기확인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낯선 역에서 홀로 기차를 내린다. 어떤 정거장도 안주할 곳이 아님을 실감하면서 개찰구를 빠져나온다.

 

 

류시화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 중에서>

 

 

어떤 사람이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는 흙을 가져다 붓고
자신이 좋아하는 온갖 아름다운 시앗들을 심었다. 그런데 얼마 후
정원에는 그가 좋아하는 꽃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민들레가 피어났다.

민들레는 아무리 뽑아도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와 또 피어났다.
민들레는 없애기 위해 모든 방법을 써 봤지만
그는 결국 성공할 수 없었다.

 

노란 민들레는 다시 또다시 피어났다.

마침내 그는 정원 가꾸기 협회에 전화를 걸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내 정원에서 민들레를 없앨 수 있을까요.
정원 가꾸기 협회에서는 그에게
민들레는 제거하는 몇 가지 방법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그 방법들은 이미 그가 다 시도해 본 것들이었다.
그러자 정원 가꾸기 협회에서는
그에게 마지막 한 가지 방법을 일러 주었다.

그것은 이것이었다.
'그렇다면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세요.'

 

 

 

 

류시화 -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 (나는 인도에 갔었다, 머리 속에 불이 났기에 23-34p)

 

끝없는 거친 들판· 인간, 인간들

 

들판 저 끄트머리에 불이 켜졌다. 그 불빛이 차갑게 흔들린다.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신호다. 이 끝없는 거친 들판. 나는 오랫동안 그 너머를 바라본다. 나무마저 없고 가시덤불만 굴러 다니는 곳. 먼지 묻은 이슬 내리고 짐승의 발자국조차 없는 곳. 그곳을 나는 지나왔으며 그곳에 사는 인간들을 만난 적이 있다. 어느 목적 없는 여행길, 무목(無目)의 방랑길에서였다. 그들을 나는 만났고, 생의 노정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가졌었다.

 

우리 텅 빈 인간들

우리 박제인간들

머리는 볏짚으로 꽉 찼고

함께 기대고 있는, 아 슬프다!

우리의 메마른 목소리는

함께 속삭일 때면 무의미하다.

마치 마른 풀 위를 스치는 바람처럼.

형상 없는 형체, 실체 없는 그림자

미미한 힘, 행동 없는 몸짓.

 

- T.S. 엘리어트 [텅 빈 인간]

 

너 어디로 가는가? 끝없는 거친 들판에서 내가 만난 그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 묻지도 않았다. 봄이면 때묻은 양복에 모자를 쓰고서 복사꽃 피어난 신작로길을 떠나던 외할아버지처럼 내 여행길에는 목적지가 없었다. 그것은 떠남 그 자체를 위한 떠남이었다. 어머니나 나는 외할아버지에게 그렇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어디로 가세요? 어디로 가서 밤을 지낼 건가요? 세상의 것들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러한 물음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특히나 떠남 그 자체를 위해 떠나는 사람에게 목적지란 무의미한 것.

수피(회교 신비주의)의 성자 바야지드 알 비스타마는 말한다.

 

"네가 향해 가고 있는 목적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네가 걸어가고 있는 길, 햇빛이 내리비치는 그 길 위에서의 촌각촌각이 중요한 것이다. 만일 너에게 목적지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신(神)이나 너 자신을 목적지로 삼으라."

 

첫 번째 인도 여행 때 나는 일행과 헤어져 혼자가 되었다. 타지마할 무덤이 있는 아그라 시에서였다. 나는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뉴델리로 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기나긴 기차 여행에 몸을 실었다. 그러다가 도중에서 기차를 내렸다. 이름도 처음 듣는 간이역이었다. 기차가 역에 정차했다가 느릿느릿 출발할 때였는데 나는 갑자기 충동에 휘말려 가방을 찾아들고 플랫폼으로 뛰어내렸다. 어디서 내린다 한들 그것이 무슨 차이가 있으랴.

 

낡은 역사(驛舍)가 오전의 투명한 햇살 속에 졸고 있고 해바라기를 닮은 노란 꽃들이 둘레에 몇 그루 자라 있는 작은 간이역이었다. 나는 역을 빠져나가 주변의 인도 마을을 잠시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역을 빠져나가자 나를 맞이한 것은 끝없는 들판이었다. 그곳에 마을이란 없었다. 어찌된 일인지 철로 주변에 있는 것이라곤 역건물과 몇 채 안 되는 낡은 양철통집이 전부였다. 그리고는 사방이 끝없는 들판, 들판이었다. 나는 예기치 않게 들판 한가운데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제 다음 기차가 언제쯤이나 이 간이역에 멈출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해바라기를 닮은 노란 꽃 아래 잠시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멀리 들판 끄트머리까지 내다보았다.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광활한 들판이었다. 이따금 바냔나무인지 보리수인지 모를 커다란 나무가 삼사백 미터 간격으로 서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이 들판을 지나가면 마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두 번째로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곧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을로 가기 위해 가방을 둘러메고 일직선으로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가기 시작했다. 등뒤에서 역 건물이 점차 멀어지고 해는 더 뜨거워졌다. 도중에 다시 역으로 돌아가 다음 기차를 기다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때까지 걸어온 시간이 아까웠다. 그리하여 나는 어느덧 아무 것도 없는 들판 한가운데 홀로 서 있게 되었다.

 

있는 것이라고 노란 해와 드문드문 서 있는 큰 나무들, 그리고 나 자신뿐. 나는 대학 다닐 때 잠시 연극활동에 몰입한 적이 있었으나, 이처럼 아무런 소도구도 없는 무대 위에 내 자신이 던져지기란 처음이었다. 그곳에선 내 자신이 하나의 소도구로 전략할 위험성은 없었다. 원래 다른 소도구들에 묻혀 우리 자신마저도 하나의 소도구로 전락해버리는 경우를 허다하게 체험하게 된다. 내 자신이 아무리 소도구가 아니라 주인공이라고 외친다 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그렇게 두 시간을 걷고 세 시간을 걸어도 마을은 나타나지 않았고 들판은 끝이 없었다. 이따금 나무 위에서 까마귀인 듯한 검은새가 나를 노려보다가 휙 하고 날아갔다. 나는 목이 말랐고 이러다가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는다면 아무도 내가 죽은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며 까마귀들이 나를 뜯어먹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이란 얼마나 이상한 것인가.

 

한 여행자가 사막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가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곧 죽게 되었다. 힘없는 다리를 이끌고 모래언덕을 올라가다가 그는 모래 속에서 튀어나온 마른 나뭇가지에 걸려 쓰러졌다. 다시 일어날 기운조차 없었다. 그는 생의 희망을 포기한 채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그렇게 누워 있던 그는 최초로 사막의 침묵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그의 귀는 어떤 흐릿한 소리를 들었다. 그는 문득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침묵 속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작은 소리가.

 

나는 이따금씩 들판에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 아래 앉아 있곤 했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어느 방향이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너 어디로 가는가? 그렇게 물어올 사람도 없고, 생의 모든 것 --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역 건물은 보이지도 않았다. 이젠 돌아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언제나 돌아가기에 너무 늦다. 하나의 숙명처럼. 나는 점점 무거워지는 가방을 도중의 커다란 나무에 걸어놓았다. 어차피 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고, 돌아갈 때 가져가면 되는 일이었다.

 

나무 밑에서 다리를 쉰 것까지 합해 다섯 시간 정도를 걸었을 때였다. 그래도 사방의 들판은 변함이 없었다. 그때 나는 지평선 끝에서 어렴풋이 한 무리의 검은 점을 보았다. 지열 속에서 몇 개의 점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검은 점들을 향해 뛰어갔다.

어디든지 가보라. 지구의 어느 곳이든 가서 보라.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가. 그 들판에서 들짐승들을 만났다면 난 오히려 놀라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광활한 들판, 굳이 문학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시공간이 흔적 없이 지워진 듯한 그 외진 들판에 몇 명의 인간이 있어서 검은 염소떼와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들판에서 해와 달이 뜨고 짐을 보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어느 곳에서 생을 마쳤을까.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그 침침해진 눈동자로 무엇을 보았을까. 별? 혹은 바람? 그리고 나의 최초의 스승 소희(素姬)는 어느 곳을 얼마큼이나 여행했을까. 무엇을 보고 무엇을 살았을까. 거리와 집? 혹은 사람들?

 

북경(北京)에 파견된 어떤 목사가 레스토랑에 갔다. 그곳에서 한 웨이터를 붙잡고 중국사람들이 종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질문을 했다.

웨이터는 목사를 데리고 발코니 밖으로 나가더니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무엇이 보입니까. 선생님?"

"거리와 집, 그리고 행인들과 부지런히 움직이는 버스와 택시들이 보이는데."

"그 밖에 다른 것도 보입니까?"

"나무들이 보이는군."

"그것뿐입니까?"

"바람이 불고 있고."

그러자 그 중국 청년은 두 팔을 크게 벌려 보이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것들이 모두 종교입니다. 선생님."

 

뜨거운 태양 아래 무려 다섯 시간 정도를 걸어 들판 어느 곳에 이르렀을 때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작은 집단의 유목민이었다. 그들은 검은 염소를 여럿 가지고 있었으며, 집이라곤 누더기 천조각을 이어붙인 천막이 고작이었다. 움푹하게 땅을 파고서 움막처럼 세워 놓은 천막이 모두 다섯 개였다. 그 다섯 개의 천막이 기적처럼 들판 끄트머리에 나타나자 나는 기운을 얻어 그곳으로 달려갔다. 약 백 걸음 정도 앞에 이르렀을 때 한 인도 여자아이가 내쪽으로 걸어왔다. 그 소녀는 나를 보자 대뜸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무엇이 보여요?"

무엇이 보이냐구? 나는 순간 당황했다. 끝없는 들판을 걸어온 나그네 앞에 한 인도 여자아이가 나타나 느닷없이 무엇이 보이느냐고 묻는다고 상상해보라. 그때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어리둥절해 하며 서 있지 소녀아이는 다시 물었다.

"무엇을 보았지요? 우리 식구들이 염소들을 데려오려고 저쪽으로 갔는데 혹시 못 보았나요?"

나는 그제서야 질문의 뜻을 알았다. 소녀는 영어 실력이 형편없어서 대충 아무렇게나 물었던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대답하자 소녀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내가 걸어온 쪽으로 가버렸다.

 

이윽고 저녁이 오고 해가 붉은 색조와 함께 서쪽 지평선 너머로 도망쳤다. 유목민들이 염소를 데리고 돌아와서 천막 앞에 모닥불을 지폈다. 그리고 처음에 만났던 소녀아이가 어떻게 발견했는지 나무에 걸어놓았던 내 가방을 들고 낑낑거리며 돌아왔다.

사람들은 모닥불 주위에 앉아 차를 마시고 더러운 손으로 빈대떡처럼 생긴 짜파티(인도인들의 주식)를 먹었다. 그들은 소리없이 그것들을 내게 건네주었다. 소리없이 건네주는 그 아름다움, 그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느닷없이 들판 한가운데 나타난 이국인,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안았다. 나는 갑자기 추워지는 들판의 한기를 피해 옷가지를 어깨에 두르고서 차를 얻어 마시고 짜파티를 먹었다.

 

그때 나는 어떤 이상한 것을 보았다. 거대하고 둥근 빛 하나가 들판 끄트머리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아, 그것은 보름달이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거대한 달을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다. 모닥불의 불빛을 무색케 하는 휘황한 보름달이 지평선 위로 덩실 솟아올랐다. 달빛은 무차별하게 들판의 나무와 까마귀와 누더기 천막 위로 쏟아져내렸다.

 

나는 가방에서 피리를 꺼내 불기 시작했다. 달빛의 정취에 감정을 이길 수 없었는지 자꾸만 피리소리가 끊어졌다. 인도인들의 커다란 눈동자에 비쳐 모닥불이 어른거렸다. 내가 피리불기를 마치자 맞은편에 앉은 노인이 소리없이 웃었다. 나는 피리를 가방에 집어넣고 그 노인에게 노래 한 곡을 청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그 노랫소리를 잊지 못한다. 무슨 내용의 노래였을까. 생의 회환과 끝없는 여정을 노래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젊은 처녀의 가슴 울리는 사랑 노래였을까. 다만 내 눈이 잊지 못하는 것은 그 들판 위로 떠오른 커다란 달과 사그라드는 모닥불, 그리고 노래부르던 그 노인의 몸짓이었다. 그는 한쪽 손이 기형이어서 손가락이 엄지와 검지밖에 남아 있지 않은 조막손이었다. 그 조막손을 연신 허공에 쳐들어 보이며 그는 쉰 듯한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 인도 노래가 들판 멀리까지 퍼져 나가다가 멈추고 다시 퍼져나갔다.

 

그 사이 달은 빠르게 들판 위 하늘을 가로지르고, 나는 유목민과 염소떼들과 함께 모닥불 옆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한 꿈을 꾸었다. 땅과 하늘의 구분조차 없는 막막한 공간을 나 혼자 방랑하는 꿈이었다. 시간마저 지워진 하얀 지평선을 향해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도 없고, 반향되어 오는 메아리나 그림자도 없는 세계였다. 나는 다만 그 적막함 속에 홀연히 등장하여 하얀 지평선을 목적지 삼아 끝없이 걸었다. 그 끝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고 내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청년의 모습으로 방랑을 시작한 나는 어느덧 머리가 허연 노인의 모습으로 길 위에 서 있었다.

 

나는 청년시절에 추구하던 깨달음의 세계에 늙은 내가 도달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 노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때 노인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하얀 지평선도 일순간에 지워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어느새 아침이 찾아와서 또다시 동쪽 지평선에서 태양이 떠올랐다. 태양은 간밤에 들판 가득히 뿌려진 달빛을 모두 증발시켜버리는 듯 더 거대한 크기로 떠올랐다. 유목민들은 어느새 일어나 염소떼를 풀들이 자란 곳에다 방목하고 돌아왔다.

 

나는 다시 차를 얻어마시고 그들과 헤어졌다. 인도어에서 '손님'이란 단어는 '약속하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이란 아름다운 뜻을 갖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손님이었다. 하룻밤 머물고 떠나는 손님.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온 손님이 아닌가.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고서 왔다가 곧 어디론가 떠날 뿐이다.

 

내가 가방을 둘러메고 떠날 차비를 하자 소녀아이와 노인과 나머지 인도인들이 작별인사차 천막 앞에 나란히 섰다. 어떤 작별의 인사를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들도 일제히 네게 손을 들어 보였다. 나는 돌아서서 어제 걸었던 들판을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도회지에서의 헤어짐이란 더할 수 없이 간단하다. 작별인사를 나누고 현관을 나서거나 모퉁이를 돌아가면 끝이다. 그러나 들판 한가운데서 떠나는 나를 가려줄 현관문도 모퉁이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자꾸만 그들을 뒤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들판을 오십 미터쯤 걸어가서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그때까지 천막 앞에 나란히 서서 내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손을 들어 보이고 나서 걸음을 재촉했다. 백 걸음쯤 걸어가서 뒤돌아보니 여전히 그들은 그 자세로 서 있었다. 나는 다시 손을 흔들어 보이고 돌아서서 걸어갔다. 다시 백 걸음을 걸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변함없이 손을 든 채로 천막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야트막한 둔덕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서 뒤돌아보니 그때도 그들은 손을 들고 서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작은 점이 되어 시야에서 사라져버릴 때까지 졸곧 나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누가 내게 그토록 긴 작별의 손을 들어 보일 것인가.

 

나는 어제 가방을 걸어두었던 나무 밑을 지나 간이역 쪽을 향해 계속해서 걸어갔다. 내 등뒤에선 염소떼를 데리고 사는 그 유목민들이 영원히 나를 향해 손을 들어 보이고 서 있을 것만 같았다. 간이역에 도착해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손을 들고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이 내 눈동자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여기 중국의 현대작가 다이 호우밍의 글귀가 있다.

 

누구나 다 변해간다. 변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다. 저마다 '인간'의 재료에서부터 진정한 인간으로 변해간다. 다른 인생길이 다른 인간을 만들어내고, 다른 인간이 또다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어떤 길에나 인간이 있고 어떤 인간 뒤에도 길이 있다. 길에는 우여곡절이 있고 인간에게는 부침(浮沈)이 있다. 길은 서로 교차되고 인간은 서로 부딪친다. 그것이 인생이다.

 

 

*출처 : 시가 있는 푸른숲 - http://www.ixia.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