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자료실

중남미 현대시의 이해 3

미송 2011. 7. 30. 14:12

 

1

앙드레  브르똥은 1924년 쉬르리얼리즘 선언을 발표한다. 그는 "심리적 자동필기법을 통하여 말이나 글 혹은 다른 방법으로 의식을 표현하는 것"이 쉬르리얼리즘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쉬르리얼리스트의 임무는 무엇보다 "일체의 도덕적 미학적 편견을 떠나 이성의 작용으로 인한 모든 제약을 벗어난, 의식과 사고의 진솔한 기능을 그대로 제시하는 것"이라고 못박는다.

 

 

절대 사랑을 시도하지 말자

 

그날 밤 바다는 잠이 없었다

그 많은 파도들에게 이야기 이야기하다 지친 바다는

마침내 멀리 도망가 살기로 했다

누군가 바다의 쓰라린 색깔을 알아주는 그곳으로

 

잠도 없는 목소리로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곤 했다

밤 한가운데

다정하게 팔과 팔을 껴안고 있는 배들

아니면,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는

망각의 옷을 입고 늘 창백한 몸뚱어리들

 

바다는 폭풍을 노래했다 어둠의 하늘 아래

그 어둠처럼,

별과 새를 잡아먹는 항상 원한 많은

그 어둠처럼 바다는

소리소리 치며 함성을 터뜨렸다

 

바다의 고함소리가 빛과 비와 추위를 가로질러

구름으로 올라간 도시들에게까지 들렸다

시엘로 세레노 콜로라도 글라시아르 델 인피에르노

그러나 모든 도시는 

광고와 떨어진 별들뿐

흙덩이 손 위에 펼쳐진

 

바다는 도시를 기다리다 지쳤다

거기 바다의 사랑은 오직 하나의 알 수 없는 구실일 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지난날의 미소일 뿐

 

그리하여 바다는 다시 꿈을 거두어 서서히 되돌아갔다

아무도 없는

아무도 아무 이야기도 모르는

세상이 끝나는 곳으로

 

 

어떤 사람들에게 산다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 산다는 것은 벌거숭이 발로 유리알을 밟는 일, 또

어떤 사람들에게 산다는 것은 정면으로 얼굴을 맞대고 태양을 바라보는 일

해변은 죽어가는 아이 하나하나를 위해 시간과 나날을 헤아린다

하나의 꽃이 핀다 하나의 탑이 허문다

모든 것은 마찬가지 나의 팔을 펼쳤다 비가 오지 않았다 유리를

밟았다 해가 없었다 달을 바라보았다 해변이 없었다

무슨 상관이랴 너의 운명은 일어서는 탑을 바라보는 일, 열리는

꽃을, 죽어가는 아이를 보는 일, 그밖에 화투장을 잃어버린 화투처

럼 그냥 우두커니 서서.

 

모든 의미와 좌표를 잃어버린 허무감이 이 시의 분위기를 이룬다. 희망이 있고 꿈이 있고 좌절이 있다. 태어난다 죽는다 모든 것은 매한가지로 삶의 모습일 뿐이다. 거기에는 물론 "죽어가는 아이를 보는" 안타까움과 절망이 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인간 실존의 냄새일 뿐. 우리에게 허용된 것은 그냥 살아 있기이다. 화투장이 모자란 화투를 들고 칠 수 없는 화투장처럼 그냥 우두커니 서 있기이다.

 

 

망각이 사는 곳

 

망각이 사는 곳

여명이 없는 황량한 정원에서

나는 오직

잡풀 사이 묻힌 하나의 돌의 기억으로 남을지라

그 돌 위에 바람만이 불면의 밤으로 달아나리니

 

수많은 세월의 품속에 하나의 육체를

가리키는 나의 이름 하나로 남을지라

아무런 소망도 없는 내가 될지라

 

거기 그 커다란 지역에서는

사랑이 무서운 천사가 되어

그 날개를 나의 가슴에

이제 쇠창처럼 숨기지 않으리라

폭풍이 몰려와도 가볍게 아름다이 미소지으리라

거기 자기의 모습을 닮은 주인을 찾는 이 열망이 끝나는 곳

스스로의 인생을 남의 인생에게 맡기고

다른 눈들이 마주보는 수평선밖에는 바라볼 데가 없다 할지라도

 

거기서는 고통도 행복도 이젠 이름밖에 아무것도 없으리

하나의 기억 주위로 원형의 하늘과 땅

 

마침내 거기서는 나 자신 알 수도 없이 내가 자유로워지고

나는 그리움의 안개가 되어

어린애 속살 같은 가벼운 그리움으로 남으리

 

저 너머, 그 먼 곳

망각이 사는 곳에서는.

 

 

세르누다의 사랑은 잊혀질 뿐 죽지 않는다. 사랑은 살아 있음의 색깔이다. 그리고 죽음은 또다른 피안이다. 세르누다는 "사랑은 죽지 않는다/ 죽는 것은 우리들 자신뿐"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죽는다, 그 고뇌도, 즐거움도. 그러나 사랑과 사랑에 대한 소망은 영원하다. 그 영원함은 오직 망각에 의해서만 무형으로 된다. 세르누다는 욕망이 아닌 사랑을 영원 속에서 꿈꾼다. 사람은 망각에서 와서 망각으로 되돌아간다. 내가 아닌 데서 와서 내가 아닌 데로 간다. 시인은 그 길에 사랑이 기다리고 있길 바란다. 내가 없는 곳, 내가 잊혀진 길에 사랑만 오롯이 꽃피어 있길 기원한다.   

 

 

- 중남미 시인, <루이스 세르누다> 중에서

 

 

생명

 

종일 새 하나 가슴에 와 지저귄다

입맞춤의 세월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산다는 것 산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햇살이 부서지는 소리

입맞춤이거나 새거나 늦거나 빠르거나 영원히 오지 않거나

죽는다는 건 작은 소리 하나면 끝이다

남의 심장 하나 잠잠해지는 소리

아니면 산다는 것은 결국 남의 무릎 땅에서 헤엄치는

금발의 머리칼을 위한 황금배 하나

아픈 머리, 황금 관자놀이 그러나 곧 떨어질 햇덩이 하나

여기 어둠속에서 나는 강물을 꿈꾼다

지금 태어나는 파란 피의 갈대들

따스함이거나 생명이거나 너에 의지하고 서 있는 꿈 하나.

 

 

삶의 덧없음을 알아야  하루하루가 맛있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은 죽는다. “죽는다는 건 작은 소리 하나면 끝이다.” 또한 산다는 건 작은 소리 하나면 끝이다. 나는 죽는다는 것을 모른다. 나는 늘 살아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내가 죽는 소리는 “남의 심장 하나 잠잠해지는 소리”이다. 세상의 행복이라는 것도 결국 남의 배를 타고 잠간 쉬었다 가는 뱃놀이의 즐거움이다. 내게 주어진 생명, 그 ‘햇덩이’는 저녁이 오기 전에 떨어질 것이다. 내가 죽는다고 모두 다 죽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렇게 생각할 때 사는 맛은 진하다. 산다는 것, 혹은 실존한다는 것은 결국 죽음을 딛고 잠깐 떠 있는 일이다. “어둠속에서 나는 강물을 꿈꾼다.” 살아 있음의 소중한 느낌을 맛본다. 삶은 유리잔보다 부서지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유일한 재산이다. 그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그래서 사랑을 할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존재가 아주 하찮은 것에 놀란다. 사랑을 느끼면 우리는 “영원히 사랑해!”처럼 영원을 저당잡히고 싶은 심정이 되니까.

 

 

나는 운명이다

 

그렇다 어느 때보다도 나는 너를 사랑했다

어찌하여 내가 너를 입맞추겠는가, 죽음이 바로 가까이 와 있다는

걸 모두가 아는데,

 

사랑한다는 것은 다만 산다는 것을 잠깐 잊는 것뿐이라는 걸 모두가

아는데,

한 육체의 빛나는 한계를 안 보기 위하여

내 어찌 눈앞에 와 있는 어둠 앞에 눈을 감겠는가

 

나는 책 속의 진실을 읽고 싶지 않다, 그 진실은 조금씩 조금씩 물

처럼 올라온다

나는 그 거울을 포기한다 그 거울 속에는 산이 보이는 곳마다

벌거숭이 바위가 있고, 그 바위에는 내 이마가 비친다

거기, 의미를 모르는 새들이 가로질러 날아가는

 

나는 강물 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싶지 않다 거기 색색의 물고기들

이 분홍빛 생명을 번뜩이며 안타까움의 한계인 물가를 돌진하는 모

강물 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목소리들이 일어난다

갈대 사이에 누워 있는 나는 그 기호들의 의미를 모른다

 

아니다 나는 바라지 않는다 나는 이 먼지를 마시는 것을 거부한

다 그 고통스러운 흙덩어리가 하늘의 눈도 이해할 수 없는

기호처럼 굴러간다는 것을 알 때

나의 살덩이가 말하는 삶의 확실성을 나는 믿을 수 없다

 

아니다 나는 바라지 않는다 혓바닥을 들어 절규하지 않는다

위에서 부딪혀 떨어지는 돌멩이처럼 혓바닥을 쏘아올리지 않는다

쏘아올려 광막한 하늘의 유리창을 깨고

그 하늘 뒤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생명의 소리를 내고 싶지 않다

 

나는 살고 싶다 튼튼한 풀잎처럼 살고 싶다 

북풍처럼 눈처럼 눈을 뜨고 있는 숯덩이처럼

아직 태어나지 않는 어리아이의 미래처럼

달이 모르는 짐승들의 감촉처럼

 

나는 음악이다 그 많은 머리칼 밑에

신비스럽게 날아가며 세상이 만드는 음악

날개에 피를 흘리며 억눌린 가슴속으로 죽으러 가는

순진무구한 새 하나

 

나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러모으는 운명이다

사랑을 아는 모든 반경이 모여드는 유일한 바다

모여와서 중심을 찾는 소용돌이쳐 소리소리 치며 완전한

장미처럼 원이 되어 출렁이는

 

나는 벌거숭이 바람을 향하여 갈기를 불태우는 말 한 마리

나는 스스로의 털과 갈기에 고문당하는 사자

무심한 강물을 두려워하는 사슴

밀림을 떠나는 당당한 호랑이

대낮에도 반짝이는 작은 풍뎅이

 

아무도 살아 있는 사람의 현실을 무시하지 못한다

소리치는 화살들 사이 그 한중간에 서서

보이지 않을 게 없는 투명한 가슴을 내보이는

그러나 맑아도 밝아도 결코 유리창은 될 수 없는 삶

손을 대보라 피를 느낄 테니까.

 

 

- 중남미 시인 <비센떼 알레익산드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