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진<CNMG(Cubes National Mars Graphics)에서 보내온 열 두 번째 메시지>
CNMG(Cubes National Mars Graphics)에서
보내온 열두 번째 메시지 / 유형진
- Peace-9-10-1 "달빛과 별빛은 우리에게"
지구의 하버마스에게 영향을 받은 거북이 살고 있는
수조(水槽)가 있어요.
수조는 태양계산(産) 시가렛을 좋아합니다.
사실 시가렛보단 파이프, 파이프보단 엽궐련인데 말이죠.
CNMG의 거북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문자가 인쇄된
조간신문은 영 읽기 힘듭니다.
수조에 놓인 시간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거든요.
지구에서 보내온 보성 작설차를 우리는 시간 동안
하버마스에게 영향을 받은 CNMG 거북은
마른 유성 조각과 혹성 분말을 주는 손을 기다립니다.
손이 없으면 거북은 수조 안에서 오로지 책만 읽어요.
CNMG 행정실에서 수조에게 담배를 권한 건
거북의 시력을 생각해서였습니다. 지혜로운 결정이었죠.
펠트천의 달토끼 스티커를 붙여 주기 전까지만 해도 그
러한 결정은 필요가 없었습니다.
분홍 펠트천의 달토끼 스티커는 거북들의 못 말리는 독
서에 독설을 퍼붓곤 했거든요.
예 그래요, 지구는 이제 '사적 뮤물론'의 시대가 아니니
까요.
이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씨가 인쇄되어 있어도
석간신문은 그럭저럭 읽을 만합니다.
하버마스에게 영향 받은 거북은
달토끼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달토끼 스티커의 건은 행정실 비서의 실수였다고 정중
히 사과했더니
거북은 너그럽게 용서했습니다.
덕분에 수조에서 있었던 달토끼의 독설은 없던 것이 되
었죠.
스티커는 스키커일 뿐이니까요.
이런 것이야말로 유니버스 심플 라이프지요.
수조는 태양계산 시가렛을 좋아하고
거북은 지구에서 온 신문을 읽고 철학책을 독파합니다.
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심지어 미국이 북한과 연합해 핵탄두 미사일을 개발한
다 해도
거북은 다 이해합니다.
벌써 NI 태양이 지고 NI2 태양이 떠오를 시간입니다.
CNMG에서 이제 달은 별과 다를 바가 없어졌습니다.
'별빛' '달빛'은 각자의 태양이 아침노을과 저녁노을을
만들 때
일시적으로 보이는 하늘의 현상일 뿐이니까요.
점점 늘어나는 위성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는데 잘된 일
이지요.
달의 인력이 없어지니 CNMG에는 파도가 없습니다.
파도가 없으니 구름도 없지요. 오로지 수평선만 있을
뿐입니다.
유성 조각과 혹성 분말을 수조에 넣어 주는 손은 반복
적이고
CNMG거북의 세상은 이토록 평화롭습니다.
이 별에서 가장 똑똑한 생명체인 나 현자 거북은 오늘도 해변을 산책한다.
액체를 동요시킬 그 어떤 인력도 없어서, 바다는 늘 거울과 같이 멈추어
있다. 간혹 물결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수중의 신방(新房)에 거북 한 쌍이
들어갔다는 뜻이겠지. (크크...) 하늘에선 두 개의 태양이 임무 교대 중이구나.
이 평온한 행복에 겨워, 나는 가끔 있을 법하지 않은 불행한 별은 상상해
본다. 바다를 동요시키는 인력을 지닌 위협적인 위성을 가까이 두고 있는
그 별엔, 태양도 하나밖에 없지. 호난 물결이 동요하며 바람이 생기고, 하
늘로 빨려 올라간 수증기는 탁한 솜덩어리처럼 뭉쳐 떠다니겠지? 그러다
무거워지면 커다란 물방울이 되어 대지를 향해 송곳처럼 떨어질 거야. 오,
생각만 해도 무서워. 그래도 누군가 우주 건너 그 별에 살고 있다면 꼭 만
나고 싶어.
온 우주는 이렇게 별 단위의 고독에 빠져 외로워하지. (서동욱)
-하버마스
현대의 생활세계가 과학에 의해 식민지화되었다고 걱정하는 철학자이다. 그에게 있어 생활세계는 본디 과학이 발원해 나온 자궁이며 태반이다. 그런데 과학은 자신의 유래를 망각하고 생활세계를 자신의 잣대인 합리성과 계량성을 갖고 획일화시키며 질식시키고 있다. 하머바스는 이러한 과학의 횡포로부터 생활세계를 해방시킬 것을 외치며 과학의 합리성이 아닌 생활세계 이성을 복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