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이명윤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미송 2014. 8. 7. 07:57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이명윤

 

내 마음의 강가에 펄펄,

쓸쓸한 눈이 내린다는 말이다

유년의 강물냄새에 흠뻑 젖고 싶다는 말이다 

곱게 뻗은 국수도 아니고

구성진 웨이브의 라면도 아닌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나 오늘, 원초적이고 싶다는 말이다

너덜너덜 해지고 싶다는 뜻이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도시의 메뉴들

오늘만은 입맛의 진화를 멈추고

강가에 서고 싶다는 말이다

어디선가 날아와

귓가를 스치고

내 유년의 처마 끝에 다소곳이 앉는 말

엉겁결에 튀어나온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뇌리 속에 잊혀져가는 어머니의 손맛을

내 몸이 스스로 기억해 낸 말이다

나 오늘, 속살까지 뜨거워지고 싶다는 뜻이다

오늘은 그냥, 수제비 어때,

입맛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당신, 오늘 외롭다는 말이다

진짜 배고프다는 뜻이다.

 

≪리얼리스트≫ 2010, 여름호 

 

뜨거운 대낮에 '수제비 먹으러 가자' 는 문자를 받는 건 뜬금없기도 해요. 식사 제안인데 뭐 어떠니 하겠지만, 죄송해요 전, 점심을 먹었거든요. 그러나 저쪽은 食前 상황일지도 모르죠. 세상 사람 모두가 때 맞춰서 밥을 먹는 건 아니니까요. 횡단보도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초록불을 기다립니다. 가을볕이 따갑군요. 왜 하필 수제비가 먹고 싶었을까, 골똘하려는 순간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이 시가 떠올랐어요.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비 오는 날 아님 눈 오는 날 꾸리꾸리해진 맘 다리고 싶은 날, 그런 날 가자 했던가, 어조만 기억났죠. 시를 꺼내 읽으며 수제비가 먹고 싶다고 한 그 사람 속(裏)을 헤아립니다.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웠나, 속살까지 뜨거워지고 싶었나, 너덜너덜한 신세가 외로웠나, 쓸쓸함이 뱃속으로 차올랐나. 

그래 오늘의 메뉴는 수제비로 하자, 들깨 감자 멸치 순우리밀로 수제비를 만들자. 수제비로 헝그리(hungry)했던 허기가 메워질 수만 있다면, 싯다르타의 고행에 마침표를 찍은 수타자의 젖죽같은 명징한 식사가 될 수 있다면, 이 리얼한 세상이 또 얼마나 황당한 환상의 나라로 변할 것인가, 하면서……. <오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