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전형철<시인을 위한 물리학>

미송 2011. 9. 8. 22:04

 

                                

 

『시인을 위한 물리학』

 

전형철

 

 

          이 밤 모든 문이 다른 한 세상을 향해 조금씩 열리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청탁을 받고 읽은 지 4, 5년은 족히 되는 책을 가방에 오랫동안 넣고 다녔습니다. 오가며 눈으로 책을 읽기보다는 가방 속 책의 무게와 촉감으로 머릿속을 정리하고 생각을 더듬었습니다. 그리고 ‘존재’를 생각하고 ‘틈’을 생각하고 ‘주름’을 생각했습니다. ‘생각’도 생각했습니다.

 

존재는 늘 고통스럽습니다. 아니 고백하건대

 ‘나’는 늘 고통스럽습니다. ‘사유하는 나’가 짐작하는 ‘주체’는 언제나 그 무엇에 의해 만들어지는 중이며, 진동하는 중이며, 이동하는 중이며, 욕망을 채우는 중입니다. ‘모세계’와 ‘주체’는 온전히 조우하거나 결합하지 못해, 틈과 구멍으로 미끄러지기에 삶의 한 면은 늘 목마르거나 혼돈의 안개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또 존재는 늘 외롭습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 나는 우주에서 ‘단독자’입니다. 나와 모우주(motherworld)뿐만 아니라 나와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일정한 거리의 ‘틈’을 두고 행성과 같이 ‘지금, 여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허우적대며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소수의 사람은 별을 바라볼 줄 안다.”


- 오스카 와일드 -

 

‘“하늘에는 별, 땅에는 시인”이라 했으니, 눈 있는 자여, 고개 들어 별을 보라’는 낭만적인 주문만은 아닙니다. 삶이 고단할수록 ‘별’은 더 빛나 보이지만, 별 또한 우리의 낭만적인 인식으로만은 끌어 담을 수 없는 어떤 존재이자 단독자일지도 모릅니다. 시적 시선은 정념의 산물로부터 진화했지만 가끔은 ‘알 수 없음’과 ‘애매성’에 함몰되기도 합니다. 명징한 공리를 마주하고 싶을 때 우리는 방사형의 독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자리와 판이하게 다른 곳으로 여행을 해야 합니다.

 

『시인을 위한 물리학』은 그런 여행의 좋은 안내서입니다. 이 책은 올프 다니엘손이라는 스웨덴 학자가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묶은 책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물리학에 관한 책입니다. 하지만 ‘수학’과 ‘과학’이라는 이름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주저할 필요는 없습니다. 책의 부제가 “우주의 신비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입니다. 물리학에 대한 이론을 비교적 문학에 가까운 언어로 풀어쓴 책입니다. 북구의 신화가 나오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나오고 나니아 연대기』가 등장하고 〈매트릭스〉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언급한 작품들이 그리스의 자연철학으로부터 현대의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과 마침맞게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날줄과 씨줄로 한 이 책은 그래서 시와 무척 닮아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 책을 쓰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처럼, 나는 가만히 앉아 있을지라도 하나의 선을 그리고 있으며, 이 선은 시공에서 하나의 세계선이 된다. 시간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시공 안에서 움직인다면, 이를테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들을 침대에 눕힌다면, 이때 그리는 선은 또 다른 모양을 띠게 될 것이다. 따라서 시공에서는 모든 사람이 세계선을 그리는 셈이 되며, 우리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이 선은 시작과 끝이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과거와 미래는 현재와 함께 시간이 없는 존재 안에 나란히 놓이게 된다. 〈중략〉 이와 관련해서 내가 여기서 서술한 것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줄은 훨씬 더 잘 묘사하고 있다. (133쪽)


 

펼쳐진 삶의 망 안에 그려지는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궤적을 통해 아인슈타인이 말한 ‘공간의 휘어짐’을 설명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끝없이 많은 날들로 서로 동떨어져 있는 시대를 가볍게 옮겨다니는 거인 같은 존재(『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원리에서 수성의 특이한 운동을 설명한 방식과 동일한 원리를 기저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남극의 남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의문의 양식과 마찬가지로 창조된 실제가 어떻게 보이는지, 그 비밀을 누설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방정식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여러 흥미로운 ‘상상과 이론’의 결합들이 벌여져 있습니다. 한동안 2012년 종말론의 근거로 떠들썩했던 마야력의 의미, 그리고 여전히 강력하게 믿고 있는 연월일시의 ‘길들여진 시간들’이 그렇습니다. 기원전 3114년 8월 13일에서 시작해 2012년 12월 23일 끝나는 마야력은 정말 시간의 종말일까요? 2011년 7월 1일, 타임머신을 타고 2011년 7월 1일만큼의 시간 [(2011×365+7×30+1)×24H]을 거꾸로 여행하면 예수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을까요?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영화 〈콘택트〉의 가능성, 부 세텔린드의 시와 빅뱅이론 등은

어떻게 연결될까요? 우주를 항행하는 지구별의 소리는 어떤 음계를 가지고 있을까요?

 

 

은하는

마치 뿔뿔이 흩어진 연기로 이루어진 바퀴처럼 돌아다니고

연기가 바로 별이다.

이것이 태양의 연기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기에, 우리는 다만

태양의 연기라고 말하는데, 당신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러니까 의미를 숨기고 있는 그것에 대하여

정확하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음을. (107쪽)


 

책을 덮고 나면 UFO를 타고 우주여행을 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나’라는 존재를 규정짓는 또 다른 공리를 찾아보자고 오래된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가끔은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설령 그것이 환상으로 치부되더라도 내가 ‘우주의 어디에 있는가,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위치가(位置價)를 짚어 보자는 것입니다.

 

은하계의 중심으로부터 2만 6천 광년 떨어진 가장자리 어디쯤 초속 200km라는 속도로 돌고 있는 수많은 별들 중 태양이라는 항성의 세 번째 행성 지구에서 우주의 시공간에 세계선을 그리며 우리는 지금 여행 중입니다.

 

이제 나와 당신은 조금 더 위대하게 고통스럽고, 조금 더 장엄하게 외로워질 준비가 된 것입니다.

 

《문장웹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