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허공의 산책

미송 2011. 10. 4. 08:02

 

 

허공의 산책 / 오정자

 

바람 묻은 창이 가을이다

바람 냄새 발칙한

바람과 오래전부터 나는

바람과 화해하고 싶었다 신파를 몰고 온

바람과 내가 원래 하나였을 거라고

바람을 일으키려다 툭 떨어지는 잎들

바람에 대한 경고를 던질 때마다 신소리처럼

바람이 웃는다

바람이 우는지 달싹댄다

바람이 천박하거나 비참한 것에 대하여

바람이 고뇌이거나 쓸쓸한 것에 대하여

바람이 선지자처럼 말할 때

바람의 목소리가 가을이다

바람을 따라 도주하려던 머리를 돌려

바람을 쓰고 있는

바람과 나

바람을 쓰고 있는 나와

바람이었던 나

바람은 사치스럽고 벌레같고 절벽같고 외롭고

바람은 또한 나와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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