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Tomas Transtromer)
꿈꾸는 방랑자들을 위한 시
스웨덴의 국민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자연환경에 대한 깊은 성찰과 명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서구 현대시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는 정치적 다툼의 지역보다는 북극의 얼음이 해빙하는 곳, 또는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화해와 포용의 지역으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그리고 북구의 투명한 얼음과 끝없는 심연과 영원한 침묵 속에서 시인은 세상을 관조하며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적 우주를 창조해낸다.
트란스트뢰메르가 보는 이 세상은 '미완의 천국'이다. 낙원을 만드는 것은 결국 시인과 독자들, 자연과 문명, 그리고 모든 이분법적 대립구조들 사이의 화해와 조화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노벨상 수상후보이자 스웨덴을 대표하는 트란스트뢰메르 시집의 국내 출간은 경하할 만한 일이다. 이 세상의 끝, 등 푸른 물고기들이 뛰노는 베링 해협이 산출한 시를 통해 한국 독자들은 미지의 세계로 지적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시를 읽는 사람들은 모두 꿈꾸는 방랑자들이기에.
김성곤 (문학평론가 / 서울대 영문과 교수)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201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그의 시는 함축적이고 투명한 이미지를 통해 현실 접근법을 새롭게 제시했다"고 수상자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그는 1931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났으며 심리학을 전공했다. 13살 때 시를 접했고 1954년 첫 시집 '17개의 시'를 발표했다. 50년 넘게 시집 활동으로 12권의 시집을 냈지만 그가 발표한 시는 고작 200여 편에 불과해 '과작(寡作) 시인'으로 불렸다
자신의 아파트에서 수상 소식을 접한 트란스트뢰메르은 "노벨 문학상을 받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고 그의 부인이 전했다. 초기 자국의 토착적인 자연을 그린 자연시에 파고 들었던 그는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시의 시각을 넓히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또 페트라르카 문학상, 보니에르 시상, 노이슈타트 국제문학상 등을 수상한 기록이 있다.
Tomas Transtromer(1931~)의 시는 한마디로 ‘홀로 깊어 열리는 시’ 혹은 ‘심연으로 치솟기’의 시이다. 또는 ‘세상 뒤집어 보기’의 시이다. 그의 수많은 ‘눈들’이 이 세상, 아니 이 우주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그런 만큼 그의 시 한편 한편이 담고 있는 시적 공간은 무척이나 광대하고 무변하다.
◇문학세계=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한마디로 ‘홀로 깊어 열리는 시’ 혹은 ‘심연으로 치솟기’의 시이다. 또는 ‘세상 뒤집어 보기’의 시이기도 하다. 그의 수많은 ‘눈들’이 이 세상, 아니 이 우주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그런 만큼 그의 시 한 편 한 편이 담고 있는 시적 공간은 무척이나 광대하고 무변하다.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혹은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지역 탐구가 트란스트뢰메르 시의 주요 영역이 되고 있다.하지만 초기 시에서는 깨어남의 과정이 상승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게 아니라 하강과 낙하의 이미지로 제시돼 있다. 시의 지배적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하강의 이미지 주변에는 또한 불의 이미지, 물의 이미지, 녹음(綠陰)의 이미지 등 수다한 군소 이미지들이 밀집돼 있다. 이 점만 보더라도 트란스트뢰메르는 이미지 구사의 귀재, 혹은 비유적 언어구사의 마술사임을 알 수 있다.중기 작품의 특징은 세상 혹은 자연세계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깊은 사색에서 배태돼 천상과 지상과 지하를 넘나드는, 혹은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의 시라는 점이다. 이럴 때 그의 시의 자유분방함은 기독교 신비주의 차원과 긴밀히 연관된다.바로 이런 점 때문에 한때 그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말하자면 그의 시는 종교적 경사가 심해 반대로 정치사회적 맥락이 거세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눈앞의 정치현실을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핵심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비판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길을 꿋꿋이 걸어왔으며, ‘침묵과 심연의 시’의 흐름을 주도했다.
그의 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의 정치사회적 발언을 시적으로 전혀 내비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급진도 반동도 아닌 제3의 길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의 전반적인 중용의 인생관, 혹은 ‘침묵과 깊이의 인생관’에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00%’라는 표현을 극단적으로 혐오한다. 진실은 100%와 0% 사이의 어느 지점에 신비롭게 숨어 있으며, 그 신비스런 진리의 길을 올곧게 따라가는 것이 ‘똑바로 선 인생’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세상의 신비의 책을 읽고 또 읽어야 하며, 한 목표지점에 도달한 순간 또 다른 길이 ‘힘들게’ 열린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이러한 시의 특성 때문에 스웨덴에서 그는 ‘말똥가리 시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시는 말똥가리처럼 세상을 높은 지점에서 일종의 신비주의적 차원에서 바라보되, 지상 자연세계의 자질구레한 세목들에 날카로운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꼼꼼한 거시주의’ 혹은 ‘거시적 미시주의’가 특징적인 시적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순간에 대한 강렬한 집중을 통해 신비와 경이의 시적 공간을 구축하면서 우리들의 비루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그의 시는 심연으로 치솟기, 혹은 홀로 깊어 열리는 깊은 맛을 선사한다.문학평론가인 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트란스트뢰메르에 대해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자연환경에 대한 깊은 성찰과 명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서구 현대시의 새로운 길을 열어젖힌 시인”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정치적 다툼의 지역보다는 북극의 얼음이 해빙하는 곳, 또는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화해와 포용의 지역으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고 평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트란스트뢰메르가 보는 이 세상은 ‘미완의 천국’이다”라면서 “낙원을 만드는 것은 결국 시인과 독자들, 자연과 문명, 그리고 모든 이분법적 대립구조 사이의 화해와 조화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1
발병(發病)이후
병이 난 소년, 뿔처럼 딱딱한 혀를 가지고 비존 속에 감금되어 있다. 소년은 밀밭 그림 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턱을 둘러싼 붕대가 방부 처리를 짐작케 한다. 안경은 잠수부 안경처럼 두툼하다. 어둠 속에 울리는 전화벨처럼 만사가 대답 없이 요란하다. 하지만 소년 뒤의 그림. 그림은 밀밭이 황금 폭풍일지라도 보는 사람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한 폭의 풍경화. 청색 해초 같은 하늘과 떠다니는 구름들. 아래쪽 황색 파도 속에는
백색 셔츠가 몇몇 항해하고 있다. 추수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림자를 던지지 않는다. 밀밭 건너 멀리 한 남자가 서 있고, 이쪽을 바라보는 듯, 챙 넓은 모자가 남자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다. 도움이라도 주려는 양, 남자는 이곳 방 속의 어두운 형체를 관찰하는 모습이다. 자기 몰두의 병약한 소년 뒤에서, 모르는 사이에 그림이 차츰 확대되면서 열리기 시작한다. 그림이 불꽃을 튀기면서 탁탁 소리를 낸다. 소년을 깨우려는 듯, 밀알 하나하나가 타오른다! 밀밭 속의 남자가 사인을 보낸다. 그가 가까이 와 있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2
기억이 나를 본다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 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3
정오의 해빙
아침 공기가 타오르는 우표를 붙인 자기 편지를 배달했다.
눈(雪)이 빛났고, 모든 짐들이 가벼워졌다. 일킬로 그램은 칠백 그램 밖에
나가지 않았다.
태양이 빙판 위로 높이 솟아, 따뜻하면서도 추운 지점을 배회했다.
마치 유모차를 밀듯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나왔다.
가족들이 밖으로 나왔고, 수 세기만에 처음인 듯 탁 트인 하늘을 보았다.
우리는 마음을 아주 사로잡는 이야기의 첫 章에 자리하고 있었다.
꿀벌 위의 꽃가루처럼 모피모자마다 햇살이 달라붙었고,
햇살은 겨울이라는 여름에 달라붙어, 겨울이 떠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눈 위의 통나무 전문화가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나는 물었다.
'내 유년 시절까지 따라올래?' 통나무들이 대답했다. '응.'
잡목 덤불 속에는 새로운 언어로 중얼거리는 말들이 있었다.
모음은 푸른 하늘, 자음은 검은 잔가지들, 그리고 건네는 말들은 눈 위에
부드러웠다.
하지만 소음의 스커트 자락으로 예를 갖춰 인사하는 제트기가 땅 위의 정적
을 더욱 강하게 말었다.
4
역사에 대하여
건물에서 멀지 않는 공터에
신문지 한 장이 몇 달째 누워있다. 사건을 가득 담고
빗속 햇빛 속에 밤이나 낮이나 신문은 그곳에서 늙어간다.
식물이 되어가는 중이고, 배추머리가 되어가는 중이고,
땅과 하나가 되어가는 중이다.
옛 기억이 서서히 당신이 되듯.
5
몇 분간
늪에 웅크린 소나무가 왕관을 떠받친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뿌리에 비한다면, 넓게 뻗은, 은밀히 기어가는, 죽지 않는, 혹은 반쯤 죽지 않는
뿌리 조직에 비한다면.
나 너 그녀 역시 가지를 뻗는다.
의지 바깥으로.
대도시 바깥으로.
우유 빛 여름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진다.
나의 다섯 감각들이 다른 생명체에 연결된 듯한 느낌이 온다.
어둠이 흘러내리는 운동장에서 밝은 옷을 입고 달리는 육상 선수처럼
끈질기게 움직이는 다른 생명체에 연결된 듯한 느낌.
6
엘레지
첫 번째 문을 연다.
햇빛 비치는 커다란 방.
육중한 차가 길거리를 지나면서
도자기를 떨게 한다.
이호실 문을 연다.
친구들, 어둠을 마셔
눈에 보이는 친구들!
삼호실 문. 비좁은 호텔방.
뒷골목이 보인다.
아스팔트 위를 밝히는 가로등 하나.
경험, 그 아름다운 찌꺼기.
7
비가
그가 펜을 치웠다.
펜이 탁자 위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펜이 텅 빈 방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그가 펜을 치웠다.
쓸 수도 침묵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이토록 많다니!
멋진 여행 가방이 심장처럼 고동치지만,
그의 몸은 먼 곳에서 일어나는 무슨 일로 뻣뻣해진다.
밖은 초여름,
초목에서 들려오는 휘파람소리, 사람인가 새인가?
꽃핀 벚나무가 집에 돌아온 짐차를 껴안는다.
몇 주가 지나간다.
밤이 서서히 다가온다.
나방들이 창유리에 자리잡는다.
세상이 보내온 조그만 창백한 전보들.
8
1990년 칠월에
장례식이 있었고,
죽은 자가
내 생각들을
나보다 잘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르간이 침묵을 지키고 새들이 노래했다.
무덤이 바깥 햇빛 속에 놓였다.
친구의 음성은
순간들의 먼 저편에 속했다.
집으로 차를 몰고 올 때
여름날의 반짝임이,
비와 정적이 뚫어보고 있었다.
달이 뚫어보고 있었다.
9
로마네스크 아치
거대한 로마네스크 교회의 반 어둠속에서, 관광객들이 서로를 밀쳤다. 둥근 천장이 둥근 천장 뒤에 입을 벌리고 있어, 완전히 볼 수 없었다. 몇 개의 촛불들이 깜빡거렸다. 얼굴 없는 한 천사가 나를 껴안고, 나의 온몸을 관통하여 속삭였다. "인간됨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자랑으로 여기시라! 그대의 내부에서 둥근 천장이 둥근 천장 뒤에 끝없이 열리나니. 그대는 한 번도 완전하지 못할 것이나, 그것이 그분의 뜻이나니." 눈물이 앞을 가려 나는 존즈씨 부부, 다나카씨 그리고 사바티니 여사와 함께 태양이 들끓는 광장으로 밀려나왔고, 그들 모두의 내부에서 둥근 천장이 둥근 천장 뒤에 끝없이 열렸다.
10
황금 장수말벌
도마뱀 저 발 없는 도마뱀이 현관 발판을 따라 흐른다,아나콘다처럼 고요하고 위엄 있게, 다만 크기가 다를 뿐.하늘이 구름으로 덮여 있지만 해가 밀고 나온다. 이런 날이다.
오늘 아침 내 사랑하는 여자가 악령들을 쫓아버렸다.마치 남쪽 어딘가에 있는 어두운 헛간의 문을 우리가 열었을 때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바퀴벌레들이 구석으로 돌진하고 벽 위로 올라가고 그리고 사라지듯이, 이 때 우리는 바퀴벌레들을 보았고 또한 보지 않았는데,그렇게 내 사랑하는 여자의 적나라한 모습이 마귀들을 달아나게 했다.
마귀들이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그러나 그들은 돌아오리라.천 개의 손을 가지고, 신경(神經)의 구식 전화교환국 속에 있는 전화선들을 넘어서.
7월 5일이다. 루핀들이 바다가 보고 싶은 듯 위로 뻗고 있다.우리는 아무 문자도 따르지 않는 침묵 지키기의 교회, 경건의 교회 속에 있다.마치 고위 성직자들의 저 용서없는 얼굴들과 돌에 잘못 새겨진 신의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돈을 비축해놓은, 축자적(逐字的)으로 문자에 충실한 TV 설교가를 본 적이 있다.하지만 그는 이제 힘이 없었고 경호원의 부축이 필요했다.경호원은 재갈처럼 딱딱한 미소를 짓는 잘 차려입은 청년이었다.비명을 질식시키는 미소.부모가 떠날 때 병상에 홀로 남은 아이의 비명.
신성(神性)이 인간을 스쳐가며 불꽃을 밝혀놓고,그러고서는 물러난다.왜?불꽃이 그림자를 끌어당기고, 그림자들이 바스락거리며 날아들어 불꽃에 합류하고,불꽃이 치솟으며 검어지고, 검은 질식의 연기가 뻗어나간다.마침내 검은 연기뿐, 마침내 경건한 사형집행관뿐.경건한 사형집행관이 장터와 군중들 위로 몸을 기울이고,장터와 군중들은 사형집행관이 자신을 볼 수 있는 흐린 거울이 된다.
최대의 광신자는 최대의 불신자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광신자는, 하나는 백 퍼센트 눈에 보이고 다른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둘 간의 계약이다.'백 퍼센트'라는 표현을 내가 얼마나 증오하는지.
정면에서가 아니면 어디에서도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자들멍한 마음이 결코 될 수 없는 자들문을 잘못 열어 '정체 불명자'를 얼핏 보게 되는 일이 결코 없는 자들,이들을 지나가라!
7월 5일이다. 하늘이 구름으로 덮여 있지만 해가 밀고 나온다.발 없는 도마뱀이 현관 발판을 따라 흐른다, 아나콘다처럼 고요하고 위엄 있게.발 없는 도마뱀은 관료주의가 없는 듯하다.황금 장수말벌은 우상숭배가 없는 듯하다.루핀들은 '백 퍼센트'가 없는 듯하다.
페르세포네처럼 우리의 포로인 동시에 통치자인 그런 심연을 나는 알고 있다.나는 자주 그곳 뻣뻣한 풀 속에 누워땅이 내 위에 아치를,둥근 천장을 그리는 것을 보았다.자주.그것이 내 삶의 절반이었다.
하지만 오늘 나의 응시가 나를 떠났다.나의 눈멂이 사라졌다.검은 박쥐가 내 얼굴을 떠나 여름의 밝은 공간을 가위질하며 돌아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