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세상에 문제아는 없다

미송 2011. 10. 18. 14:23

 

세상에 문제아는 없다 / 오정자

 

 

작년 겨울 동해에서 아동센터를 막 시작한 친구의 공간을 다녀오는 길에 나는 하얀 자작나무들을 보았다. 나무들이 벌거숭이 아이처럼 달려들 것 같은 착각에 빠지려는 순간 나는 얼른 동화 한 컷을 찍었다. 그리고 어느새 마당 한 켠 펌프 아래에 앉아서 울보 Y의 발을 씻겨주고 있는 나를 만났다. Y는 열 살, 아무데서나 옷을 훌렁훌렁 벗는 아이였다. 속살에는 때가 늘 꼬장꼬장 했고 때로는 아빠에게 매 맞은 자국으로 종아리나 허벅지에 퍼런 줄이 그어져 절룩대기도 했다. Y는 친구들과 다투기 일쑤였고 그 결과는 항상 참혹했다. 얻어맞은 얼굴로 내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이런 일은 다반사였지만 유독 그가 내 마음을 끈 것은 주방에서 일하는 선생님을 가리켜 “저 분이 내 엄마야.”라고 되풀이한 일이었다. 사실 선생님은 Y의 엄마가 아니었다. Y의 엄마는 이미 가출한 상태였다. 엄마의 빈칸을 Y는 나에게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퇴근할 때 늘 밖에서 기다리다가 집까지 바라다 달라고 조르던 Y였다. 엄마와 친구들로부터 왕따가 된 기분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사랑은 속수무책이었다. 아이들에 대한 대책 없는 내 마음도 그렇게 10개월간 방과 후 공간에 머물렀다.

 

원주로 이사를 와 원주 YMCA의 사업단에 합류하여 아이들을 또 만났다. 아이들은 전에 근무하던 곳처럼 늘 시끄러웠다. 선생님을 쌤이라고 아무렇게나 불러대고 어른이 모르는 외계어(엄친아, 지름신, 꼼수대왕, 된장녀, 그리고 C8)만 쓰는 듯 하였다. 군대 간 아들 녀석이 내가 아이들과 지낸다는 걸 알고 전화를 했다. 선생님이 화를 내거나 아이들을 꼬집으면 안되지요, 하며 아들은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자기가 어렸을 때 엄마인 나로부터 받은 상처가 생각났나 보다. 그래서 더욱 다정하게 아이들을 상대하기로 다짐했지만, 여기서도 역시 Y와 같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의 속을 가장 많이 썩이는 아이가 선생님의 말을 가장 잘 듣는 아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원한 기억 속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다. 이번에 부딪친 D는 선생님을 당황시키는 재주가 있는 아이였다. 모범적인 평소의 모습이 순간 어찌해 볼 수 없는 반항아로 돌변했을 때 나는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를 불렀다. 사실 아이 하나를 교육하는 일은 학부모 두 명을 함께 상대하는 일이다. 이는 “삼각형 속의 점 하나”라는 구도로서 선생님과 아이의 아빠와 엄마가 아이를 둘러싸고 협력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D의 엄마가 침울한 표정으로 찾아왔다.

 

엄마는 아이의 성질이 원래 그렇기에 어떻게 하기가 어렵다는 말이었고, 나는 어머니와 돌아가는 D의 면전에서 끝까지 용서 못한다는 태도를 지우지 않았다. 돌아서는 D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 흙빛 표정은 퇴근 후에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D와 있었던 일을 말하자 혹시 그 아이의 정신상태가 이상한 것이 아니냐고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에 나의 태도가 아까 D가 나에게 보인 태도처럼 돌변하며 발끈해졌다. 나는 “세상에는 문제아가 없어요.”라고 언성을 높였다. 어느새 나는 D의 편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내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지만 세상의 아이들은 모두 건재하다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자라고 있다는 하나의 견고한 신념이었을 것이다.

 

2009. 11월 중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