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 시인
일방통행 식 요즘 詩風 질타, 소통과 교감에 무게
시인 이하석이 시집 ‘상응’을 펴냈다.
시집 ‘것들’ 이후 5년 만으로 32편의 시를 묶은 책이다. 근래에는 60, 70편을 한 권에 묶는 것이 일반적인데, 절반 정도로 내놓은 것에 대해 이하석 시인은 “독자들 읽기 편하시라고”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김수영, 김춘수 시인 등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대체로 30여 편으로 시집 한 권을 묶었다면서 형식적으로 뒤를 돌아볼 때가 됐다는 점도 염두에 두었다고 덧붙였다.
‘무엇에건 잘 슬피 물들고, 그래도 늘 깨끗하게/ 보인다, 본다./ 절망도 젊은, 약은 점쟁이 같으니라고./ 그의 언어는 가슴에서 나오다가 어깨를 돌아 날이 서서/ 우리 뒷덜미 치며 바람처럼 머리칼 흩뜨린다./ 어떤 말이든 무슨 강이건 막말로 맨 몸으로 건너간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젊은 시인- 중에서
이 시에서 보듯 이번 시집의 시들은 다소 서정적이다. 근래 젊은 시인들이 대단히 내면적이고, 개별적인 시를 쓰는 경향을 고려할 때, 이하석의 시는 익숙한 듯한데, 그래서 오히려 낯설다.
이하석 시인은 “문학언어는 원래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익숙한 이성에 저항하는 것이 문학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쳐 요즘의 문학언어는 정교하고 치밀하지만 소통이 안 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번에는 소통 쪽에 다소 무게를 두었다”고 말했다. 송재학 시인은 “가독성이 뛰어나서 몇 번이고 꼼꼼하게 읽게 만든다. 서가에서 편안하게 교감한다”고 말했다.
‘은행나무의 하늘이 노랗게 내려앉는다./ 겨울비 오기 전 잠깐 밟아보는 푹신한 하늘./ 나무 위엔 봄 여름 가을 내내 가지들이 찔러댔던 하늘이 상처도 없이 파랗다. 가지들이 제 욕망의 잎들을 떨군 다음 겨울 오기 전 서둘러 제 꿈을 바람의 실로 꿰맸기 때문이다.’-하늘-
이하석 시인은 시편 수를 줄이고, 소통에 무게를 둘 뿐만 아니라, 마침표까지 빠짐없이 꾹꾹 찍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요즘 시풍을 낯선 눈으로 돌아보게 한다. (매일신문)
우선 시집의 두께가 32편으로 얇다는 것과 현대 시집들이 안고 있는 시의 난해성의 관점에서『상응』은 훌륭히 극복하고 있다. 근래 젊은 시인들의 낯선 어법과 새로운 상상력, 기괴함과 접신된 무의식의 흐름, 비약과 과감한 생략, 성도착과 음습한 귀신 적 몽환 등에서 거의 벗어난, 개인 서정과 삶의 공동체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시를 쓰는 사람보다도 시를 읽는 사람이 더 고통 받는 시대”가 현대시의 시대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것도 시의 한 부분이지만, 세상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역할도 또한 시의 중요한 책무이다. 이하석의『상응』의 시편은 부드럽게 가슴으로 읽힌다. 시의 건더기와 국물이 진국이다. 좋은 시는, 시 속을 들여다보면 시인의 숨소리, 눈길, 시선, 생각의 파편들이 행간 속에 꼼지락거리며 살아서 본다. 시어를 생다지로 우겨 넣지 않는다. 행간이 끊어진 시들을 읊조리면 너무 힘이 쓰인다. 시는 오랫동안 사유가 잘 곰삭아서, 그 시인만의 독특한 발효된 향기가 나야 한다. 이번 시집의 표제시가 된 시「상응」이 나는 가장 좋았다. (못둑 위에서 너는 검은 염소처럼 가만히 뿔 세운 채 / 못둑 아래 서 있는 나와 내 집을 내려다본다. / 못물보다 더 아래의, 고요한 깊이 가늠하듯이. // 그러면 나는 또 못물 바닥의 돌처럼 바람 기운에 어룽지며 / 그늘의 잎들 다 턴 채 빨간 등들 주렁주렁 매단 감나무 한 그루를 / 환하게 못둑 위로 올려보낸다.「상응」, 전문) 이 시는 두 개의 시선(視線)이 못둑이란 하나의 풍경에 초점이 모인다. “못둑” 위에서 내려보는 “염소”의 시선과 못둑 아래에서 올려보는 “나”의 시선은 합치된다. 이것이 ‘상응’이다. 전에 이하석 시인의 집필실을 방문했을 때, 그 못둑을 직접 산책해 본 경험이 있다. 시는 체험의 산물이다. 시「상응」읽기의 백미는 “못물보다 더 아래의, 고요한 깊이 가늠하듯이.” 시인이 홍시가 달린 감나무를 “못둑”으로 올려 보내는, 그 아름다운 서정의 풍경이 주는 매력에 담겨있다. 김동원 시인 <이하석의 서정 시집『상응』읽기> 중에서
담배 / 이하석
담배 때문에 수명이 짧아진다고 텔레비전에선 야단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죽지 않고 싸우며
여전히 담배 연기가 아늑하게 인간의 내외에 깔려 있다
그렇지만 나도 결국 끊어야 하지 않을까
하긴 끊어야 한다는 생각이 문제고, 그래서
오히려 끊는 게 더 공포스러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끊어야 한다면 담배보다 오히려 더 해로운 것들
연애나 결혼 또는 이렇게 시 만드는 일들
이 치명적인 것들 끊는 게 더 급하지 않을까
담뱃갑이 여기 오래전부터 놓여 있다
그리고 재떨이는 거기 놓여 치워지지 않는다
각이 져 있거나 둥글게 파여진 라이터들은
아름다운 무늬나 디자인이 새겨져 그들 곁에 늘 있다
그것들은 서로 없어지지 않는다
끊을 수 없는 사랑처럼 끈질기게
서로 연기 한 모금씩 피워서 나누어 가지길 기대하며 있다
온 데서 담배 피기는 규탄된다. 애연가들은 이제 평화롭고 깊게 애연할 수 없다. 선량한 주위 사람들이 겪는 간접흡연 피해가 크다 하니 가슴 아픈 일. 초목들도 괴로워한다니 역시 가슴 아픈 일. 어쩐다? 대세에 꺾이겠지. 자신은 물론 삼라만상의 건강에 해롭다 하니. 건강장수 숨은 욕망이 환경운동과 맞물린 시대. 담배가 유일한 친구 같은, 시 속의 주인공 같은 이들은 어찌 할까. 오래된 친구를 저 살자고 버리나. 참, 심정만 갖고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 못하겠네. <이진명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