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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의 유선사(游仙詞)

미송 2011. 11. 14. 12:33

계수나무 꽃잎에 맺힌 이슬이 붉게 난새의 깃을 적시우네

 

계화연노습홍난  (5)

 

 

 

'장자'에서는 하늘 즉 자연이 된 사람을 진인眞人이라고 한다.

자유로운 존재이며 보여지는 대상과 주체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제1장에서는 천지간 만물의 생성본연으로 되어짐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사람이 있다. 그 되어짐이라함은 사람의 정신 변화체계이다.

이것은 인간은 무엇이며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시한 것이다.

땅을 바탕으로 하늘을 이해하려는 인간 본연의 정신적 삶의 원형이 마치

연못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파장을 이룬다.

 

 

 

 

<조선시대 여류 대문호 난설헌 허초희>

 

 

유선사游仙詞 (1)  

 

천년을 이어온 아름다운 연못에서 목왕을 배웅하고

잠시 파랑새 앞세워 유랑의 연회에도 참석하였다가

날이 밝아서야 하늘로 돌아가려고 풍악을 울리며

시녀들과 함께 흰 봉황새에 올랐다

 

 

유선사 (2)

 

골짜기에 들어서자 아홉 마리의 용이 산다는

깊은 연못이 나왔다

차가운 구름은 푸른 연꽃에 스며들고 있었다

난새를 타고 천국의 사자를 따라 서쪽으로 가는 길에

꽃 앞에 서서 잠시 적송자*께 예를 올렸다

 

*비를 관장하는 신

 

 

유선사 (3)

 

이슬이 허공에 스며드니 나무위에 뜬 달은 더욱 밝아

하늘에서 울리는 퉁소소리 꽃잎 날리는 듯 하여라

이른 아침 사자는 금 호랑이를 타고

붉은 깃 휘당을 나부끼며 옥청궁으로 향하는구나

 

 

유선사 (4)

 

신비로운 바람이 불어와 푸른 옷자락 날리며

난새가 새겨진 퉁소를 들고 오색구름에 기대어서니

꽃구름 밖에 옥동자는 백호를 채찍하며

신선이 계신 성문에서 소모군을 맞이하고 있었다

 

 

유선사 (5)

 

밤 새워 향불 피우며 천단에서 예를 올리니

알싸한 바람이 옷깃을 펄럭여 학창의*는 차가웁고

풍경소리 낮고 맑게 울려 퍼지니 달과 별은 더욱 서늘하여

계수나무 꽃잎에 맺힌 이슬이 붉게 난새의 깃을 적시우네

 

*학창- 학처럼 흰 바탕에 깃과 밑자락을 까맣게 두른 복색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덕망이 있는 학자가 입던 포袍로 학과 같이 고결하고 숭고함을 상징하는 옷. 여름에는 모시나 면으로 만들고 겨울에는 명주나 비단 등으로 만들며 허리에는 세조대, 머리에는 복건이나 와룡관을 쓰고 학창의를 입었다 함. 

 

 

유선사 (6)

 

서쪽 천단에서 잔치가 끝나니 하늘에 북두칠성도

어느새 희미하여

적룡은 남쪽으로 학은 동쪽으로 날아갔다

단약을 달이던 약방의 시녀는 단잠에 겨운 듯

난간에 기댄 채 새벽이 되어도 돌아갈 줄 모르고

졸고 있었다

 

 

유선사 (10)

 

하늘에는 안개도 걷혔건만

학은 아직 돌아올 줄 모르고

계수나무 꽃그늘 속에 사립문은 고요히 닫혀 있구나

작은 시냇가에는 종일토록 신령스런 비가 내리니

땅 위에 가득 어려 있는 구름에 젖어

날지 못하는가 보다

 

 

유선사 (9)

 

환희 빛나는 성스러운 계수나무에

신비한 안개가 드리워졌다

채찍에 내리치며 용수레를 타고 하늘로 조회 가는데

붉은 구름이 자욱하게 깔리고

길에는 다니는 사람 없으니

꼬리 짧은 삽살개만 풀밭에서 졸고 있다

 

 

유선사 (11)

 

길바닥에 괸 물이 치솟아

푸른 동산에 붉은 집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려 하니

화로 앞에서 졸며 지새우는 학의 밤은 길기만 한 것을

이름 새벽에 일어난 늙은 신선께서 명월을 부르시니

바다 노을 아득한 곳에서도 퉁소소리 들리는구려

 

 

유선사 (79)

 

오수산에 구름이 낮게 드리우며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수정궁에 물결치던 가을도 발처럼 걷히고

단풍향기 속에서 월학과 꿈같은 세월을 보내노라니

궁궐 문 앞에서 악록화가 괴로워하고 있었다 

 

유선사 (12)

 

서늘한 달빛에 탄 기운마저 감도는 밤은

더욱 깊어만 갔다

아름다운 왕비는 옥비녀를 빼면서

길 떠날 채비를 하고

다시금 채찍 잡으며 돌아갈 길 바라보니

서쪽의 푸른 성곽에는 오색구름이 자욱하였다

 

*그대는 산으로 들어가던 날을 잊었는가. 그대는 다시 예전의 낡은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가.

왜 그대는 햇빛 찬란한 봉우리를 떠나 아래로 내려가려 하는가. 계곡에는 어둠뿐이라는 것을 그대는 알고 있다. 도대체 그대가 내려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짜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나는 인간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