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火氣)의 슬픔
2008년 3월 8일에는 일본 시카마치 해변에서 야마시타 요스케라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타오르다 2008’이라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는 방화복을 입은 채 10여 분간 불타는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했다. 아마도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뜨겁고 긴장된 연주를 해보고 싶었던 거다. 나방이 불 속으로 뛰어들 듯 불길 속에 자신을 활활 태우며 절정의 음악을 연출해 보이고 싶었던 거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는 이보다 간절한 사연이 있다. 광산노조의 장기파업으로 빌리네는 수입이 끊기게 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도 온기 없는 집에서 추운 명절을 보내야 하는 처지가 된다. 마침내 아버지는 결단을 내리고 죽은 아내의 피아노를 밖으로 끌어낸다. 연이어 도끼날을 받는 피아노, 악기도 고통을 느끼는지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낸다. 빌리와 가족들은 벽난로에 피아노를 태우며 초졸한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하지만 돌아앉은 아버지의 어깨는 들먹이고 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 <피아노>에서도 에이다의 피아노는 갖은 수난을 당한다. 바닷가에 버려지고, 남편의 도끼날을 정면으로 받고, 그도 모자라 바다에 빠뜨려져 물 속 깊숙이 수장된다.
방치하고, 부수고, 불에 태우고, 도끼로 찍고, 물에 빠뜨려지고…, 피아노의 수난을 일일이 들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작가와 감독들은 피아노에 사람과 똑같은 인격을 부여했다. 이들은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피아노를 훼손하면서 인간의 상처와 고뇌, 실존의 문제를 간곡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람을 이 같은 방법으로 파괴해 보여줄 수는 없었을 테니까.
[출처] 시인광장 예술산책
파괴와 고통 앞에서 새처럼 자유롭기만 할 사람은 없다. 있다면, 그 사람은 지독한 새디스트이거나 마조히즘으로 심신이 찌든 경우, 둘 중에 하나이다. 생각 여하에 달렸다는 인간의 삶- 몇 가지 주제로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非시인들-은 고로 고독한 바다. 고독과 상처와 절망에 대하여 끝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집착이 내게는 더 가슴 아픈 것이다. 누구나 동정 보다는 진실한 사랑을 원하지만 타인의 사유방식을 이해하기 보단 자신의 존재감을 앞세운다. 사랑과 자존심이 그렇게 병렬한다. 모순이지만 실존은 언제나 공동의 자리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 함께 흘러가는 듯 보이는 강물이 종국엔 영 딴판인 종착지에 이르기도 하면서... 살아간다는 건 사랑하는 것 보다 우선일 거라 고 말하던, 20대 시절 어린 남자의 강변(鋼變)을 떠올린다. 그래... 사랑할 수 없어서 더 사랑을 말하는 우리는 그렇게 유유부단(流流不斷)하다. 다만, 흘러간다는 것을 위안으로 여길 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