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 - 최승호
그들은 늘 고요하게 존재했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길이
그들의 길이었고
녹아서 큰 물의 흐름에 합류했다
"눈사람 생각 " 중에서
이마 / 최승호
긴 코가 녹아 흘러내리는
얼음코끼리
은회색 象王
넓은 이마로 향기를 뿜는
코끼리가 있다던데
내 이마는 지금 뜨거운 절벽
무소의 뿔처럼 종기가 났다
썩으면 곪고
곪으면 터진다던데
지금은 고름을 만드는 시간
내 이마는 불타는
절벽
무소의 뿔처럼 종기가 났다
사진의 눈은 사진 밖의 눈을 부른다. 사진 밖의 눈은 사진 안의 눈을 먼저 찾는다. 얼굴이 나오는 모든 사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데가 사진 속의 눈이다. 사진에서 눈은 마음의 창이 아니다. 눈은 사진의 문이다. 그 다음 눈 바로 다음에 들어오는 드러나는 부위가 사진 속 얼굴에 대한 인상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눈 코 입 귀와 이마, 머리카락 마음의 지형지물들). 이마! 그 넓은 이마. 최승호 시인의 얼굴 사진을 볼 때마다, 눈 다음으로, 그의 이마가 눈에 띄었다. 그의 얼굴 사진에서 눈 다음으로, 어쩌면 눈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얼굴’이 이마이다. 그의 이마는 넓고 또 넓어서 아름답다(많이 벗겨져 있는 상태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 한때 나는 그의 이마를 보며, 그의 이마는 아마 성능이 대단히 뛰어난 안테나(혹은 레이다 또는 집열판)일 것, 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히말라야에 사는 신비주의자들은 제3의 눈『心眼』의 위치를 이마에서 찾는다. 경험론적 해석학(관상)에서도 넓은 이마는 지혜의 거처거니와, 그의 눈이 세속도시에 초점을 맞출 때(그의 시집에 나온 모든 사진은 지평선과 수평 이하를 이룬다. 이를테면 눈을 ‘치켜뜨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의 이마는 천상(天上) " 언어 이전 이후, 생각 이전 이후 " 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으로 보였다(나처럼 앞머리를 늘 길러 이마를 가리는 족속은 특히 지혜가 모자란다. ‘저 너머’와 교신할 때, 머리카락이 전파를 교란한다. 제3의 눈이 없는 존재들). “내 이마는 지금 뜨거운 절벽 무소의 뿔처럼 종기가 났다 썩으면 곪고 곪으면 터진다는데 지금은 고름을 만드는 시간 내 이마는 불타는 절벽 무소의 뿔처럼 종기가 났다.” 그가 지난 5월에 펴낸 일곱번째 시집 『눈사람』에 나오는 시 " 이마" 다. 이 시는 “긴 코가 녹아 흘러내리는 얼음코끼리, 은회색 象王”으로 시작하고 있어서, 코끼리(불가의 대표적 상징 동물)와 ‘나’와의 비유를 통해 ‘나’의 용맹정진의 한순간, 깨달음의 크낙한 경지를 바로 코앞에 둔 한 선승의 당당한 희열을 노래한 시로 읽었다, 나는.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