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지드 <전원교향곡>
전원교향곡
그것은 미소라기보다 부활이었다. 불꽃처럼 살아나는 생명. 마치 그것은 여명 무렵에 눈 쌓인 산꼭대기를 어둠 속에서 끌어내어 비추는, 알프스 산봉우리에서 볼 수 있는 보라빛과도 같았다. 그것은 신비의 생채(生彩)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아이의 갑작스러운 질문은, 내가 그때까지 제르트뤼드의 천사 같은 아름다움에 주의를 돌리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썼던 만큼 더욱 나를 당황하게 했다. 이런 경우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오가는 말이 지질 검사기의 소리와도 같고, 두 사람을 서로 갈라놓을 수도, 끝내는 그 장벽과 저항이 점점 더 두터워질 위험도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에 잘못이란 없는 법이란다” “저는 그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요. 저는 아무도 괴롭히고 싶지 않아요. 저는 사람들에게 행복만을 주고 싶어요.” 제르트뤼드의 그 순진한 고백을 듣고도 그 아이가 날 사랑한다는 말이 돼 그렇게도 어색하고 죄를 짓는 것처럼 두렵게 들렸는지 알 수 없다.아마도 그것은 결혼을 떠나서는 사랑이 허용될 수 없다고 굳게 믿었던 까닭일 것이다. 사랑은 불미스러운 것이며 그 때문에 그것은 죄가 되고, 죄라는 것은 편안하지 못한 존재라 여겨오던 나로서는 그 아이를 향하는 마음이 사랑이라곤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너희가 만일 눈이 멀었더라면 죄가 없으련만’ 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찬란한 빛을 내며 내 앞에 마주섰다.
죄야말로 영혼을 어둡게 하며 기쁨에 저항한다. 제르트뤼드의 온몸에서 비치는 완전한 행복은 그 아이가 죄를 모르는 데서 온다. 그 모녀 사이에는 나도 한몫 끼고 싶을 만큼의 대화다운 대화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서재에 틀어박혀 있을 때보다 그들 곁에 있을 때에 더 뼈저린 고독을 느꼈다.
“그러나 자연의 법칙에는 인간의 법칙과 신의 법칙에서 금지되어 있는 것도 허락되는 수가 있기도 하지.” “신의 법칙은 바로 사랑의 법칙이라고 제게 자주 말씀하셨잖아요.” “그렇다면 목사님은 우리의 사랑이 신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인정하시는 군요?”
“제르트뤼드.. 너는 네 사랑이 죄라고 생각하고 있니?” “우리의 사랑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목사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
주여 저는 때때로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제르트뤼드의 사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를 단념하겠사오니 당신은 그 아이가 행복하게 살 것을 허락하시옵소서.
“저는 목사님의 마음을 괴롭혀드릴거예요. 우리 사이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남아서는 안돼요.
제가 지크를 보았을 때, 곧 제가 사랑하던 것은 목사님이 아니고, 그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 나로 인해 갈라졌기 때문에 나를 피해 신의 품에서 둘이 결합하기로 한 것 같았다.
앙드레지드 <전원교향곡> 대사 중에서.
심방을 마치고 귀가하던 목사는 어느 소녀의 간청으로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곳을 방문한다. 죽어가는 노파와 제대로 말을 할 줄 모르고 괴성만 지르는 장님소녀가 있는 곳이었다. 목사는 노파의 임종을 맞아주고 혼자서 장례 준비를 다 해준 후, 무작정 소경소녀인 제르트뤼드를 데리고 집으로 온다. 예상했던 대로 부인인 아멜리에게 핀잔을 듣지만 자신의 소임이라 여긴 목사는 제르트뤼드에게 느끼는 것, 표현하는 방법 등을 가르치며 말하는 방법을 일깨워주려고 노력한다. 제르트뤼드는 목사의 따스한 관심과 배려로 외부인에 대한 경계를 없애고 조금씩 세상에 적응하기 시작하고, 목사의 가르침에 따라 아름다운 세상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목사의 아들인 자크도 아버지 눈을 피해 제르트뤼드에게 관심을 베풀지만 제르트뤼드는 하나님 사랑을 알게 해 준 목사를 깊이 사랑하게된다.
그러던 어느날 목사는 의사로부터 제르트뤼드가 치료를 받으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권고를 듣게 되는데,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제르트뤼드에 대한 사랑이 있음을 깨닫는다. 목사는 제르트뤼드와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을 확인하고 사랑은 죄가 아니라고 말해주지만, 자신 내면 속에 끓어오르는 갈등에 괴로워한다. 목사직을 하기 위해서는 제르트뤼드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하나님께 절규하면서도 제르트뤼드를 보낼 테니 제발 그녀를 행복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나 눈을 뜨게 된 제르트뤼드는 자신이 사랑했던 것은 목사의 아들인 자크였으며 자크와 목사는 신앙대립으로 서로 돌아섰음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뿐만 아니라 자신으로 인해 목사와 아내와의 갈등이 심화된 것을 목격하고 죄의식마저 느끼게 된다. 이 세상은 자신이 머릿속으로 그린 환상보다 더 아름다웠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대상은 목사가 아니라 자크였는데, 목사가 자신에 대한 자크의 사랑을 막고 자크를 성직으로 떠나버리게 한 것을 원망하며 죽음을 선택한다. 결국 자크와 제르트뤼드는 목사의 곁을 떠나고 목사는 아내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한다.
1 인칭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지드가 50세 때에 집필한 것으로 하나님 사랑과 여기서 파생되는 인간의 사랑을 그려냈다. 목사는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방편으로 장님소녀를 사랑으로 보살피지만 결국 인간의 사랑으로 변하게 된다. 한번도 이성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죄라고 여기지 않았음에도 소녀의 사랑에 자신의 마음도 인간적인 사랑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느낀다. 소녀는 눈을 뜬 후에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은 목사의 따스하고 섬세한 마음과 자크의 수려하고 준수한 외모였음을 알게되고 혼돈을 이기지 못한 채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앙드레 지드는 신교도의 아버지와 구교도의 어머니 밑에서 어렸을 때부터 신앙적인 갈등을 안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 갈등은 문학으로 승화되고 등장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파헤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타이핑 by 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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