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하나, 둘, 하나

미송 2012. 2. 11. 09:23

 

 

 

 

엘지 유 플러스에서 스마트폰을 구입하면서 아는 직원이 굿세이브 카드로 연결하면 폰값이 포인트로 삭감된다기에 솔깃 넘어갔다. 그 후 남편으로부터 종종 몇 차례 꼴통이란 소리를 들었다. 여자들 잔욕심은 못 말린다느니, 세상에 문자 그대로의 공짜가 어딨냐느니, 어리석은 생각은 그만 접고 한꺼번에 폰값을 다 내주라느니. 듣고 보니 정말 속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솔직히 헷갈린다. 어차피 매달 긁히는 카드인데 그게 그거라는 나의 생각과 그의 생각은 왜 동일하지 않지 하면서, 그러면서도 갸우뚱하니 내가 정말 바보인가 의심해 봤다.

 

별안간 카톡에 올라온 인사말들이랑 오랜만에 계획에도 없이 만나게 된 얼굴사진들. 그 중에 예전에 잠간 내 손길을 탔던 지후란 아가가 제일 반가웠다. 엄마가 올려놨나 그 녀석 많이 컸네 하면서 반가운 김에 24개월이나 넘긴 그 사내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엉뚱하게 문자를 날렸다. 그 옛날 경포호수의 여인 s는 여전히 예쁜 척 하는 모습을 올려놨기에 왠지 싫증이 났다. 자동으로 떠오른 서로의 인사말. 그러나 본 듯 안 본 듯 무심, 침묵이 금덩어리인 냥 무심, 그리워 말자 맹세라도 한 듯 무심. 세상에 이렇게 가볍고도 무거운 무심의 이율배반 시스템을 견디는 족속이란 대체 인간이냐 신이냐. 그건 두 아들도 비스무레하다. 톡 건들면, 엄마 나 지금 친구 만나러 가는 중. 톡 깨우면, 엄마 나 씻고 출근준비 중. 꾸준히 나중에. 진짜 간단해서 좋네, 빌어먹을 카톡!

 

새벽에 일찍 눈이 떠지길래 늙은이처럼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떠들었다. 아침이 오긴 오는 건가, 왜 이리 바깥은 깜깜해. 불안하기까지 해서 과연 아침이 다시 밝을 것인지 영영 이 어둠의 카테고리에 감금된 채 오도카니 앉아 있어야 할 건지 골똘하다가,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 온 건 간밤에 꿈자리를 들쑤셨던 그 정체불명의 정체 때문일 것이라 고 생각했다. 하여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대신에 우리는 남자는 직선 여자는 곡선이란 수학적 비유를 나눴는데, 결론은 여자가 자연에 더 가깝다는 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 달 주기로 요리조리 출렁이는 달을 안고서 사니 당근 자연에 가까울 수밖에. 그래서 곡선적인 사유를 하게 되니 남자랑은 다를 수밖에 없고 고로 여자 쪽에서 보는 남자들은 다 그 놈이 그 놈이고 역시 남자 쪽에서 보는 여자들은 다 그 년이 그 년이라고 격없이 뱉은 말이 역시 당근이고 남자든 여자든 이상한 게 아니라 지극히 정상이라는 결론을 유추해 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쓰잘데기 없는 인간론 강의였다.

 

어제 읽은 도종환의 '희망의 바깥은 없다' 라는 시 속에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이 온다 란 말이 이미 밝아진 아침에 다시 봐도 괜찮게 다가온다.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이라 고? 그렇다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게 시인의 양심이고 솔직한 시선이다. 나는 빙그레 합장한다. 내 손모음이 합장이든 기도이든 요가의 인사이든 무심한 예우이든, 당신 안에 신의 얼굴 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군요! 당신이 나의 신입니다! 라고 진심으로 고개 숙이기 까지 우리는 얼만큼 더 헷갈려야 하고 유리방황해야 할 것인가. 달랑달랑 달고 다니는 내 꼴통이 마치 유년의 추억 속에나 살고 있을 것 같은 버즘나무, 버즘 열매처럼 단단하여서 한 대 잘못 맞았다간 돌아가실 수도 있을 것 같이 견고하게 보여도, 오늘은 웬지 그 돌멩이처럼 단단한 버즘열매 아니 내 꼴통이 정겹고 그립고 만져보고 싶다. 왜일까. 오래 간직해 왔던 신적인 것들 관념적인 위신들 호명들이 인간의 얼굴로 다가오는 희망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일까. 오늘도 아침해는 어제와 같은 얼굴로 세상을 밝히고 있고,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은 다가와 내 작은 집을 흔들고 있다. <끝>

 

2012. 2. 11 오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