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퇴고실
그가 잠든 몸을 깨웠네
미송
2015. 10. 17. 08:21
그가 잠든 몸을 깨웠네 / 오정자
내 나이 열여덟에 니체를 만났을 때
내 어머니 평생 신봉하던 교회와 목사들과 중생을 현혹하는 도그마에 신물을 냈었지
그러나 짜라투스트라의 대사들은 너무 어려워 책장을 덮고 말았지
그 어리석음을 다 변호 받을 순 없겠지만,
마흔을 넘긴 뜻밖의 아침 니체를 두 번째 만났을 때
나의 뿌리가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했지
유용한 환상보다 의식에만 의존했던 내 눈이 흔들렸지
니체의 턱수염까지 부르르 일어섰지
특별한 출처를 모르겠는 그 진리들 어디로 갔을까
허구가 된 진리들 뿐 아무것도 뵈지 않으니 신은 죽었고
니체는 죽지 않았나.
20090414-20151017
유용한 환상을 생각하는 아침. 예전에 만들어낸 다소 관념적인 용어를, 니체의 산문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시 뒤적거리며 되짚어본다. 참으로 긴 이야기가 여정처럼 필요한 말, '유용한 환상'에 대해 짧게 그러나 명쾌한 기쁨으로 일깨워 보는 아침. 시집 '그가 잠든 몸을 깨웠네'에 실린 시를 퇴고해 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