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예쁘게 문신을 그리며

미송 2021. 2. 15. 13:44

낡은 자동차가 퍼졌다 쇼바가 나갔다
아는 게 병이라고 자동차가 무서워졌다
파워펌프 스트어링기어 오일펌프까지
속이 문드러지는 줄도 모르고 끌고다녔던
껍데기

비극의 위대함은 유한한 슬픔 속에 살고
그리움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안고 간다
자동차 내부에서 내 몸의 냄새를 맡는다
수컷의 들락임으로 단련되어 헐거워진 자궁 속
산부인과 의사는 원시인의 그것처럼 내려다보았다
한 꺼풀 덮어두었던 몸속에 질병들
허울에 홀려 껍데기만 자랑하며 살아왔구나
굴절 없는 노래 부르고 싶다고
신열 앞에서 내숭을 떨던 그 때,
우수에 깃든 안또니오 마차도를 만났다

 

*나를 사랑하는 여자 하나, 내가 사랑하는 여자 하나
난 모든 걸 너무 가볍게 사랑하는 죄가 있습니다
여리고 가녀린 달의 우수보다 하나, 햇살의 반짝임 하나
마침맞은 웃음 하나를 사랑합니다

약해진 팔 부축해 주던
그의 언어로 나는,

 

*안또니오 마차도의 형 마누엘 마차도의 시 '자화상' 에 나오는 구절.

 

 

 

2007년 가을, 중남미문학가들을 만나게 된 건 행운이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체 게바라, 옥따비아빠스 그리고 안토니오 마차도. 나의 글 속에 보석 같은 그들의 시가 박혀 있다. 기억 속 나의 시들이 현재성을 띠는 것을 체험한다. <나를 사랑하는 여자 하나, 내가 사랑하는 여자 하나> 여기서의 대상은 여자가 맞다. 그러나 시적 화자가 반드시 남자는 아닐 거다,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했었다. 왜냐하면 그 즈음 나는 길을 찾고 있었고, 예전의 지도들을 몽땅 처분한 상태였고, 자신 외에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자국을 남길 거라면 흉터가 아닌 무늬로 살려보자는, 이왕이면 다홍치마 라는 생각으로 끄적였기 때문이다. <오>

 

 

20120326-2021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