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휴식- 이영광

미송 2012. 4. 20. 10:35

 

 

휴식 / 이영광

 

봄 햇살이, 목련나무 아래

늙고 병든 가구들을 꺼내놓는다

비매품으로

 

의자와

소파와

침대는

다리가 부러지고 뼈가 어긋나

삐그덕거린다

 

갇혀서 오래 매 맞은 사람처럼

꼼짝없이 전쟁을 치러온

이 제대병들을 다시 고쳐 전장에,

들여보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의자에게도 의자가

소파에게는 소파가

침대에게도 침대가

필요하다

 

아니다, 이들을

햇볕에 그냥 혼자 버려두어

스스로 쉬게 하라

생전 처음 짐 내려놓고

목련꽃 가슴팍에 받아 달고

 

의자는 의자에 앉아서

소파는 소파에 기대어

침대는 침대에 누워서

 

이영광 시집<그늘과 사귀다>(2007, 랜덤하우스) 中.

 

 

비로소 말 할 수 있을 때 조용히 혼자에게 말을 건다. "그래, 삶이란 돌격부대가 아니야" 라고……!

어떤 연유에서였든, 중단없는 전진과 비젼의 구호 아래 몸 던졌던 (정확히 말해, 떠밀렸던) 시간들. 정현종 시인이 말한 '게으른 시간들'에게 미안을 考한다. 그대여! 그렇게 빨리 달려 어디로 가시려구요? 물었을 때, 그는, 언덕위에 하얀 집을 가리키며 행복 그리고 노후를 제시했다. 전쟁터처럼 살자고 계속 꼬드겼다. 그대의 먼 언덕도 하얀 집도 싫소! 나는 대답하였지. 망상과 집착으로 수놓인 삶의 강박관념으로는 미래의 천국을 얻을 수 없다, 이 땅위에서 맛보지 못한 것들은 하늘에서도 맛 볼 수 없다, 나는 단호히 말한다. 전쟁 안 났으니 걱정말고 자 두렴! 눈 뜨면 먹고 졸리면 자고 또 눈 뜨면 먹고 자고 먹고 자…! 그렇게 한 석달 살아 봐. 그러면 목련꽃 그늘 아래 젊은 베르테르의 지독한 슬픔이 마치 노랫가락처럼 들려 와 우중중한 窓 당신 창가에 꽃그늘조차 웃게 해 줄거야. 한번 해 보라니깐? 의자에 앉아서, 소파에 기대어, 침대에 누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