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시간의 게으름>
시간의 게으름 / 정현종
나, 시간은,
돈과 권력과 기계들이 맞물려
미친 듯이 가속을 해온 한은
실은 게으르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 속도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보면
그건 오히려 게으름이었다는 말씀이지요)
마음은 잠들고 돈만 깨어 있습니다.
권력욕 로봇들은 만사를 그르칩니다.
자동차를 부지런히 닦았으나
마음을 닦지는 않았습니다.
인터넷에 뻔질나게 들어갔지만
제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습니다.
나 없이는 아무것도
있을 수가 없으니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실은
자기 자신이 없습니다.
돈과 권력과 기계가 나를 다 먹어 버리니
당신은 어디 있습니까?
나, 시간은 원래 자연입니다.
내 생리를 너무 왜곡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천천히 꽃 피고 천천히
나무 자라고 오래오래 보석됩니다.
나를 <소비>하지만 마시고
내 느린 솜씨에 찬탄도 좀 보내 주세요.
『견딜 수 없네』(2003, 시와미학사)
정현종님의 시간의 게으름이란 시를 대하며 ‘나는 시간이다’ 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나, 시간은, 하고 잽싸게 문장부호를 삽입하는 첫 행부터 긴장감이 돌았다. 시인이 고른 개성 있는 문장부호 하나가 그 다음 말에 대한 암시나 행간의 의미를 주기 위한 여백으로 작용한다. 속도와 비례하여 얻을 수 있는 건 돈, 권력, 명예(?). 그러나 스피드 시대의 우리는 '빨리 빨리' 라는 말에 또 얼마나 시달려 왔나. 빠른 성취의 삶이 오히려 게으른 삶이라고 시인은 역설한다. 주체들은 슬프고 고독하다. 시간과 동일화 시켜버린 나와 희미한 정체들은 끝없이 방황한다. 언제부터 잃었는지도 모르게 잃어버린 마음. 실종된 마음을 시인은 잠들었다고 표현한다.
그렇다. 무언가 소중한 걸 잃었을 때 잠은 죽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상실감은 죽음을 맛보는 기분이다. 마음을 잃었다는 것과 정신없이 산다는 것은 주체자가 사라진 허망함이다. 심각한 분열증상이다. 창조자에 대한 반발인지도 모른다. 신에로의 귀의를 물을 때 '정신없이 사느라 바빠서, 여유(돈, 시간, 마음)가 생기면‘ 하는 변명을 늘어놓는 걸 보더라도 그렇다. 기계화된 삶은 원시적 창조를 해체시킨 후의 자아의 파멸이며 자포자기다. 성(性)의 메커니즘을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해체를 거듭하며 생겨난다. 절정의 순간 그 단편들을 경험한다. 삶의 구속 안에서 절정이 주는 슬픔 또한 스스로 견뎌야 할 일이라는 걸 안다. 본시 아름다운 인간이란 얼마나 문명에 오염된 슬픈 짐승인가. 자기를 잃은 존재는 타인을 눈요깃거리나 공간의 유희적 대상물로 전락시키고 결국 자기만의 방房조차도 외면하며 문을 닫아 버린다.
기억하지만 열고 싶지 않은 것들. 과거와 현재, 미래의 희망마저 접어버리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증거자료가 부실한 존재들의 비존재적 슬픔을 보는 것은 유독 나만의 독선적인 느낌은 아닐 것이다. 시인도 절규한다. 나 없이는 너도 없고 돈도 없고 권력도 없다, 고. 우선은 외면하며 잃어버리고 살아왔던 자신에게 그리고 나를 가장 많이 소비해왔던 가족들에게 내가 사랑했던 것들에게 나를 나로서 돌려놔 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면서 이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생뚱맞게 질문을 던진다. 나와 당신, 나와 너의 친밀한 관계를 포기할 수 없도록 조작된 인간은 종국에는 신의 형상 아래 확실히 증명될 수 있는 너, 진실된 당신을 찾아 나선다.
일흔의 고령이 되어서야 신을 찾고 그 안에 숨어 살았던 의미들의 실체인 너를 비로소 찾는다. 나를 가두고 너를 가두고 신을 해체하여 공중에 떠다니게 했던 지난날들이 허방이었다고 고백한다. 인간은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허무이니 나, 시간마저 분리하여 자연 속에서 나를 정의하고 시간마저 스스로 타이르며 살라고 주문한다. 자신에게 스스로 말한다. ‘빨리’ 라는 사나운 말과 뒷모습들에 식상함을 넘어 환멸을 느끼며, 이때다 싶게 이별을 감행한다. 속박의 쇠고랑을 풀고 생리에 도무지 안 맞는 인간의 숲을 탈출하여 자연의 숲으로 달아나려 한다. 상상으로도 가슴에는 꽃이 피고 반짝이는 별이 달린다. 느리지만 미련하지 않게 너와 내가 진정으로 활짝 웃을 수 있는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기계가 되어 문명의 밥이 되어 소비되고 마모된 육신과 마음과 영혼을 자연에 눕히자고 시인은 끝내 절규한다. 푸른 웃음을 머금고서.
2007년 유월, 오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