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시] 4월의 꽃등

미송 2012. 5. 21. 07:25

 

4월의 꽃등 / 오정자

 

진달래를 보았어요 개나리도 보았죠

흐린 날에 봄꽃들이 예뻤어요

목이 긴 목련을 보다  

꽃 속에 등불 하나 켜 놓았느냐 묻던

어느 시인의 말이 춤추는 걸 보았죠

목적지로 향하는 길 꽃그늘에 누워

잔풀들 묻히고도 좋아라 했죠 검불처럼 나뒹굴던 추억들도

실성한 듯 꽃속에 잠들어 있었어요

바람길 분간 못하는 철부지는

당분간 옅은 화장을 하려고요 봄을 위해

지도도 없이 달음박질하던 시간들을 위해

들러리나 서려고요

경쾌한 스텝으로 다리를 뻗는 사월 

꽃더미에 기댄 지게꾼의 지팡이에도 싹이 돋겠죠

봄은 병아리와 여자의 계절

꽃등 아래선 여자도 꽃인 냥 잠시 주역이 됩니다.  

 

 

[시작메모]

족히 다섯 번은 뒤집었을 봄. 아니 수없이 뒤집히며 왔을 봄. 거슬러 올라간다. 흐르는 강물에 잠긴 무릎은 줄기의 시원始原을 그리워하고 한 페이지씩 넘기는 손끝이 추억만큼 낡아져 가고, 이젠 더 이상 봄날을 맞이할 수 없을 것 같은 우울함에 잠기기도 한다. 얼마나 화려하였던가. 봄날은 무릎을 얼마나 강하게 세워 주었던가. 추억해 주는 한 주체자가 있어야만 다시 일으킬 수 있는, 봄은 영원永遠을 사모하는 이들의 노래.  사월도 가고 오월도 가고 있다. 숫자들이 병정들처럼 행진한다. 이 아침 나는, 오년 전 사월을 바라보고 있다. 요즘 우리 마을엔 마가렛과 팬지가 피었더군요. 이상하죠, 어둠 속에서도 그들의 이름이 잘 외워지는 걸 보면, 지난 겨울 많이 힘겨웠던 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