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조은, 「언젠가도 여기서」

미송 2012. 6. 11. 08:58

 

 

 

 

 

 

조은, 「언젠가도 여기서」

 

언젠가도 나는 여기 앉아 있었다

이 너럭바위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지금과 같은 생각을 했다

그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가슴속 응어리를 노을을 보며 삭이고 있었다

응어리 속에는 인간의 붉은 혀가

석류알처럼 들어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슬픔의 정수리로 순한 꽃대처럼 올라가

숨결을 틔워주던 생각

감미롭던 생각

그 생각이 나를 산 아래로 데려가 잠을 재웠다

내가 뿜어냈던 그 향기를 되살리기가

이렇게도 힘들다니……

 

 

조은은 성심의 인간이며 성심의 시인이다. 성심(聖心)에 이르는 성심(誠心). 인간으로나 시인으로나 무심하고 태만한 나는 문득 감동하고 반성한다. 그런데 나만하기도 쉽지 않은 건지 반성은커녕 불편해 하기만 하는 사람이 있으니, 조은은 종종 외로울 것이다.
「언젠가도 여기서」를 읽다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슴속 응어리가 될 정도로 시인을 슬프게 한 어떤 “인간의 붉은 혀”를 석류알에 비유한다? 석류알의 고혹적인 빛깔과 모양을 가만히 떠올리다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그 혀, 언제까지라도 생생할 듯 요사스런 석류알은 지금 내 입에 침이 고이듯 시인의 가슴에 연신 피가 고이게 하는 것이리라. 이치로도 감각으로도 딱 와 닿는다. 그 기분 나쁜 몹쓸 혀를 섹슈얼하기까지 한 석류알로 윤색하는 시인의 산뜻한 성심이여.
어…… 그런데…… 실은 이 시가 섹슈얼한 외로움과 추억과 서글픔을 토로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친다. 그런 코드로 읽으니 또 다른 맛이 난다.   

 

-문학집배원 황인숙

 

 

 

혀. 낭송가의 혀에는 물기가 흥건하고, 남의 외로움을 챙기는 여자의 혀에는 빤질한 빛이 그득하다. 그럼 나머지의 혀는 어떤가. 긴가. 얼마나 짧은가 내밀어 봐 하며 훑어오고 싶다. 석류알처럼 빨갛다. 오디열매를 먹은 혀처럼 까맣다. 엄마의 된장찌개를 먹고 있는 어른 남자의 혀처럼 부드럽다. 나의 혀는 또 어떨까. 너럭바위처럼 단단하고 차갑고 넓으나 인색하고 한참 앉아 있으면 그나마 엉덩이가 뜨뜻해지기도 하고. 그러나 색깔은 없다. 무색의 석류빛. 어둠 속에 열린 열매처럼 빛을 잃었다. 울지 않고 죽지 않고 살았다 고 시인이 시인을 격려하는 저 풍경 속에 그다지 산뜻하지 못한 또 하나의 나의 코드, 죽어도 혀의 비밀을 말 하지 않겠다는 자존自存의 혀…… 삼천포로 빠진… 오잉?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