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마종기<이별>외 1편

미송 2012. 6. 28. 08:42

 

이별

 

 

 

 

 

 

1

안녕히 가세요

곧 따라가겠지요

몸은 비에 젖은 땅에 묻고

영혼은 안 보이는 길 떠나네

나보다 몇 살 위의 代子님

자주 만난 날들이 맑은 무지개 같애

공중에 어리는 가벼운 길 떠나면서

퍼붓는 빗속에 남는 이름들

안녕히 가세요, 희미하게

가는 길 지우면서 비가 울고 있네

 

2

침묵만 남기고 돌아선 자리

어두운 회한의 냄새를 지운다

누구의 잘못을 가려 무엇하랴

남은 시간의 사면이 다 어두워

돌이켜 찾아도 보이지 않는,

이 곳에 처음부터 있었는지 없었는지

생활에 젖은 옷이 흰 빛으로 마른다

마른 옷 날개 되어 머리 위로 떠오른다

인연은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지?

그대 편안한 얼굴로 돌아선다

욕심을 털어버린 도시의 중심에서

편안한 빈혈의 얼굴이 돌아선다.

 

 

축제의 꽃

 

가령 꽃 속에 들어가면 따뜻하다

수술과 암술이 바람이나 손길을 핑계 삼아

은근히 몸을 기대며 살고 있는 곳

 

시들어 고개 숙인 꽃까지 따뜻하다

임신한 몸이든 아니든 혼절의 기미로 이불도 안 덮은 채

연하고 부드러운 자세로 깊이 잠들어버린 꽃

 

내가 그대에게 가는 여정도 따뜻하리라

잠든 꽃의 눈과 귀는 이루지 못한 꿈에 싸이고

이별이여, 축제의 표적이여

애절한 꽃가루가 만발하게 

우리를 온통 적셔주리라.

 

 

따뜻하다는 말의 의미값을 이만큼까지 따뜻하게 써보지 못한 거 같아 분하다. 꽃 속의 따뜻함. 빛깔과 정적이 주는 아늑함. 수술과 암술이 은근히 몸을 기대고 있다는 관찰은 꽃잎 속에 더없이 평화로운 신방을 차린다. 하지만 마종기는 그 평화를 예찬하러온 사람은 아니다. 문제는 시든 꽃이다. 시든 꽃 속도 여전히 따뜻하다는 저 통찰이 마음을 떨게 한다. 사랑이 끝나고 슬픔마저 잠들어버렸다 하더라도, 거기 여전히 혼절의 기미로 이불도 안 덮은 채 부드럽게 누워있는 사랑이 있다. 이별이란 이런 것이다. 헤어진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의 반댓말이 아니다. 이별은 만남이 지니고 있던 따뜻함이 여전히 내부에서 가만히 잠들어, 오히려 기억 속에서 작은 축제가 되는 그런 꽃이다. ㅡ<이상국 시인>

 

 

 

온갖 억설과 역설로 끝끝내 움켜쥐려는 인연의 기쁨 혹은, 망령(?)스럼을 탓하지 않기로 하자! '인연은 한 번 밖에 오지 않는다' 신경숙의 산문 속 시편에 나도 이젠 좀 더 너그러워져야 할 시절. 종종 까칠한 성격이 발동되거나 우아한 겉치레에 빠지거나 할 때, 나는 여전히 '저 일곱 살배기 같은 할배... 에구, 저 주책없는 할매같으니라구' 속으로 욕을 퍼붓기도 하지만. 그래, 옆사람 말마따나 '너 자꾸 그런 맘 먹으면 좀 있다가 똑같은 할망구 된다' 는 핀잔을 되새기기로 한다. 서럽지 않은 사람(특히 늙을수록에)이 어디 있나...그래, 우린 어차피 '매일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노래가사도 있으니 그러니, '참는다' 란 말조차 지우며 담담하게 살아야겠지, 다짐하면서. 마른 젖줄기에 젖이 흘러나는 기적을 바라듯 내 안에 견고한 진들을 응수(應酬)한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