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자료실

사랑은 약점, 연민은 장점

미송 2012. 7. 29. 08:09

 

 

사랑은 약점, 연민은 장점

 

심보선 시인 하면 슬픔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슬픔과 어둠, 지독한 고독과 불안이 그의 첫 시집에서 느낄 수 있는 이미지다. 이러한 감정들은 경험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고 불안정한 세상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선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시선은 관찰자가 되어 세상의 어둡고 습한 곳을 바라보기도 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진흙탕에서 뒹굴기도 한다. 이렇게 시인은 세상과 함께 하기 원한다. 비애를 가지고 바라보는 사회에 대해 연민을 가지는 것, 이것이 그의 사회학이다. 또한 그는 사랑의 시인이기도 하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연인이든 인생이든 사회이든 그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은 그의 유일한 약점이기도 하고 유일한 장점이기도 하다. “왜 사람은 사랑에 빠질까그것은 죽도록 불안한 탓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시인과 사회학자’, 어울리는 호칭이다. 불안한 세상에 대해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그의 시가 아름다운 것 아닐까. 내가 만난 심보선 시인은 진솔하고 겸손했다. 작은 카페에서 그의 삶과 일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조근 조근 나누고 왔다.

 

짬짬이

 

김후영: 선생님을 인터뷰 하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 심보선: 요새 웹진에 연재하는 산문이 있고, 신문사에 쓰는 칼럼이 있고, 또 수유너머 위클리(weekly)라고 그것도 웹진 같은 concept인데 거기에도 글을 쓰고 있어요. 요새는 시를 오래 못 썼어요. 오히려 산문을 더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김후영: 산문을 쓰면 시는 잘 안 되지 않나요?

 

□ 심보선: 산문은 마감도 있고 컨셉 중심으로 쓰는데, 시도 물론 마감이 있지만 저는 마감 닥쳐서 쓰면 쓰고 나서도 별로 좋지 않고, 그리고 컨셉을 가지고 쓰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산문하고 다른데요. 시를 쓰려면 짬짬이 여유가 있어야 하잖아요, 짬짬이가 중요한데, 저는 시를 새벽에 많이 쓰는데 새벽에는 지쳐서 쓰러지니까.

 

김후영: 여가 생활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취미나 즐겨하시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 심보선: 원래는 사진 찍는 것 좋아하는데요, 사진도 사실은 짬짬이 아무 때나 들고 찍는 건데, 또 사진을 찍으려면 돌아다녀야 되는데 요새 운전을 하니까 그런 게 안 되고, 그래서 카메라를 하나 살까. 사면 산 재미로 아무래도 찍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짬이 없죠.

저는 여가라는 말은 별로 안 좋아 하고요. 남는 시간, 그것도 만드는 시간인데, 만드는 시간 갖고 스터디나 세미나를 하면서 친구들이랑 같이 모인다든지 그러고 싶은데 나이가 드니까 친구들도 이제 바쁜 거죠. 그래서 최근에는 억지로라도 짬짬이 내 시간을 만들자. 다른 것에 시간을 내는데 어떻게 시에 시간을 안 내겠어요. 시는 당연히...(웃음)

짬짬이 시간이 따로 오늘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그게 아니라 뭔가 느꼈거나 어떤 생각이 났을 때 그걸 붙드는 시간이 짬짬이 시간인데, 시가 온다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요새는 시가 오면 그냥 놔주는 거죠. 패스pass.

 

김후영: 스타교수또는 훈남 시인등의 화려한 수식으로 선생님이 소개되기도 하셨고 실제로도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몰이를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기의 비결이 무엇인가요?

 

□ 심보선: 인기는 제가 잘 알지를 못하고요. 학생들이라면 여기(경희사이버대)서도 그렇고 다른데서 강의 할 때도 편하게 하려고 그러고요. 제가 학생에 관해서는 거절을 잘 못해요. 예를 들어 어떤 강연요청이나 이런 것이 가끔 들어올 때 제가 가르치는 직업이라서 그런지 학생들이 대상이다 그러면 다 알겠습니다그러거든요. 젊은 친구들하고 소통하려고하는 습관이나 의지나 이런 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주 보고 또 만나면 나름 열심히 얘기 하고 그래서 그런 거겠죠.

 

김후영: 선생님 강의 내용도 좋으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 심보선: 예전에 강의 평가를 봤는데 평가가 나름 재밌다더라고요. ‘재밌다가 아니라 나름재밌다였죠.

 

 

 

이 방의 천장은 낮다, 점프

하지 않아도 천장에 닿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속되냐

섀시 창문 밖으로 천장의 유혹을 간직하고

구름은 지나간다

 

아버지는 퇴근하면 가방을 열어

가방 모양의 공기를 마루 위에 쏟아내곤 했다

이야, 놀라워라 어린 자식들의 조건 없는 탄성이여

가끔씩 옛집을 생각하면

피융, 하고 양쪽 뺨을 스치며 앞뒤로 지나가는

기억과 망각의 총탄이여

 

이 집 안방에는 그러고 보니 깊은 절벽이 숨어 있다.

저 밑에는 도달하거나 도달할 수 없는 바닥

돌아보면 누이는 저만치 뒤에 있고 어머니는 더 뒤에 있고

더 뒤에는 무한의 더 뒤가 있고

더더더 뒤에는 그냥 장롱벽

거기 기대어 아버지

좌탈입망, 돌아가셨다

아버지 왼손에 쥐어진

위성TV 리모컨

 

감자조림 미끼로 낚시질 가시던

빈 링거병 꽂고 누워 계시던

소싯적에 거 참 잘생기셨던

아버지, 망부 청송심씨후인

위패를 쓰다 난 으이씨, 하고 울었다

아버지, 어찌

죽음 갖고 아트를 하십니까

 

내가 좋아하는 곳은 옛집의 지하실

도망갈 수 있는 곳, 다시는 돌아가려 하지 않아도

이미 돌아와 있는 곳

평화가 린나이 보일러처럼 자알 작동하는 곳

 

나는 낮은 천장 아래 홀로

소파 뒤에 바짝 등 붙이고

낮은 포복으로 밀려오는 미래를 빠끔히 내다보고 있다

 

가족들은 이 집 어딘가에서 소식도 없이

각자 잘 살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ㅡ「아버지, 옛집을 생각하며전문

 

 

 

김후영: 선생님 시집 곳곳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네요. 선생님의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 심보선: 제가 인터뷰 하면서 사적인 이야기를 잘 안하는데요, 아버지는 독학자셨어요. 아버지가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셨는데도 책이나 예술 쪽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그래서 카메라도 많이 사시고, 좀 낭비를 하셨어요. 그렇다고 사진을 잘 찍으시냐, 사진 못 찍으세요 제가 볼 때는. 아버지가 유물로 남기신 것이 책, 그게 또 제가 관심 있는 분야냐 그렇지는 않아요. 아버지가 관심 있는 분야가 있으세요. 주로 한국전쟁 쪽에 관심이 있으셨는데 제 전공이 아니고 하니까. 그다음에 또 카메라. 얼마 전에 정리를 하면서 카메라가 이렇게 많은데 이 카메라들 가지고 사진을 찍어야겠다. 골동품도 사셨고, 디지털 카메라도 사시고, 필름 카메라도 있으시고, 똑딱이 카메라도 있고 하여튼 많이 쓰시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그 쪽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독학자의 비애가 있으셨죠. 아버지가 또 글도 쓰셨어요. 전문적으로 쓰신 게 아니라 그냥 메모. 생각해보니까 의도적으로는 아니지만 지금 내가 그런 것들을 이어서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후영: 선생님은 시인이면서 사회학자로서의 활동도 활발히 하고 계시는데요, 이 둘의 활동 비중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느낌입니다. 시 쓰기와 사회활동을 동시에 잘 해내시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이 둘을 분리해서 생각해 본적이 있으신지요?

 

□ 심보선: 요새는 둘 다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일 때문에.(웃음) 옛날에는 이 둘을 분리시켜서 생각을 했는데, 시 쓸 때는 시 쓰는 사람이 되고 사회학 할 때는 사회학 하는 사람이 된다라고. 생각해보니까 제 사회학이 정통사회학이 아니거든요? 소위 정통이라기보다는, 통계분석이라든지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인과적 진술을 한다든지, 예를 들어서 가설을 하나 세우고 그것에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굳이 얘기하자면 질적 분석이나 질적 방법론 이런 쪽을 많이 하거든요? 저도 인터뷰를 많이 해요. 해석하고 대화하고 이런 것이 제 사회학이에요. 전공은 문화예술사회학, 그것도 주로 텍스트를 읽고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하고 그것을 해석하고. 그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시 쓰는데도 많이 도움이 됐더라고요. 그리고 시라는 것이 무엇을 판단하고 분석하는 과학적 진술하고는 다르잖아요. 열려있는 진술이잖아요? 열려있는 부분이 또 제가 사회학 하는데 영향을 주고, 그리고 사회학이 기본적으로 세상을 비애를 가지고 바라보거든요? 그런 부분에서도 상통을 하죠.

 

김후영: 슬픔이 없는 십오초가 보여주는 성취는 시적 감수성과 사회학적 시선의 조화에서 비롯한다는 평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그간의 활동이나 관심분야를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베어 나온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 심보선: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 같지는 않고요. 제 시가 또 사회학적 시냐? 그렇지는 않고요. 단지 어떤 구도는 있는 것 같아요. 개인 vs 사회, 개인 vs 세계라는 구도는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사회학적인 구도만은 아니고, 사회학적인 구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학적인 구도이기도 한 것 같고, 그런데 그것이 조화가 됐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 시에는 어떤 사람이 있냐면, 특히 첫 시집에는 혼자서 돌아다니고, 혼자서 관찰하고, 혼자서 거리를 좀 두고 세상을 바라보고. 그런데 그 거리를 둔다는 게, 거리를 둬서 안정감을 느끼기 보다는 거리 때문에 불안하고 가까이 가고 싶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김후영: 어떤 독자는 선생님의 시 슬픔이 없는 십오초는 불안, 슬픔이 떠오르고 눈 앞에 없는 사람은 삶에 대한 권태의 정서가 짙다고 보기도 했네요. 독자들은 시에서 시인의 감정을 읽어내고 싶고 그러므로 공유하고 싶어 하기도 할 것 같아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선생님의 정서는 어디에 기초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심보선: 해석은 다양한 것 같아요.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첫 시집이 혼자였다면 두 번째 시집눈앞에 없는 사람은 함께, 그렇다고 물론 함께이기 때문에 행복하다, 긍정적이다 이런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의미의 함께. 첫 시집도 그런 것 같거든요? 슬픔을 이야기 하지만 슬픔을 얘기하는 것이 어떤 행복, ‘슬픈 행복을 만드는 것 같아요. 혹은 행복한 슬픔뭐 그런. 두 번째 시집도 함께 하면서 혼자 있고 또 혼자 있으면서 함께 한다는, 또 그래서 오는 행복. 저는 요새 시를 쓰는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하는데, 시를 읽는 사람도 행복하고, 눈물을 흘려도 행복하고 괴로워도 행복하다.

 

김후영: 그 행복의 근원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심보선: 요새 사회에서는 뭔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 얻는 것, 구하는 것 그게 행복인데 시가 보여주는 행복은 그런 행복은 아닌 것 같아요. 뭔가 다른 상태로 옮겨가는 데서 오는 행복인 것 같아요.

 

김후영: 추상적이네요.

 

□ 심보선: 예를 들어서 시를 쓸 때 선생님 하고 시를 안 쓸 때 선생님 하고 다르듯이 시를 쓸 때 변화가 일어나잖아요? 그것을 치유나 위로 등 여러 가지 의미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도 표현할 수 있지만 어떤 충만한 상태로 옮겨가는 것, 예를 들어서 새 카메라를 샀을 때의 충만과 시를 쓸 때의 충만은 다르겠죠.(웃음)

 

김후영: 독자들이 느끼는 불안과 슬픈정서의 기초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 심보선: 제가 기본적으로 하나의 감정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몇 개의 감정을 가지고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삶을 사는 태도에서 시들이 나오는 것 같은데요. 어떤 글에서‘Apart we unite’라는 구절을 봤어요. 떨어져 있지만 같이 하고 있다. 굳이 얘기하자면 요새 흔한 말로 따로 또 같이인데요, 그것이 이런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같이보다는 함께가 맞는 것 같아요. 함께 있을 때 떨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떨어져 있지만 함께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삶을 사는 태도,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 혼자 있는 것 같고 혼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람들 속에 있는 것 같은 그 묘한 긴장, 묘한 모순, 그런 태도에서 시가 항상 나오는 것 같아요. 시는 사실 혼자 쓰지만 사람들이 읽는 것이기도 하고, 나 혼자의 감정이지만 또 여러 사람의 감정이기도 하죠. 슬픔도 시적인 슬픔이 있고 불안도 시적인 불안이 있는 것 같아요. 시적이라고 하는 것이 문학적으로 잘 써서, 예쁘게, 아름답게 표현된 것이라기보다는 저한테는 묘한 긴장과 모순으로 삶을 살아가는 태도, 그런데 그런 것이 저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예를 들어 제가 군대 있을 때 시를 썼거든요? 시인이 되려고 시를 쓴 것이 아니라 군대라는 환경에서 시를 쓰니까 거기서 해방감 같은 것이 느껴지고, 시에다가 제가 환멸을 쓰더라도 그게 너무 기쁜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사실은 군대 안에 있어야 돼요. 사람들과 함께 해야 되는 거죠.

 

김후영: 비슷한 질문인데요, 선생님 시 중에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는 문장에서 삶이 슬픔 속에 수장되어 있는 듯 읽혀집니다. 저도 이 문장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때가 있었는데요,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의 근원에 대해 여쭤 봐도 될까요? 그리고 십오 초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요?

 

□ 심보선: 그러니까 군대 속에 음악 같은 거죠. 군대 속에서 듣는 재즈 같은 거죠. 그게 십오 초 인데, 사람들이 보통 그 십오 초 속에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여전히 재즈 들어도 군대잖아요.(웃음)

 

김후영: 그런데 왜 십 오초일까요? 십오 초 정도를 제가 재봤는데 길지도 짧지도 않으면서 거기서 오는 긴장감이 있더라고요.

 

□ 심보선: 저도 쓰고 보니 그렇더라고요. 저도 슬픔이 없는 십 사초도 해보고 슬픔이 없는 십 삼초이렇게도 해 보다가 슬픔이 없는 십 오초가 나왔는데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가까스로

 

김후영: 모든 시인은 가까스로 시인이다라고 하셨고 나는 시를 애도하는 느낌으로 쓴다고도 하셨는데 무슨 뜻인지요?

 

□ 심보선: 선생님이 인터뷰 한다고 하셨을 때 제가 그렇게 얘기 했잖아요? “요즘 시를 안 써가지고 인터뷰하는 것도 민망하다. 시를 쓰는 시간보다 안 쓰는 시간이 훨씬 기니까. 그런데 시를 안 쓰는 사람들 대부분 시 안 쓰는 시간에 내가 시인인가?’ 그 시간이 길어지면 내가 뭔 시인이야 시를 안 쓰는데이렇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다가 진짜 짬짬이 시를 써서 그 때 가까스로 시인이 되는 거죠.

 

김후영: 가까스로라는 말에 공감이 가네요.(웃음)

 

□ 심보선: 저는 인간도 가까스로 인간이고, 시인도 가까스로 시인이고. 그런 의미에서 하여간 직업적으로 계속 시를 쓰는 거라면 내 직업이 시인이다라고 얘기를 하겠지만 인간이 직업이 아닌 것처럼 시인도 직업이 아니고.(웃음) 누가 그러더라고요. 인간이 정말로 사유, 성찰적 사고를 하면서 행동하는 것이 혹은 말하는 것이 하루에 얼마나 되겠냐고. 얼마 안 된대요. 대부분 다 기계적으로, 본능적으로 그렇게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김후영: 한 인터뷰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대상이 연인이라고 하셨네요. ‘사회라는 추상적 대상으로서의 연인 말고 진짜 선생님의 연인은 누구일까 궁금합니다.눈앞에 없는 사람의 앞부분에 있는 시인중을 긁적거리며에서 제발 나와 함께 영원히 살아요,/전생에서 후생에 이르기까지/단 한 번뿐인 청혼을 한다.”고 하셨고 그 시집의 맨 마지막 시사랑은 나의 약점에서 그 시에서 나는 당신에게 청혼을 했다고 하셨는데 이 둘이 서로 연관성이 있는지요. 의도적 배치인가요?

 

당신은 내게 어느 동성애 운동가의 시를 읽어준다.

강렬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시를.

내 언어가 결코 가 닿지 못한 슬픔의 세계가

밤하늘의 성좌처럼 선명하게 펼쳐진 시를.

나는 고통스럽다.

반은 질투심에, 반은 감화되어.

그러나 나는 다만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참으로 오랜만에

진실된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한 명의 유순한 독자가 되어.

 

시를 읽고 난 후 당신은 내게 웃으며 말한다.

당신이 동성애자였다면

이렇게 좋은 시를 쓸 수 있었을 텐데.

나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당신의 유일한 약점이군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당신의 위트 섞인 선의 아래에는

아주 날카로운 메시지가 숨어 있다.

내가 중산층 이성애자 시인이라는 사실.

그것은 유일한 약점이 아니라

나의 본질적인 한계가 아닌가?

 

나는 오늘 두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 사람은 말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시가 올해의 좋은 시로 뽑혔습니다.

내일까지 수상 소감을 보내주세요.

다른 사람은 말했다.

아쉽지만 당신의 시는 대중 집회 장소에서 읽기는 다소 어렵군요.

내일까지 소통이 좀더 용이한 시를 보내주시겠어요?

두 사람은 같은 시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었다.

나는 두 사람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내일까지 아주 문학적인 수상소감문 하나와

아주 대중적인 시 한 편을 보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들이 기대하는 성실한 시인이자 선량한 시민이니까.

 

 

그런데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 시에서 나는 당신에게 청혼을 했다.

내가 한 줄기 따스한 입김을 후우, 당신의 귀에 불어넣자

당신은 활짝 웃으며 좋아요! 하고 수락했다.

나는 언젠가 당신에게

지극히 평범하고 직설적인 말로

말하자면 시적이지 않은

기껏해야 두 문장 정도로 이루어진 말로 청혼을 할 생각이다.

나는 안다. 전혀 시적이지 않은 그 두 문장이

 

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지을 것이다.

또 하나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당신이 시를 읽는 동안 나는 우연히

창밖으로 한 노인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쪽동백나무 아래로 아주 천천히 걸어가면서

질질 끄는 기괴한 발걸음으로

떨어진 꽃잎들이 아름답게 수놓은 길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 노인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아니다. 사실 마주치지 않았다.

그 노인은 내게 하나의 이미지였다.

내가 답변할 수 없는 세계로부터 던져진 잿빛 가죽포대였다.

그 노인이 나와 눈이 마주쳤더라면

1초만 마주쳤더라면 나는 이렇게 썼을 텐데.

 

그는 내게 말하는 듯했다.

시인이여, 노래해달라.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나의 머지않은 죽음이 아니라

누구도 모르는 나의 일생에 대해.

나의 슬픈 사랑과 아픈 좌절에 대해.

그러나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에 대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생존하여 바로 오늘

쪽동백나무 아래에서 당신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음에 대해.

나는 너무 많은 기억들을 어깨 위에 짊어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그 안에는 단 하나의 선율도 흐르지 않는가.

창가에 서 있는 시인이여,

나에 대해 노래해달라. 나의 지친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들에게는 없는 독특한 강점을 지녔노라고 제발 노래해달라.

 

당신이 시를 다 읽고 났을 때 노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당신에게 웃으며 말한다.

정말 좋은 시군요.

질투심을 느낄 정도로, 당신이 이야기한

나의 유일한 약점,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네요.

그런데 내 사랑, 오늘은 내가 할 일이 너무 많군요.

내일까지 당장 두 편의 글을 마감해야 해요!

 

사랑은 나의 약점전문

 

 

□ 심보선: 의도적 배치는 아니었고요, 마지막 시가 사실 다 실제 이야기예요. 사랑은 나의 약점이 제일 마지막에 쓴 시예요. 원래는 연보까지였어요. 그래서 출판사에 원고를 넘겼어요. 그런데 이 시가 나온 거예요. 그런데 쓰고 보니 좋아서 이것도 넣어 달라고 그렇게 한 거예요.

 

김후영: 그런데 무슨 의미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지더라고요.

 

□ 심보선: 그렇죠? 저도 마지막에 이 시를 넣으니까 , 됐다이렇게 생각이 들더라고요. 의도 한 건 아니었는데.

 

김후영: 청혼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 심보선: 저는 청혼을 사실은 안 해봤어요. 시에서는 많이 했는데(웃음) 실지로는 안 해봤어요. 그런데 인중을 긁적거리며에서 전생에서 단 한번뿐인 청혼이 얘기를 할 때는 진짜 저도 뭉클 했죠. 이런 청혼을 할 수 있을까, 시에서는 해버리는데 과연 할 수 있을까.

 

김후영: 이 시집(눈 앞에 없는 사람)도 진은영 시인이 해설을 하셨네요. 선생님 글 보니까 진은영 시인의 글 인용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 심보선: . 그래서 같이 논문작업을 해보려고 하는데 둘 다 바빠서...

 

김후영: 하나의 주제로 여러 사람이 글을 쓰니까 선생님 글을 읽으려면 연관된 다른 사람들 글도 읽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재미있던데요?

 

□ 심보선: 그래서 그런 실험도 하고, 진은영씨 뿐만이 아니라 수유너머에서 같이 스터디 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거기에 고봉준 평론가도 계셨고, 같이 글 얘기도 많이 하고, 책을 같이 읽고 그랬었죠.

 

김후영: 뉴욕 중앙일보 기자도 하셨고 아트센터 나비 학술 연구실장으로 지내기도 하셨고,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하셨네요. 이런 다양한 이력들이 선생님의 사회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요?

 

□ 심보선: 경력해가지고 일일이 어디 어디서 내가 뭘 했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좀 민망스럽고, 미국에서까지 뭘 했다라고 얘기 하는 것이 약간 민망하더라고요.(웃음) 그렇지만 역시 기자 생활 한 것도 그렇고, 예술 기관에서 일 한 것도 그렇고 저한테 영향을 많이 미쳤죠. 정말 사람들 많이 만났어요.

생각해보면 보통사람들, 소위 예술가, 문학하는 사람들, 그런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을 만나면서도 결국은 다 통하는구나. 이쪽 세계에도 시인이 있고, 저쪽 세계에도 시인이 있고, 시인 중에서도 시인이 있고, 시인이 아닌 사람이 있고. 제가 시적이다라고 할 때는 그것이 진짜다 가짜다라거나 시적인 아우라aura를 풍긴다 아니다라거나 그런 게 아니라, 저도 사실은 많이 듣거든요 시인 같지가 않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글을 쓰고 삶을 사는 태도에 있어서의 시적인 것이 있는 것 같고, 그것은 어느 세계에나 어느 사람들, 어느 직업에나 다 있다는 것을 제가 알게 된 거죠. 어쩌다 보니까 저도 이렇게 기자도 하고 예술기관에도 있었고 학교에도 있었고 많이 했더라고요.

 

김후영: 이주 노동자들의 문화 활동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이주노동자 방송국 MWTV에도 계셨고, 그 사례를 바탕으로이주노동자의 미디어 문화 활동과 정체성 정치라는 논문도 쓰셨네요. 이론 중심이 아닌 문제의 현장 속으로 풍덩 들어가서 함께 부대끼며 대안을 찾는 열정에서 사회를 대하는 태도의 진실성을 발견했는데요, 갈수록 인종적, 민족적, 문화적 다양성이 증가하고 있는 와중에 특별히 다문화주의의 문화적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 심보선: 저는 지금은 MWTV의 자문위원이예요. 그냥 친구로 있는데, 왜 다문화 주의냐, 제 박사논문이 소수 인종의 예술 활동이예요. 소수인종의 예술단체, 소수 인종의 Asian American, 동양계, 제가 공부한 쪽이 이쪽인데요, 원래 소수민족의 예술이라고 한국에도 소위 다문화 예술을 하는 쪽이 최근 들어서 조금씩 생기고 있어요. 이주노동자들이 예술 쪽으로 드디어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하고 있는데, 원래 시 쓰고 노래하고, 예술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 사람들이 운동으로서, 영상으로서 MWTV에서 활동을 하는데 다문화 합창단 몽땅montant’이라고 노래하는 그룹이 있고, ‘마붑이라고 방글라데시 출신인데 이 친구는 미디어 쪽에서 일하고, 이런 식으로 활동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MWTV 출신이에요. MWTV가 수유너머의 공간을 공유 했었는데 지금은 이사를 갔고요.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일단 제가 논문을 그쪽으로 썼고 공부를 그쪽으로 했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고. 지금 MWTV가 많이 어려워요.

 

 

 

김후영: MWTV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 심보선: MWTV는 주로 이주여성, 결혼이주자, 이주노동자 등 이주민들의 삶이나 한국에서의 어려운 부분들을 알리는 역할이죠. 원래 시민들이 만든 시민방송 RTV에서 지원금을 받았는데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서. 그런데 이것이 끊겼어요. 그래서 지금은 RTV에서 못하고 인터넷에서 해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하니까 사람들이 많이 안 보고 여러 기금들도 끊겼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나간 거예요. 그래서 이주민영화제, 교육프로그램, 방송, 그 외에 많은 활동을 해야 하는데 지금 위기 상황이라서 영화제를 하네 마네 그러고 있어요. 어려운 상황이죠. 저는 활동을 하는 건 아니고 자문위원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까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죠.

 

김후영: 제도적이고 집단적인 맥락에서 시민예술을 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시민예술과 전문예술의 차이는 무엇이며 그 구별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시민예술(아마추어)의 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심보선: 정책적으로 고려해야 된다는 건 정책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요새 시민예술에 대한 정책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이 정책들이 기존의 예술지원정책과 동일하게 돌아가면 안 된다는 것이고, 원래 시민 예술이 존재 했었죠. 동호회라든지. 시민예술, 혹은 생활예술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삶 속에서 시를 쓰는 거죠. 이것을 최근에 생활예술이라든지 시민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정책적으로 지원하려고 하는 움직임들이 있고,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그런 것을 할 때 기존의 전문 단체라든지 소위 프로 예술단체를 지원하는 방식과 동일하게 해서는 안 된다. 삶속의 예술이라고 하는 것을 그대로 가져가게 해야 된다. 그런 이야기죠.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정책이라는 것이 과연 중요할까, 라는 생각도 들어요. 정책이라는 것이 개입해서 또 하나의 경쟁과 지원금을 따내는 시스템, 그래서 제가 얘기하는 생활예술과 전문예술의 차이가 무엇이냐. 전문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만들어진 예술이죠. ‘전문가라고 하는 타이틀이. 하긴 원래 생활예술은 생활예술이 아니었죠. 원래 예술이 그랬으니까. 그런데 전문예술이다, 나 전문가야, 나 무슨 위원이야, 나 등단했어, 나 어디서 강의해, 교수야, 이런 식의 소위 전공제도 시스템이 만들어지면서 생활예술 즉 오히려 원래 예술이었던 예술이 주변화 되고, 아마추어들이 하는 거라는 식으로 폄하되고, 그 분리 자체가 사실은 문제가 있는 분리인 거죠. 그게 현실적인 분리이든 우리 머릿속의 인지적인 분리이든. 이장욱 시인이 그랬어요. 시인은 아마추어여야 한다고. 그 말을 제식대로 해석하면 시인은 원래 아마추어이고 아마추어로서 계속 가야 되는 것같아요. 오히려 저는 아마추어가 더 좋은데, 생활 속에서, 삶속에서 시적인 순간들을 만나고 그 순간을 시 쓰기로 옮겨오고, 저는 사실 그런 의미에서 이 차이라는 것이 원래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 졌다는 거죠. 그게 더 시의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김후영: 많은 사람들이 예술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하셨지요. 예술을 시장경제원리의 관점으로 보신건가요?

 

□ 심보선: 시장경제 원리 관점으로 본 것이 아니라, 저는 예술을 시장경제원리 관점으로 보는 걸 반대하거든요. 생산이라고 하는 것은 소비자로서 우리가 예술을 대할 때 그것이 오히려 시장경제원리가 되는 거죠. 아까 제가 처음에 얘기할 때 기쁨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좋은 카메라를 사서 새것 생겼다라는 기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가지고 길거리 돌아다니면서 찍고, 배우고 이게 훨씬 더 필요한 거죠. 그게 생산자로서 기쁨이겠죠.

 

김후영: 시인은 생산자고 독자는 소비자라는 단순한 관점으로 말씀하신 건 아니죠?

 

□ 심보선: 저는 읽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읽는 것도 생산이라고 생각해요.

 

 

나름

 

김후영: 새로움은 다양한 섭렵에서 온다고 하셨는데 다양한 섭렵이란 무엇을 말씀한 것인지요?

 

□ 심보선: 제가 그랬어요? 어디서 그랬어요?(웃음)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것 다 했던 것 같아요. 물론 어떤 것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했기 때문에 했던 것이고, 어쩔 수 없이 가야 되니까 가는 것이고, 해야 하니까 하는 게 있고. 또 해야 하는 것 중에서도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게 있고. 군대는 국방의 의무니까 해야 하는 것이고 또 먹고사는 문제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고. 물론 그런 것들 속에 경험의 의미가 있겠는데, 섭렵이란 바로 경험인 것 같아요.

 

김후영: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려면 능력도 있어야 되잖아요.(웃음)

 

□ 심보선: 제가 잘한다는 것은 뭐, 오히려 시는 아직도 제가 잘 쓴다고 생각을 안 하고요, 시 쓰는 사람들은 다 그렇겠죠. 자기가 잘 쓴다고 생각 할 수가 없는 것이 시니까. ‘나 잘한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야구하고 사진이에요. 그 둘은 제가 생각할 때, 남들이 뭐라고 하건 저는 나 사진 잘 찍어, 나 야구 잘해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글 쓰고, 공부하고, 시 쓰고 이것은...

 

김후영: 너무 겸손하신 것 아닌가요?

 

□ 심보선: 잘 한다는 소리 듣고 잠깐 기분이 좋은 수 있는데 사실 나 못하는데이런 자괴감도 있고 이건 겸손함이 아니라 진짜 자신이 없는 거예요. 하나 쓰고 다음 시를 쓸 때도 , 이 시보다 더 잘 쓸 수 있을까?’ 뭐 이런 고민도 있고, ‘계속 이렇게 못 쓰게 되는 것 아닌가?’ 하나하나가 정말 두려움이고, 또 해방이고, 그런 상황에서 잘 쓴다, 좋다라는 말은 의미가 없죠.

 

김후영: 선생님처럼 잘 쓰시는 분도 그런 고민을 하네요.

 

□ 심보선: 그러니까 다양한 섭렵이라는 것이 취미를 또 말하는 건 아니고요. ‘전문성이냐 취미냐가 아니라 제가 그래서 경험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전문성이든 취미든 경험으로 이것들을 소위 섭렵을 하면 거기서 계속 뭔가 축적이 되는 거죠. 이 축적 된 것들이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글쓰기에도 도움이 될 수 있고 그렇죠. 그리고 또 중요한 건, ‘지그문트 바우만이라는 사회학자는 서핑이다 그러는데, 요새 웹서핑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서핑이라는 것이 바다 표면에서 파도 타는 거잖아요? 그래서 서핑이라는 말은 경험이 없다. 이 섭렵이라는 말은, 다양한 분야를 빠른 속도로 주어진 시간 안에 서핑 하듯이 클릭해서 들어갔다가 , 이런 거구나수박 겉핥기로 그런 것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 푹 안으로 들어가는 거죠. ‘전문성을 가져라가 아니라 푹 들어가는 거죠. 푹 들어가면 거기 사람들이 보이고, 삶이 보이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배우고, 듣고, 경험하고, 그런 것들이 내 삶으로 다시 돌아오고, 또 내 글로 돌아오고 표현되고, 그런 얘기죠.

 

김후영: 요즘은 선생님처럼 사회학을 하면서 시를 쓰시거나 교수, 의사, 그리고 선생님의천사-되기에서 무식한 시인-되기라는 글에서처럼 지방의 복지관에서 시 쓰기를 배우는 분들조차 농사라는 본업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는 시가 마치 본업의 소장품 같은 느낌이 얼핏 들기도 합니다. 시만 써서는 생계유지가 힘든 문단의 상황을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심보선: 저는 직업적 관점에서 시를 보지 말고 다른 관점에서 보자이거든요. 물론 시만 써서 생계유지가 힘든 상황이 있죠. 그런 상황에서 대안이, 요새 문창과도 대학원들이 생기고, 석사뿐 아니라 박사과정도 생기고, 많은 젊은 시인들이 강사로 있고, 그리고 사실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안전하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소설은 모르겠지만 시는 전업시인이 있나요? 거의 없죠. 그러니까 시는 애초부터 먹고사는 문제하고 관계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문단이라는 네트워크 제도가 생기면서 시로 먹고살 수 있게 됐죠. 왜냐하면 학위가 생길 수 있고 강의가 생길 수 있고. 그러니까 고료로만 먹고 사는 시인은 없었던 것 같아요. 시인은 애초부터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태양

오른쪽

레몬향기

상념 없는 산책

죽은 개 옆에 산 개

노루귀 꽃이 빠진 식물도감

종교 서적의 마지막 문장

느린 화면 속의 죽음

예술가의 박식함

불계(不計)

변덕쟁이들

회고전들

인용과 각주

어제의 통화 내용

부르주아 대가족

불어의 R 발음

모교의 정문

옛 애인들(가나다 순)

컨설턴트의 고객 개념

칸트의 물() 자체

물 자체라는 말 자체

라벤더 향기

아래쪽

토성

 

ㅡ「나를 환멸로 이끄는 것들전문

 

 

김후영: 선생님의 여러 사회 활동 중 <6.9 작가 선언>이 궁금한데요. <6.9 작가 선언> 은 마치 문단의 흐름에 대한 소외효과같기도 하고, 거기 참석한 작가들이 마치 의식 있는 방외인들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6.9 작가 선언>“‘우리를 향해 말을 건네는 방식이라고도 하셨던데, <6.9 작가 선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 심보선: <6.9 작가 선언>은 지금은 거의 활동을 안 해요. <6.9 작가 선언>이 만들어졌을 때 시국선언을 했었죠. 그때 용산 농성에 일인 시위를 했었어요. 여기에 글쓰는 사람들이 많이 갔었어요. 매일. 여기서 만난 사람들, 진은영 시인도 있고 송경동 시인도 있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돼서 희망버스, 두리반, 정리해고문제, 철폐 싸움 등에 참여를 하게 됐고 또 관련된 글을 쓰고 하는 거죠. 그래서 <6.9 작가 선언>이 저한테는 큰 경험이었어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얘기를 하게 되고 그리고 그런 대화와 만남 속에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사회적 관심과 문학적 관심이 녹아 든 거죠. 지금도 제가 열심히 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의미 있는 것 같아요.

 

김후영: 그러면 <6.9 작가 선언>은 일회적으로 끝난 건가요?

 

□ 심보선: <6.9 작가 선언> 모임의 활동은 끝났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 모임의 영향력이랄까 그런 것들은 아직도 몇몇 개인들한테는 큰 것 같고, 그다음에 기억이 또 크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김후영: 21세기 전망동인이라고 하셨는데 거기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 심보선: 요새는 이것도 거의 활동은 없고(웃음) 그런 건 있어요. 21세기 전망 사람들이 아직도 다른 이력은 모르겠는데 ‘21세기 전망 동인이라는 말은 써요. 제 시집에도 썼죠.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데, 요새는 글 쓰는 사람들 모이면 글 얘기 안 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 등단을 하고, 그때는 시가 뭔지도 모르고, 시인이 뭔지도 모르고 할 때 이 전망의 선배들은 정말 밤새서 글 얘기 하고, 시 얘기 하고, 문학얘기 하고. 그래서 저는 등단 전에 소위 문학공부를 못 했고 등단 후에 했는데 할 수 있었던 게 바로 이 전망 동인 활동이었죠.

 

김후영: 사람들은 목표에 속아 평생을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드는데요, 선생님도 유학길에 오를 때 많은 계획들이 있으셨을 듯합니다. 지금 그때의 계획들은 모두 이루셨는지요?

 

□ 심보선: 제가 원래는 유학 갈 생각이 없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급하게 준비해가지고 얼떨결에 가게 됐는데, 일단 갔으니까 8년 동안 있었죠. 석사도 아니고 박사과정이니까. 공부하는 사람의 계획은 딱히 정확히 없어요. 그저 계속 연구하고 글쓰고 그게 계획이죠. 지금도 더 공부하고 싶고, 더 읽고, 더 쓰고 이래야 되는데, 한국이 진짜 정신이 없더라고요.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회죠. 누가 그러더라고요. ‘미국은 재미없는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김후영: 선생님 첫 시집에 나와 있는 성격유형 검사<MBTI>에서 ‘INFP’는 실제 선생님의 검사 결과 인가요? 사람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모순일 것도 같은데 검사 결과는 맞는 것 같던가요?

 

□ 심보선: 제 성격이 INFP가 나왔어요. INFP 라고 하는 전혀 시적이지 않은 심리 테스트 용어를 시로 쓰니까 재미있는 거죠. 좀 맞는 것 같아요.

 

김후영: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 심보선: 계속 썼으면 좋겠어요. , 글 이런 것. 시는 계속 쓰겠죠. 그 중에서 꿈이라기보다는 어떤 책을 써야지 하는 계획들이 있는데 그런 걸 썼으면 좋겠고 그래요.

 

김후영: 독자로서 앞으로 만나게 될 선생님의 시편들이 기대가 됩니다. 바쁘신데 귀한 시간 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걸어오면서 시인의 아버지에 대해, 어머니에 대해, 시인이 살던 옛집에 대해 그리고 MWTV와 이주민들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헤어지기까지 걸어서 몇 미터 안 되는 그 거리가 값비싼 시간들로 도금된 것 같았다. 뒤틀린 사회를 이렇듯 성실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의 중심에서 사랑을 뺀다면 마치 공기 빠진 풍선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헤어졌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시들이, 특히 다른 사람들의 독백이 도무지 실남나지 않는 식탁처럼 느껴져 외로웠을 때, 일부러 찾아 읽었던 심보선의 시. 그는 아니 그의 시들은 매번 나에게도 따스한 위안을 주었다. 개인적인 첫인상과는 점점 멀어졌던 시인의 다소 거친 생활과 어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대담과 소소한 대화들(트위터 근황까지)에 관심을 끄지 않은 것은, 막연하나마 따뜻한 인간성에 대한 기대 때문일까. 요즘이 궁금할 때 나는 역시 자주 기웃대는 공간에 가고 문지나 창비나 시인광장이나 어디서든 만나면 반가운 그의 이름(사실 주렁주렁 닉네임이 많이 달렸어서 안쓰럽기도 하나)을 스스럼없이 대한다. 아, 이 사람!....이 년전 창비구독 중 만났던 그 평론은 너무 어려워 묵혀졌다가 이해를 했었지! 하며 기억의 연상작용 속에서 기뻐한다. 올림픽 정신이 발동되면서 행여나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아하 그 여자! 기쁨으로 살아났으면 좋겠다, 짬내서 생각해 보기도 하며. 두 사람의 대담을 엿듣는다는 기분으로가 아니라 대담하게 공청한단 느낌으로 읽는다. 

 

깡그리 모셔두는 의도는 한 번 더 읽을 기회가 오면 밑줄을 그으며 읽어야지 하는 것도 있지만 밑줄은 이미 머릿속에서 그어졌다. 역시 거칠다. 좋게 터프하다. 40의 남자답다. 등등의 자질구레한 수식어를 혼자만의 방식으로 지껄인다. 중요한 건, 다는 아니지만 부분부분 쓸 말 쓰고 할 말 하는 시인의 담백성이 돋보여서 고개를 끄덕이다 머릿속에 또 밑줄을 그어야지 하는 생각. 주저리형 산문처럼 보이는 '사랑은 나의 약점' 보다 첫 번째 시 '아버지, 옛집을 생각하며'가 더 시적 긴장감을 준다. 아버지..시에선, 프랑시스 잠의 <식당> 냄새도 약간 난다. 나만의 독자적 후각인지 모르겠으나, 사랑이 자신의 약점이라는 시 속에서는 사랑 안에(또는 배면에) 갈등이 많이 보여진다

 

새벽에 깨어 새벽시장엘 갈까 하다가 미루고 앉아 시인을 본다. 사계절 자외선에 노출하고 다니는지(다사다망한 활동가니까) 여전히 얼굴엔 검은 기미가 벗겨지지 않아 안쓰럽다.(내가 왜 이러지..뭣 땜시-->이래질 때 난 또 신경질이 날려고 함) 암튼...묻는 자(최대한 전문적이지 않게 격식이나 규격을 배제하려고 노력하면서)나 대답하는 자의 엇갈림, 솔직한 구어적 발성들이 닿는 아침. 쨤이란, 빵과 빵 사이 달콤한 접합물이기도 하고 발바닥 부르트게 헤메이는 이의 포근한 침대이기도 하단 생각을 하며 잠시 침을 흘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