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어떤 유정란의 추억 / 강은교
미송
2012. 8. 1. 18:59
어떤 유정란의 추억 / 강은교
이 프라이팬을 보세요, 오들오들 떨며 나는 익어요, 버
석버석 부서지면서 나는 익는다니까요, 이 노란 액즙, 이
하얀 수액, 여기 나의 아기가 들어 있어요, 여기 내 긴 길
의 입이 들어 있어요,
내 이름은 유정란이에요, 채식주의자 오양은 먹지 않
는 유정란, 보통 계란보다 1000원이나 비싼 유정란, 한
때는 냉장고에 있었죠, 며칠을 거기서 떨었었죠,
이제 생기기 시작한 내 긴 길- 입의 세포들, 이제 생기
기기 시작한 내 긴 길-입의 피톨들, 내 심장 안에 말없이
누워 있는 산소들, 날개들.
(그런데 식용유 자꾸 나를 따라오네, 따라온 식용유 나
를 껴안네 자꾸자꾸 싫다는데두)
아, 우리는 모두 부서지고 나서야 익는 것인가, 식고 나
서야 뜨거워지는 것인가.
강은교<초록 거미의 사랑>(2006, 창비259) p52.
두 줄의 시안詩眼을 던지기 위해 무대에 뛰어오른 우리 유정란양, 자기 얘기를 생글생글 하고 있나요.
부서지고 익어 가면서도 연신 그녀, 입은 말하고 있군요.
걸어 온 길의 역사와 유물들의 내력과 에피소드를,
아야아, 아파하면서도 노래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로 몸의 소멸을 들려주고 있어요.
참, 시인들이란 못 말리는 마조히스트.
앗뜨, 아야아, 냉온방을 수數도 없이 왕래하면서도 그저
익어가는, 뜨거워지는, 열매 한 알에 목숨을 다 걸다니,
죽었다...셈치고 살아가는 위인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