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의 작품

달빛애인과 그의 여자들

미송 2015. 11. 5. 00:44

 

 

달빛애인과 그의 여자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신화를 집대성한 구약의 창세기는 수십만 년 지탱해 내려온 모권질서인 여성시대를 남성들이 종식시키고 다시는 여성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하지 못하게 그녀들의 의식에 노예의 족쇄를 채우고 있다. 이런 남성승리의 신화는 제우스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손녀인 티폰을 싸움에서 패배시키거나, 인도의 인드라신화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브를 꼬여서 선악과를 따먹게 한 뱀은 여성을 상징하는 신이라고 한다. 이브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자 야훼는 분노하여 뱀의 발을 뺏어버리고 평생 배로 기어 다니게 만든다. 그리스의 제우스신은 뱀의 머리로 온통 뒤덮인 티폰을 죽여 버린다. 머리카락이 수많은 뱀의 머리로 뻗힌 메두사의 죽음도 역시 여성의 패배를 상징한다. 기원전 3500년경에 제작된 청동기유물이나 토기에 새겨진 그림에는 여성신과 뱀이 한데 어우러진다. 종교학자들은 이런 형상들이 석기시대부터 인류를 지배하던 모계신화의 상징으로 판단한다.

 

뱀은 허물을 벗는 생물학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신화에서는 죽음과 부활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수메르의 신화에는 영원한 생명을 찾아나서는 길가메시라는 영웅이 나오는데, 그는 많은 모험을 거치며 깊은 물 속에서 자라고 있는 영원한 생명의 풀을 따서 나온다. 이 풀을 가져오는 도중에 옆에 두고 잠깐 잠이 들었다. 그 틈에 뱀이 풀을 훔쳐 먹고 허물을 벗게 된다. 이는 부활이고 다시 시작하는 달의 발걸음이다. 달의 발걸음에 맞춰 여성의 생리가 차오르고 조수(潮水)의 수의가 달라진다. 최명희 작가는 <혼불>에서 달의 차오름과 이지러짐,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조수의 변화, 그리고 여성의 정혈(精血)이라는 삼각구도를 실감나는 수필체로 기술하고 있다. 여성의 몸은 모든 종교와 신화의 기초인 죽음과 부활을 되풀이하는, 달의 행보를 따르는 달력이다. 선사시대의 신화는 신비스런 피를 모았다가 내보내는 여성의 자궁에 거주한다. 여성신화는 “태초에 자궁이 있었다.”고 말한다. 남성신화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반박한다. 달과 태양의 대립, 출생지가 다르다.

 

남성에게 있어서 피는 곧 죽음만 뜻한다. 인류학자에 의하면 남성의 의식에 각인된 최초의 공포는 여성의 생리라고 한다. 주기적으로 피를 보이는 여성의 몸에서 남성은 깊은 두려움을 느꼈다. 남성은 동물에게 물리거나 다쳐야만 피를 흘린다. 이는 생명의 훼손과 직결된다. 그러나 여성의 피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연결된 부활의 고리기에 끝없는 생산과 풍요의 신비로 숭배 받는다. 여성과 피에 대한 두려움이 할례라는 남성의 성인식과 연결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는 모권질서에 대한 남성의 반란의식일 수도 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 원주민들의 풍습에 의하면 성인의식은 어두운 숲 속에서 무척 경건하고 깊은 공포분위기로 진행된다. 가장 효과적인 학습 분위기는 경건과 공포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자궁에서처럼 남성의 성기에서 뿜어지는 피로 무의식에 각인되었던 태초의 두려움을 뽑아버리고, 이때부터 아이는 모권질서인 어머니와 정식으로 이별한다. 그리고 새 여자와 결혼하여 지배하게 된다. 이로서 아마존의 여전사들이 그 전설의 종말을 고한 것이다.

 

창세기 이후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기원전 3500년 문자, 달력, 바퀴, 등으로 문명이 시동을 건 이후 여성들은 줄곧 노예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구약에서는 자기의 여자를 자기 몸같이 하라고 말한다. 여자는 분명한 “자기의 여자” 아니면 “남의 여자”라는 소유관념이다. 이는 남자의 일방적인 생활태도와 마음가짐에 관한 문제일 뿐이다. 남성들은 여러 여자를 거느리지만 여자는 불리한 위치에서도 순종해야만 한다. 여성으로 하여금 자기의 위치를 스스로 찾으라는 말이 전혀 없으니, 모두가 남자의 처분에 맡겨진 셈이다. 여성을 해방시켰다는 예수의 시대 이후, 충실한 예수의 전도사인 사도바울도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사도바울도 자기 몸같이 아내를 대접하라고 지엄하게 말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도사리고 있다. “독신이 좋다. 그러나 정 정욕을 참지 못한다면 결혼해라.” 여자에게는 수치스럽게도 결혼은 남성의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일 뿐이다. 예수의 제자 중에서 유일한 지식인이었던 바울의 이런 생각은 스토아 철학의 금욕주의를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창조와 타락, 그리고 회복, 빛과 암흑, 선과 악, 메시아라는 종교의 기본개념을 창시한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차라투스트라)교 글에 나오는 <아르다 비라프의 환상>의 한 대목을 보자. 사악한 자가 죽어서 지옥을 여행하는 도중에 한 남자가 그의 입으로 월경할 때에 흘리는 피를 계속해서 벌컥벌컥 들이마시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자기 자식을 구워먹는 벌을 받고 있었다. 사악한 자가 그 남자의 죄를 묻자 천사들이 대답했다. “저 사악한 자는 세상에 있을 때에 월경중인 여자와 교접을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이 내용에서는 여성의 생리가 죄의 원천으로 보인다. 생리는 신성함이 아니라 불결하기에 그 속에 몸 담근 남자의 행위도 추하다. 왜냐하면 서술의 배경이 사악한자들이며 지옥이고, 월경이라는 신성을 모독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다. 어떤 여자는 남자의 더럽고 불순한 것을 가득 채운 잔을 연거푸 마시는 벌을 받고 있는데, 월경 중에 물과 불을 가까이 했다는 죄를 지어서 그렇다. 여기서의 물과 불은 성교를 의미한다고 보여 진다. 거푸 잔을 들이마시는 벌이 남자의 더럽고 불순한, 즉 정액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대지의 여신은 이렇게 태양 아래 곤두박질 쳤다.

 

인도로 가면 여신들이 많이 등장한다. 여신의 대표인 칼리여신은 피를 핥아먹는 텅 빈 위를 가진 굶주림으로 나타난다. 사람의 팔다리를 잘라 엮어서 치마로 두르고 열두 개의 손에는 사람 잡는 무기가 잔뜩 쥐어져 있다. 옛날에는 실제로 사람을 죽여서 칼리여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신화학자들은 이를 모계신앙이 살아남아서 그대로 전승된 것으로 본다. 이런 무시무시한 신의 남편은 남성인 시바신이다. 여신을 살려두되 그 지배자로서 남성을 위에 갖다 붙인 교묘함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더욱 여성에게 모욕적이고 참을 수 없는 것은 희롱이다. 남자들의 장난감으로 떨어진 여성의 위치가 인도의 전설에 나타난다. 물론 이 전설의 본 모습은 정교한 종교적 논리이다. 초월적인 신이 인간에게 내재화되어 가는 과정을 그렸지만 여성들은 남성에게 희롱을 당하고 울고불고, 그러면서도 또 잊지 못하여 매달리는 장면이 연속된다. <고피들과 달빛애인>을 따라가 보자. 비슈누신의 8번째 화신인 크리슈나는 달밤에 소년으로 나타나 피리를 분다. 잠자던 여인들이 이 소리를 듣고 깨어서 숲 속으로 몰려든다. 여기서 “고피들”이란 특정한 여성집단으로 여겨진다. 아니면 일반여성 모두를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이 처녀가 아닌 유부녀다.

 

달려온 많은 군중을 본 그 소년은 놀라는 체 하였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당신들의 아버지, 형제, 남편은 어디에 있는가?” 여자들은 모두 놀랐다. 더구나 자기 이외의 다른 여자들도 모두 거기에 와 있는 것을 보고는 더욱 놀랐다. 어떤 여자들은 발끝으로 땅에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여자들의 눈은 모두 눈물의 호수가 되었다. “우리는 당신의 연잎처럼 생긴 발로부터 떠나갈 수 없습니다.”라고 그 여자들은 애원하였다. 여자들을 희롱할 만큼 희롱한 그 신은 그녀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피리소리에 맞춰 놀았다. “오, 연잎처럼 생긴 당신의 손을 우리의 아리는 가슴 위에, 우리의 머리 위에 놓아주십시오.”라고 그들은 외쳤다. 드디어 춤이 시작되었다.

 

그가 손으로 여자들의 몸을 만졌다. 그러자 주술에 걸린 듯 여자들의 눈은 감기었다. 여자들은 원을 만들었다. 크리슈나가 가을을 찬미하면서 한 곡조 뽑았다. 고피들은 크리슈나를 칭송하면서 화답하였으며, 딸랑거리는 팔찌소리와 함께 춤이 시작되었다. 빙빙 돌면서 어지럼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여자들은 다투어 사랑하는 애인의 목 주위에 팔을 감았다. 그에게서 나오는 땀방울은 땅을 비옥하게 하는 비와 같았고, 그녀들의 관자놀이로 흘러들었다. 크리슈나는 노래를 불렀고, 고피들은 ‘만세, 크리슈나!’를 외쳤다. 여자들은 그가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 갔으며, 그가 돌아서면 서로 마주보았다. 각자에게 매 순간은 무수한 세월이었다.

 

먼지로 뒤덮인 암코끼리들이 숫코끼리의 광란을 즐기듯, 사지가 먼지와 소똥으로 뒤덮인 이 여자들의 무리는 크리슈나에게 달려들어 함께 춤을 추었다. 그들은 웃고 있었으며, 그들의 눈은 검은 영양의 눈처럼 크고 따뜻하였다. 그 다정한 친구의 놀라운 힘을 굶주린 듯이 게걸스럽게 마셨을 때, 그 여자들의 눈은 밝게 빛났다. 그가 놀라게 하려고 ‘아하!’하고 소리치자 여자들은 환희에 넘쳐 몸을 떨었다. 이처럼 가을 달밤에 젊은 신이 고피들과 놀고 있을 때, 여자들의 늘어뜨린 머리는 뛰는 가슴 위에 작은 폭포가 되어 떨어졌다.

크리슈나는 손을 뻗어서 여자들의 손, 늘어뜨린 머리카락, 허벅지, 허리와 가슴을 어루만졌으며, 손톱으로 간지럽혔다. 그리고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는 웃고 농담을 걸고 희롱하였으며, 사랑의 주가 가지고 있는 온갖 속임수로 여자들을 만족시켰다.“

고피들은 황홀감에 젖어 소리쳤다.

 

“확실한 보호를 약속하는 강건한 두 팔, 행운의 여신의 마음속에 사랑의 불꽃을 키울 그대의 가슴, 그리고 당신의 그 경이로운 눈과 미소에 우리는 사로잡혔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노예가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당신의 피리와 당신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천상과 지상, 그리고 지옥의 어떤 여자도 자신의 순결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의 아름다움은 세상의 영광입니다. 당신을 보면 암소와 암컷 짐승, 심지어 알을 품고 있는 암컷 새들마저도 털과 깃이 곤두서는 환희을 느낄 것입니다.”

 

여자들이 설렘의 단계를 넘어 광란의 단계에 이를 정도로 흥분되었을 때, 그 신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제 완전히 미쳐버린 여자들은 이 숲, 저 숲을 돌아다니면서 포도나무, 나무, 새와 꽃들에게 그의 행방을 물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외치고, 찬미하고, 그의 몸짓을 요염하게 흉내 냈다. 그때 갑자기 한 여자가 “이것 좀 봐!”하고 외쳤다. 그의 발자국을 발견한 것이다.

그들 모두는 “여기에 우리 주인의 발자국이 있다!”하고 외쳤다.

 

그러더니 “어머나!”하고 다시 외쳤다. 그의 발자국 뒤에는 그보다 작은 발자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작은 발자국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다.

 

“우리의 주인이 그녀를 안고 갔음이 틀림없다! 여기를 봐! 주인의 발자국이 더 깊어지고 있잖아. 그리고 여기서 꽃을 따기 위하여 그녀를 내려놓았어. 또 여기 앉아서 꽃으로 그녀의 머리를 따주었다. 그녀는 누구일까?”하고 여자들은 외쳤다.

 

크리슈나가 데려간 여자는 소를 치는 목동의 아내였다. 크리슈나가 나머지 여자들을 내버려둔 채 그녀만을 숲으로 데리고 가자, 그녀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자라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에게 다정한 이 주인은 나머지 무리를 버리고 나를 선택한 것이다.”라고 상상했다. 이렇게 자부하면서 여자는 말했다. “여보, 나는 이제 더 걸을 수 없어요. 다시 한번 나를 안아 주세요. 당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나를 안내해주세요.” 그러자 크리슈나는 “좋소. 나의 어깨로 올라오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어깨에 올라가려고 할 때, 그는 사라졌다. 깜짝 놀란 그녀는 기절하여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곳에 다른 여자들이 막 도착하여 울면서 외쳤다.

 

“우리는 모두 그대를 만나기 위하여 결혼을 파기하였다. 기만자여, 그대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대 말고 누가 이처럼 밤에 한 여자를 버리겠는가? 그러나 갑자기 여자들의 기분은 바뀌었다. 그들은 이렇게 속삭였다.

“오, 불쌍하고 애처로운 그대의 발이여! 그토록 많이 달렸으니 아프지 않겠는가? 자, 당신의 발을 우리의 부드러운 가슴 위에 올려놓으세요!”

 

크리슈나의 오만함과 장난은 계속되었다.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여자를 희롱하던 크리슈나가 또 나타나자 여자들은 환성을 질렀고, 그 와중에 그들은 섭섭함으로 “우리는 당신에게 애착을 갖지만 왜 당신은 우리에게 애착을 갖지 않으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이에 크리슈나는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고 “내가 너희들에게 애착을 가지지 않는 이유는 너희들의 애착을 더욱 강화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봉사행위에 대해서 나는 결코 보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보답은 그대들 자신의 더 많은 봉사행위 속에서만 발견된다.”라고 대답한다. 지금의 여성들이 이 글을 보면 수치스러움에 분노할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전설은 12세기 경에 왕궁시인이었던 자야데바를 만나서 휙 뒤집어진다. 크리슈나와 같이 숲 속을 갔던 유부녀인 여자에게 “라다”라는 이름을 지어줄 뿐만 아니라, 라다가 크리슈나를 사랑의 힘으로 정복하고, 뜨거운 정사 뒤에는 잔심부름까지 시켜 먹는다. 남성의 상징이었던 신이 여자의 무릎아래 굴복하여 잔심부름을 모두 해 준다. 서두는 물론 달빛애인을 사모하는 라다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시녀의 노래를 듣던 라다가 분노한다.

 

“나는 알고 있지. 나는 알고 있지. 크리슈나가 어디에서 머무는지. 그는 한 여자에게 입을 맞추고, 다른 여자를 애무하고, 또 다른 여자에게 달려들고 있네. 노란 옷을 입고 화환을 두른 채 여자들과 춤을 추면서 그녀들이 미치도록 희롱하고 있네. 지금은 가장 예쁜 여자가 그와 춤을 추고 있네.”

 

격노한 라다는 숲 속으로 돌진하였다. 완전히 미친 것처럼 그녀는 그 무리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라다는 크리슈나의 입술을 열정적으로 빨면서 외쳤다.

 

“아, 좋구나! 당신의 입은 신찬(神饌)이다!”

 

그러나 다른 여자와 춤추던 크리슈나에게 라다가 딱지를 맞고 돌아온다. 시녀는 라다를 위로한다.

 

오, 크리슈나가 나를 온갖 욕정의 대상으로 삼게 하소서. 오늘 밤 내 옆에 누워서 미소로 나를 자극시키고 팔로 나를 죄며, 나의 입술을 맛보고 꽃침대에 있는 나의 가슴 위에서 오래도록 잠들게 하소서. 그의 손톱이 나의 가슴을 파고들게 하소서. 사랑의 기술을 넘어 나의 머리카락을 잡고 나를 황홀하게 하소서. 나의 팔다리에 있는 보석들이 소리를 내게 하고, 나의 속옷이 찢어지도록 하소서! 오, 사랑의 행위가 끝나면 황홀에 빠져 리아나(열대산 칡의 일종)처럼 그의 팔 안으로 떨어지게 하소서! 이제 그가 춤을 멈추고 있구나. 피리가 손에서 떨어진다. 숲 속의 놀이가 그 매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는 애인의 순간적 모습 - 그녀의 가슴, 팔, 머릿단 - 을 다시 떠올렸지만 마음은 이미 춤으로부터 멀어졌다.

 

크리슈나는 라다의 생각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실망하고 돌아간 라다를 그리워한다.

 

아! 그녀는 가버렸구나. 내가 그녀를 내버려두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 친구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삶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지금 화나고 찌푸린 그녀의 이마만이 보일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 마음속에 있다...... 그녀를 이렇게 내 마음속에 잡아 둘 수 있다면, 그녀는 실제로 가버릴 수 있을까?

 

이를 본 시녀가 크리슈나에게 다가와 아직도 라다의 마음이 변치 않았음을 전한다.

 

당신과 포옹할 때에 맛보는 쾌락을 위해서 그녀는 꽃침대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당신 없이 살 수 있겠습니까? 오십시오! 그녀는 사랑의 병에 걸려있습니다.

 

그러자 크리슈나는 모른 체 하며 일부러 딴청을 피운다. 라다를 찾을 생각도 안하고 그저 자기가 여기 있다고 전하라는 말만 던진다. 그러나 시녀는 더욱 애달프게 라다의 마음을 노래한다.

 

그녀는 꽃들 사이에서 기다리고 있으며, 오직 당신의 사랑을 꿈꾸며 살고 있습니다. 왜 당신이 머뭇거리는지 의아해 합니다. 그녀는 신기루에 입을 맞추며 홀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떨어지는 모든 잎이 당신이라고 생각하며 침대를 부드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여기서 머물고 계신가요?

 

시녀는 라다에게 가서 크리슈나의 마음이 변치 않았다고 귀띔하지만 라다는 슬퍼할 뿐 내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시녀는 라다의 용기를 북돋운다.

 

그는 당신을 부르기 위하여 피리의 음색을 조절하였습니다. 오, 욕망을 품고 그에게로 가세요. 부드러운 나뭇가지들로 만든 침상 위에서 당신의 옷과 속옷이 찢어지도록 하세요. 그리고 당신의 호사한 엉덩이와 그 사이에 있는 달콤한 쾌락의 그릇이 담고 있는 풍부한 보물을 그에게 바치세요. 그러면 그는 모든 곳에서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욕망을 참을 수 없게 될 거예요. 지금이 바로 그 시간입니다.

 

사랑에 사로잡힌 크리슈나는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라다를 찾아왔다. 그러나 라다는 못 본체 하다가 우주의 주인이며, 전지전능한 비슈누의 8번째 화신인 크리슈나에게 바가지를 긁는다. 사랑에는 신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격노한 라다 앞에서 그저 머리를 조아릴 뿐이다. 졸음에 겨운 크리슈나의 눈꺼풀을 가리키며 라다가 입을 열었다.

 

이 무거운 눈꺼풀! 울어서 그렇게 된 것인가? 아니, 화려한 광란의 밤을 보내서 그렇게 된 것이지요! 가세요! 꺼져버리세요! 당신을 이토록 피곤하게 만든 여자의 자취를 따라가세요! 당신의 이빨은 그 여자의 눈 화장이 묻어서 검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손톱자국이 있는 당신의 엉덩이는 그녀의 승리를 증명하고 있어요. 당신의 입술에 있는 그녀의 이빨자국은 생각만 하여도 괴롭습니다. 당신은 여자들을 먹기 위해서만 숲을 배회하고 있지요!

 

그러자 시녀가 깜짝 놀라서 라다를 달랜다.

 

오, 라다여, 당신의 아름다운 애인이 이제 막 도착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어디 있습니까? 왜 당신은 코코넛보다 무겁고 아름다운 쾌락으로 가득 찬 당신 가슴의 선물을 무용지물로 만드십니까? 이 소중한 젊음을 멸시하지 마세요. 울지 마세요. 그를 보세요. 그를 사랑하세요. 그를 먹으세요. 과일처럼 그를 맛보세요.

 

라다는 시녀의 노래에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되찾지만, 다른 여자에게 갔던 크리슈나가 원망스럽고 섭섭하기만 하다. 한숨을 지으며 눈물짓고 있는 라다에게 드디어 크리슈나가 다가와 사랑을 고백한다.

 

당신의 이빨은 달처럼 빛나고 나의 두려운 어둠을 흩어지게 합니다. 욕망의 불이 내 영혼 속에서 타고 있소. 당신 입술의 꿀로 그 불을 꺼주시오. 화가 났다면, 당신의 눈으로 나를 찌르고, 팔로 나를 감고, 이빨로 나를 찢으시오. 당신은 나의 존재의 대양에 있는 진주입니다. 당신은 나의 가슴의 여자입니다. 내가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지만 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시오. 나의 가슴 속에는 사랑 이외에는 어떤 힘도 없소.

 

그러자 시녀가 얼른 라다의 귀에 대고 돌진할 것을 속삭인다. 기회를 잡으라는 뜻이다.

 

당신은 이제 그를 살해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기분이 지금 달콤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발목의 장식으로 나른한 소리를 내면서 약간 교만한 자태로 그에게 걸어가세요. 코끼리의 코처럼 둥그런 당신의 허벅지를 그에게 갖다대고 당신의 가슴을 안내자로 삼으세요. 당신의 가슴은 지금 노골적으로 그의 입술을 갈망하고 있어요. 영광스럽고 사랑스러운 당신의 몸은 다가오는 밤의 전쟁을 위해서 잘 준비되어 있어요. 보석이 달린 채 흔들거리는 허리띠의 북소리에 맞추어 진군하세요. 진군하세요. 찰랑거리는 팔찌소리로 임박한 공격을 선포하면서 날카로운 손톱을 그의 가슴에 갖다 대세요. 그는 환희의 땀을 흘리면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는 떨고 있어요. 이 한밤중의 어둠 속에서 그를 사로잡으세요. 한 번의 눈짓만큼 손쉬운 약간의 쾌락을 통해서 당신의 노예로 사들일 수 있는 자를 왜 두려워하나요?

 

라다는 머뭇거렸다. 크리슈나도 마찬가지였다. 한참 서로 바라보다가 드디어 크리슈나가 먼저 가슴을 열었다.

 

옷을 벗기고 당신의 가슴을 나의 가슴에 밀착시켜주시오. 그리하여 죽어 있는 당신의 노예에게 생명을 회복시켜 주시오.

 

드디어 사랑의 주도권을 잡은 라다, 화살처럼 달려들어서 뱀의 혓바닥을 날름대듯이 입술을 포개고 사지로 크리슈나를 감는다. 가슴으로 공격하고, 손톱으로 난도질하며 이빨로 그의 아랫입술을 찢었다. 엉덩이로 그를 공격하면서 그의 머리카락을 잡고 얼굴을 끌어 당겼다. 그리고 목구멍의 꿀술을 그의 얼굴에 퍼부었다. 그러자 그는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그녀의 눈이 감기고 숨이 거칠어지자 힘이 빠지면서 큰 엉덩이가 활동을 멈추었다. 그때 신이 그 여자 위로 올라왔다. 아침이 다가왔을 때 그녀의 신적인 연인이 자신의 밑에서 본 것은 그의 손톱 부대가 찢어놓은 그녀의 가슴, 수면부족으로 불타는 눈, 훼손된 입술 색깔, 헝클어진 머리 속에서 짓이겨지고 얽히어버린 화환, 그리고 보석이 달린 속옷에서 떨어져 나간 헝겊들이었다. 연달아 쏟아진 사랑의 화살과 같은 그 광경에 그는 압도되었다.

 

나른하면서도 행복한 라다는 몸이 흐트러져 있음을 점차 깨달았다. 헝클어진 머리, 얼굴의 땀, 가슴의 상처, 그리고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은 허리띠를 보았다. 감정을 억제한 그녀는 짓이겨진 화환을 들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한쪽 손으로는 가슴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 사타구니를 가리면서 급히 도망을 쳤다.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온몸이 피로한 상태였다. 그러나 환희와 찬탄의 감정으로 가득 차 있는 그녀는 애인에게 몸치장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나의 사랑, 크리슈나여, 당신의 사랑스러운 손으로 내 가슴에 백단향 가루분을 새로 발라주세요. 눈 화장도 새롭게 고쳐주세요. 여기 귀고리와 머리에 장식한 꽃들도 단정하게 해주세요. 이마에는 멋있는 틸라카(tilaka: 힌두인들이 종교적 상징으로 앞이마에 붙이는, 색깔 있는 반죽이나 가루로 된 독특한 반점)를 그려주세요. 그 다음에는 사랑하는 코끼리를 위하여 좁은 길을 선사하던 이 포동포동하고 촉촉한 음부를 덮는 진주 허리띠와 고리를 매만져주세요. 이제 나의 가슴을 감싸주세요. 나의 팔에 팔찌를 다시 걸어주세요......”

 

이로서 여인과 크리슈나의 승부는 결정되었다. 오, 전능하고 위대한 우주의 주인이며,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크리슈나여, 라다의 손가락질에 따라 굽실굽실 이 구석 저 구석을 찾아다니며 라다의 속옷을 찾아들고, 또 라다의 혀끝에 매달려 시키는 대로 가루분도 뿌려주고 눈 화장도 고쳐주며 쩔쩔 매는 꼴이란... 창세기 이래로 굳건했던 가부장적 신의 질서가 12세기의 궁정시인, 자야데바를 만나서 뒤집어졌다.

 

그 후로 수많은 세월이 지난 후, 어젯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에 젊은 부부가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기는 남편의 등에 업혀 있었고, 부인은 편한 옷차림 상쾌하게 그 옆을 걷는다. 아기를 업은 남편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부인은 깔깔 웃으며 선선한 바람에 얼굴을 내맡겼다. 아무래도 오늘의 남성은 모두가 크리슈나인가 보다. 여자의 팬티를 찾아서 입혀주는, 그리고 눈 화장도 고쳐주고 눈썹도 그려주는,

 

2007년 봄,  이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