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송 2012. 9. 6. 18:21

환승역

-기억에 대한 에테르

 

<전략>

내가 지금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내가 건너가고 있는 하나의 시간이라는 점이고, 그곳으로 있는 힘을 다해 건너가고 있는 이 시간을 상대는 지금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그런 것들로 밤을 새우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사랑을 시작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내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스스로 믿고 싶어한다면, 나는 지금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하나의 기억이 잃어버린 하나의 정확한 시간을 찾아가는 그리움의 여정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벤야민은 말한다. 기억이란 스스로를 뒤에서부터 읽어나가는 작업이라고, 그 점을 상기한다면 기억은 엄밀하고 분명하게 초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가 감성에 부과한 가장 큰 선물은 우울함을 쾌할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벤야민은 이런 식으로 우울을 긍정한다. ‘우울한 인간이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유일한 쾌락은 바로 알레고리다.’ 가령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아무도 모르는 역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아....”

 

당신은 이제는 정말로 이별 없는 세대에 살고 싶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당신은 기억이 당신을 완전히 다 비출 때까지 그 어두운 역에 혼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상실은 당신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중략>

 

너 없는 곳은 기억이 나질 않아.....’

 

영화<이터널 선샤인>에서 주인공 짐 캐리가 케이트 윈슬렛에게 한 말이다. 그는 실연에 대한 기억 제거술을 받고 끊임없이 부작용을 앓는다. 애초부터 기억은 되돌아가서 치료될 수 없는 것이며 기억의 휴유증은 기억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삶이라는 인식에 도달할 때까지 그는 영화의 모든 부분에서 고통스러워해야 했다.

 

우리에게 아직까지 사랑에 대한 정의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한 시간이 한 시간을 만난 다음 죽을 때까지 그 시간을 갈아타야 하는 환승 같은 것인지 모른다.

 

김경주패스포트> p225~227

 

 

    

 

환승

- K의 '환승역'을 읽으며  

 

한 줌의 소망 한 줌의 이별 담담한 어조 다정한 시선이 

한 소절의 詩 같다 너는 게르에서 여자와 밤을 지내도 이불만 살풋 덮어줄 것 같다 

환승하는 동안 넌 얼만큼의 눈물을 받아냈을까 

사랑에는 불변이 없단 뜻일까, 시간을 갈아타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란 뜻일까, 

환승하지 않는 자 사랑을 말할 자격이 없단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