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한밤의 작가 사전>
한밤의 작가 사전
유령이 밤마다 인간의 사전을 들여다본다.
거기에 자신이 살 수 있는 시간이 있는가 궁금한 것이다.
헤밍웨이의 작품 ‘킬리만자로의 눈’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실패한 늙은 작가의 삶이 마지막에 찾아 나선 건 킬리만자로의 설산이었다.
그는 설산의 빙벽을 오르고 또 오른다. 그곳에서 작가는 꼭대기에 죽어 누워 있은 흑표범을 발견한다. 흑표범은 왜 그곳에 누워 있었을까?
그는 표범이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으리라. 검은 표범은 혀를 내놓고 죽지 않았다. 표범에게 혀는 관념에 다르지 않았다.
표범은 자신이라는 대의에 맞서 서식했으며 고졸古拙한 우울로 자신의 추상을 견뎠을 것이다. 세상에서 실패했지만 그 작가는 자신의 정원에 우언寓言을 기르지는 않았다. 글쓰기라는 것이 세월을 의인화하고 싶은 지독한 열망이라는 것을 알았으되, 은일隱逸한몇통의편벽偏僻을문장에흘려주었을뿐이다.
그는 지옥으로 걸어들어간 자는 많았으나, 지옥에서 태어난 작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죽은 표범의 뻥뚫린 두 눈에서 보았다.
김경주 산문집 <패스포트> 297쪽 中
고대 플라톤 이후 우리는 쉽게 관념에 잡혀 살아왔다. 동굴 속에 비친 그림자를 보며 그 그림자의 원형이 분명히 있을 것이란 생각과 신념, 어떤 종교적 목적으로까지, 관념은 지독히도 인류를 지배해 왔고, 현재도 장악하고 있다. 거꾸로 된 교육과 제반사 속에서 다시 거꾸로 서는 일. 그 예를 시인은 지옥과 죽음으로 들고 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조용필도 열창한바 있지만, 그 표범을 작가와 대비시킨 시인의 냉철함도 그에 못지않다. 지금까지의 사유를 반대로 세우는 일, 우리는 그것을 습관으로 가져도 좋다. 그 습관, 그러니까 관습의 한 예로, 미린다왕과 나가세나의 이름에 관한 문답을 들 수 있겠다. 인도의 수도승 나가세나를 만나러 간 미린다 왕은 첫 질문으로 그대의 이름이 나가세나냐? 하고 운을 뗐다. 그때 나는 나가세나가 아닙니다, 로 운을 맞춘 나가세냐 존자. 결론은, 나가세나라는 이름은 사람들이 만든 관습일 뿐입니다, 로 답이 내려진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나는 없는 이름이다. 내가 없으니 곧 신도 없는 것, 내가 없으니 천국과 지옥은 어디 있으며 신은 어디서 존재한단 말인가. 기독교의 무신론 유신론조차 불필요한 불교는 궁극에 가면, 제행무상 제법무아로 결론을 맺는다. 신앙적 경험을 전제하기도 하겠지만 뜻만으로도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말이 있다. 글쓰기를 전혀 하지 않았던 붓다 안에 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