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희곡 Ismail Ax
죽음의 희곡 Ismail Ax
“그는 깊게 눌러쓴 야구모자 아래의 선글라스 너머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23살 한국청년에 대한 교수의 표현은 사뭇 문학적이며 불길했다. 2007년 4월 16일 오전 7시에 시작된 버지니아공대의 참사는 문화충격으로 좌절된 소극적이며 내성적인 한 청년의 무모한 활극과 자살로 끝났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33명이라는 사망자의 숫자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던 33살의 나이를 연상케 한다. 자식은 부모의 꽃이다. 무고하게 죽어간 우리의 귀한 자식들을 애도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또한 꿈을 안고 미국에 건너가서 대륙을 전전하며, 뜨거운 스팀으로 제 몸을 지지듯이 세탁소에 매달려 15년간 고생했던 가해청년의 부모에게도 위로의 말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는 가끔 미소를 짓기도 했으며 출입구는 쇠사슬에 묶인 채 잠겨있었다.”라는 피해학생의 진술처럼 치밀하고 냉철하게 진행된 사건에 비하여, 청년의 사고는 두서를 가릴 수 없을 만큼 비논리적이고 독선적이었으며 자의적으로 해석된 위험한 신화에 젖어 있었다. 물론 모든 신화는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내려오는지도 모른다. 신은 늘 은유를 통한 신화의 암시로 출현하는 것이라서 종잡을 수 없다. 가해 학생은 자살했다. 명보안관이라도 죽음 건너의 진술서를 받아올 수는 없다. 우리는 조심스런 추측만 할 뿐이다. 이 사건은 엄청난 비극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인 가치관에 휘둘리며 고립되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마치 임무를 수행하듯이 “가끔 미소를 지으며” 움직였던 청년의 섬뜩하고 냉철한 모습에 각도를 맞추어 본다.
1992년 서울 변두리에 살던 8살의 아이는 늘 조용했다. 바로 위의 누나와 싸우거나 막무가내로 보채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그저 조용히 성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생활고에 못 이긴 부모가 빈주먹으로 태평양을 건넜을 때부터 아이의 가슴에 보이지 않는 분노의 씨앗이 터 잡기 시작했다. “지독한 외톨이”가 소리 없이 태어난 것이었다.
“다 자식을 위해서” 이민 간 것이라고 청년의 할아버지는 말했다. 지금도 이민가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자식 때문이라고 둘러댄다. 그러나 미국에 도착한 아이 앞에는 과연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가? 초등학교 2년생은 언어의 장벽에 부딪쳤을 것이고, 편하게 친구를 대할 수도 없었으며 심지어는 놀림도 받았을 것이다. 일에 매달린 부모는 매일 피곤한 얼굴이었을 테고, 부모의 안정되지 못한 형편 때문에 대륙의 서부와 동부를 전전하며 학교도 옮겨 다녔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다 어색한 곳, 말 붙일 사람도 없는 곳, 마음에 상처라도 안 받으려면 끊임없이 긴장하고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 곳, 때로는 인종차별에 시달려야 하는 곳, 그리고 주머니에 들어있는 달러는 늘 얄팍했기에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도 말없이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혹시 부모가 이런 고생이 다 “너 하나 때문”이라고 말했다면, 아이는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나에게 이득이기에 자꾸 나 때문이라고 하는가? 부모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당당한 모습으로 한국에도 나가보는 거다. 그러나 문화충격에 힘겨워했던 수줍은 소년에게 요구된 장담할 수 없는 미래는 폭력일 수도 있다. 타국에서 생존하기 위한 부모의 15년 동안에 자식은 적대감을 조용히 축적해가고 있었다. 사춘기를 고스란히 외로움과 방랑으로 보낸 그를 중학교 동창생은 이렇게 술회한다.
“말도 없고, 혼자 걸어가고 있었어요.”
대부분의 재미교포들은 기독교신자다. 청년의 이상한 조짐은 가족들이 먼저 알아챘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교회에 나가서 자식을 위해 기도했다. 청년이 NBC방송국에 보낸 편지는 마치 저주로 가득 찬 구약성서 같다. 미국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청년의 누나와 어머니는 학교 기숙사로 찾아와 자식을 잘 도와 달라고 학생들에게 부탁까지 했다. 겸손한 부모로서의 의례적인 인사였는지는 모르지만 청년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분노의 미로에 빠져 있었다. 사실 하루에 14~16시간씩 일에 시달리는 부모와 대화가 단절되었으리라는 예상은 충분히 가는 일이다. 소년시절 때에 밖에서 상처를 받고 집에 돌아와 봐야 치유해 줄 가족이 없었을 것이다. 또한 기댈만한 여자친구도 없었다. 고립무원의 사춘기를 지나고 어른이 되어서 대학교에 들어갔지만 고독은 더욱 심화되기만 했다.
언제부터 그가 분노하기 시작했을까?
분노의 씨앗은 미국에 건너온 초등학생 시절에 이미 뿌려졌을 것이다.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만의 보이지 않는 자존심이 문화충격에 상처 받고 시달리면서, 뒤로 움찔움찔 물러서다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벽에 등이 닿아버린 것이다. 청년은 저항하기 시작했다. 핸드폰 카메라를 책상 아래로 몰래 디밀어 여학생을 촬영하기도 했고, 기괴한 스토커 역할도 했지만 그다지 심한 편은 아니었다. 소심했던 청년에게는 대단한 모험으로 보인다. 2005년에 스토커로 고소를 당해서 경찰서에서 조사와 정신감정까지 받았다. 그러나 학교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최소한도 시한폭탄의 뇌관이 그가 제출한 창작과제물인 위험스런 에세이와, 신상명세서에 자기 이름 대신에 써낸 물음표(Question Mark)로 감지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시창작의 루시나 로이 교수는 24년간 글을 가르쳐왔다. 글이란 인간 심리의 움직임이다. 작품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다보면 작가의 심리가 파악된다. 고상한 언어와 내용을 지닌 작품의 실상이 폐허로 얼룩진 작가 본 모습의 반대투영이기도 하고, 욕지거리와 저열한 내용으로 점철된 작품이 고상한 인격의 뒤편일 수도 있다. 이는 작품과 작가의 괴리감인데 동쪽을 원하면서도 서쪽을 가리키기도 하고, 악마의 모습을 천사의 옷으로 가리기도 하는 심리적인 변태의 일종이다. 사건이 터지기 일년 전, 살인, 죽음, 복수와 같은 과격한 표현이 없었던 청년의 평이한 에세이에서 로이교수는 커다란 위협을 발견하고 말했다.
“그의 작문에는 명시적인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아래엔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봐온 사람 중에서 제일 심각한 외톨이였다.”
“물음표의 사나이(Question Mark Guy)"는 학생들이 붙여준 그의 별명이다. 신상명세서의 이름을 쓰는 칸에 청년은 큰 물음표를 찍었다. 이는 미로를 헤매던 자의 자기정체성의 상실이다. 홀로 수없이 질문을 던지고 홀로 대답하다가 더 이상 자기의 질문에 자기가 대답할 수 없는 벽에 부딪쳤기에 청년은 자기를 놓쳐버렸다. 바로 이 순간에 꽉꽉 눌렸던 스프링이 한꺼번에 튀어 오르듯이 감춰졌던 자존심이 분노로 돌변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청년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해왔고, 그것이 자신도 모르던 생존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자기를 수긍시킬 만한 해답을 못 찾은 분노가 평소 눈에 거슬리던 부자들에게 향했다. 물론 여기에는 가난했던 유소년시절의 경험이 한몫한다.
사건이 터지기 5주 전에 청년은 총기를 구입했다. 조심스런 추측이지만 이때는 살인을 위한 목적으로 총기를 구입했다고 판단되지 않는다. 소심증은 스스로를 싫증내기에 영웅을 표방한다. 강렬한 힘에 대한 갈망이 그로 하여금 총기를 만지게 했을 것이다. 정확히 상대방에게 총을 쏘아댄 솜씨는 평소에 그가 희열을 느끼며 총을 많이 쏴봤다는 증거다. 청년이 사건일 얼마 전에 제출한 희곡의 주제는 파멸이다. 리쳐드 맥비프(Richard McBeef)라는 희곡은 의붓아버지를 증오하던 나머지 살해하고, 미스터 브라운 스톤(Mr. Brown Stone)에서는 선생님에게 성희롱을 당한 학생이 기어이 선생님을 살해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두 작품에서는 존경받아야 할 대상이 살해된다는 점과, 살인을 정당화시키는 이유도 확실하다. 또 성적 갈등을 암시하는 대사도 보인다. 의붓아버지의 살해는 청년이 아버지에게 품었던 적개심의 표출이지만 차마 친아버지의 살해까지 가지 못하여 의붓아버지를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에게 성희롱을 일삼던 선생님의 살해도 역시 평소에 품었던 적대감의 표출로 짐작된다. 여과 없이 작품을 통해 드러낸 이런 폭력성은 청년이 평소에 구상하던 희곡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청년은 위의 희곡보다도 더욱 잔인하고 방대한 죽음의 희곡을 이미 구상하고 있지 않았을까,
준비된 죽음의 희곡 Ismail Ax
고독한 몽상가는 사건이 터지던 날 아침에 눈을 떴다. 침대에 누운 채 청년은 의문을 품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에밀리라는 여학생이 눈앞에 어른 거렸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마음이 끌렸지만 객관적으로 서로의 관계를 입증할 만한 아무것도 없었다. 또한 그녀에게 합리적으로 접근할 방법도 없었다. 밖으로 나온 청년은 뇌리에 달라붙은 그녀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 비록 상상속의 여자(Imaginary Girl)에만 익숙했지만, 오늘은 당장에 얼굴이라도 한 번 봐야 될 듯도 하다.
기숙사로 찾아간 청년이 그녀와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심한 모욕을 당했을 것이고, 무척 화가 나서 자기 방으로 돌아온 청년이 총을 꺼내 들었다. 사건이 터지기 이틀 전에 화가 난 청년을 봤다는 사람도 있다. 그때도 에밀리에게 스토커 노릇을 하다가 모욕을 당했을 수도 있다. 아침 7시에 총성이 들렸고 에밀리 뿐만 아니라 기숙사 사감이었던 라이언 클라크라는 학생도 살해되었다. 일단 여기까지는 우발적으로 보인다. 그저 분을 참지 못하여 쏴 죽였을 뿐이다. 그러나 각본은 이미 설정된 상태였고 출발할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온 청년은 이미 구상된 희곡의 클라이맥스를 향하여 치달렸다. 희곡의 제목은 Ismail Ax. 소심했던 청년은 너무도 큰일을 터뜨린 것에 스스로도 놀랐을 것이다. 그러기에 내친 김에 밟아버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분노를 더욱 강화시키고, 정당화시키려고 첫 범행을 저지른 후 두 시간 동안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불태웠다. 이제 때가 왔다고 선언하면서 마땅히 처형되어야 할 대상으로 부자들을 지목했다.
“네가 나로 하여금 이런 일을 저지르게 했어.(You caused me to do this.)”
이것이 청년의 팔뚝에 붉은 색으로 쓰여 있는 희곡 <이스마일의 도끼>의 주제다. 이스마일은 처형이나 복수를 뜻하는데, 우상을 모두 깨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세우는 파괴와 창조를 의미한다.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그 누구 때문에” 피의 제전을 벌인다. 처형이나 복수는 다 그럴만한 사정에 떠밀린 힘의 행사기에 조금도 양심을 자극하지 않는다.
경찰에서는 범행이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출입문을 쇠사슬로 엮어 자물쇠를 채워둔 행위는 다 희곡의 각본에 나와 있는 대로다. “심각하면서도 차분하고, 가끔 미소를 지으며” 헤이, 안녕.(Hi, How are you.)이라는 인사말까지 던지며 각본에 따라 처형을 시작했다. 사실 희곡을 구상하느냐고 수없이 머릿속에 그려보지 않고는 그렇게 침착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방 저 방을 번갈아 다니며 살인극을 벌인 청년의 행동도 차분했지만 심리상태도 무척 담담해 보인다.
청년은 버지니아공대 노리스홀 3층 공학관을 무대로 삼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서 희곡 <Ismail Ax>를 공연했다. 늘 비극으로 끝나는 그의 작품처럼 자신의 머리에 총을 대고 쏴 버렸다.
가끔 우리는 신의 알 수 없는 행동에 말을 잃는다. 버지니아공대의 참사도 역시 그렇다. 이번 사태에 보인 미국인의 태도는 무척 이성적이고 성숙해 보인다. 다인종국가가 겪는 인종갈등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은 즉흥적이며 감정적이다. 청와대에서는 조문단까지 구성하여 보내려고 했었다. 미국정부에서는 이를 거부했다. 자국의 영토 안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자국이 해결해야 한다는 명쾌한 입장이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가해 청년의 부모에게는 위로의 말을 보낸다.
2007. 4 이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