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여자 냄새
여자 냄새
여자의 몸이 활처럼 휘고
뜨겁게 젖은 뿌우연 살덩어리가
여자의 숲 아래로 고개를 내밀었다
파도의 검푸른 옷자락이 여자를 덮어주었다
여자는 지금 마악 낳은 아기를 배 위로 끌어올렸다
땀 젖은 저고리를 열고 물컹한 달을
넣은 다음 고름을 묶고 젖을 물렸다
기슭 아래 밤의 나무들이 그제야
푸르르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김혜순 [月出] 부분
김혜순님의 시에는 꽃밭같이 넓은 태반에 들러붙어 분홍핏물 초록핏물 쪽쪽 빠는 자식의 이미지와 블랙홀처럼 황폐한 모성의 육체적 이미지가 어우러져 있다. 순환적 생명력이 출렁거리는 모성, 굶주린 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기를 부풀려 뜯어 먹이는 모성적 육체는 진실하다. 진실한 것이야말로 빛이 난다. 모성이야말로 정신성이 깃드는 영원함이지 싶다.
지난 여름, 열기 잦아드는 흙더미 위로 왕개미 한 마리 왕래하는 걸 보았다. 가끔 손등으로 올라타기도 하고 팔뚝으로 기어오르기도 하며 자신을 확인해 주기를 바라는지, 발바닥 타전이라도 보내는 것인지, 스읍- 타액을 묻혀주면 녀석이 감동할까 하는 상상이 들었다. 달의 물컹한 감촉을 맛보는 느낌이었다. 인간처럼 동물 세계에서도 모성은 눈물겨운 파노라마다.
'어미가 젖먹이를 잊을지라도 신은 결코 너희를 잊지 않으리라'는 성구도 있지만, 젖먹이를 잊어버린다는 예를 들어 기억력을 논한다는 건, 왠지 이상하다. 자기 자식을 잊어버리는 어미가 어디 있을까. 오죽하면 잊고 싶다 말했을까. 고개를 돌린다고 해서 외면했다고 본다면 편협한 시각이다. 모성의 가능성은 그 이면과 숨겨진 부분에 더 많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문득 시튼의 늑대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얀 늑대. 그는 일인자였다. 추종자들을 거느린 지휘관이었다. 위계질서를 세우기 위해 자신을 앞지르는 다른 늑대들을 물어 죽이기도 하였고, 덫에 쉽게 걸려들지도 않았고, 독을 넣은 먹이를 잘 분별해 내었고, 도망칠 때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려고 바위 위로 달렸다. 지혜롭고 용맹스럽고 영민한 분별력을 가진 존재 앞에서 절로 순복하는 동물들의 세계. 때로는 인간들 보다 그들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듯 복종이나 사랑은 자발적인 끌림에서 나오는 것이니, 억지춘향으로 복종을 종용하는 건 잘못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얼마나 강요를 받는가. 강요된 복종 속에 살아가고 있는가. 지위에 종속된 명령과 복종으로 얼마나 기계화되어 가는가. 내가 이만큼 주었으니 너도 이만큼 줘야 해. 은근 조건적인 사랑들은 명명할 수 없는 가치들을 얼마만큼 오염시키고 있는가.
하얀 늑대에게 애첩이 생겼다. 언제부턴가 그의 발자국 앞에 자그만 발자국들이 쫄랑쫄랑 찍히기 시작하였다. 사냥꾼들의 눈에 낯선 발자국이 발각 되었고, 드디어 하얀 늑대를 잡으려면 그가 애지중지 여기는 보물을 뺏어야 한다고 사냥꾼들은 올무의 논리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하얀 늑대는 더 이상 일인자가 아니었다. 추종자들로는 도저히 대치될 수 없는 사랑, 유일한 그녀를 앞세우기 시작하면서 부터 그는 더 이상 야성으로 길들여진 짐승일 수 없었다. 지성을 능가한 초능력을 선사 받기라도 한 것일까. 제 시야권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어지럽히는 애첩에게 너그러움의 극치를 보인다. 그녀의 꽁무니만 보면 술렁거리는 본성을 주체할 길이 없다. 인간적인 그리고 동물적인 최선의 사랑이란 해체와 모순의 흔들림에서 출발하는 꿈의 춤사위인가. 최고의 행복은 최고의 죽음을 예감하며 햇발처럼 빛난다. 반짝 뜨다가 곧 사라질 무지개인 냥,
그녀는 사냥꾼에게 잡혀 철장에 갇히게 된다. 하얀 늑대는 밤마다 그녀를 향해 '우-우우' 울부짖는다. 분별력을 잃은 갈증의 포효. 처량하고 뜨거운 소리. '제발 내 사랑을 돌려 줘, 너 때문에 가슴이 이렇듯 찢어질 것 같아...' 울부짖었으리라. 그러나 '덫에 걸려든 너의 실책에 대해선 추호도 원망하지 않겠다, 다만 나의 수호가 미흡했을 뿐...' 그리 울부짖었으리라. 모성이나 부성 연인의 감성으로 버무려진 철저한 감수성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쉼 없이 울부짖던 어느 날 밤 쇠 냄새에 유난히 민감하여 칼질한 고기 미끼에는 입도 안 대던 하얀 늑대가 철장에 갇힌 그녀를 향하여 돌진을 한다. 쇠창살에 부딪히는 순간 자신의 권위와 살덩어리가 산산조각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모하게도 머리를 처박는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부재하는 모성을 그리워하며, 투신한다.
사랑의 원천이 모성이거나 부성이거나 원초적 본성이거나, 그 이면에 박힌 유일한 보석에 머리를 박고 자살을 꾀하는 것이거나, 굳이 따지지 않겠다 했다 나는,
2007 여름, 오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