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명저 산책]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몇 해 전 우연히 외신을 검색하다 흥미로운 뉴스를 접했다.
이집트 변호사 9명이 `천일야화` 출간을 금지해야 한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는 소식이었다. 변호사들은 한술 더 떠 출간을 허락한 관련 공무원들의 처벌까지 요구하고 나선 상태였다. 나는 갸우뚱했다. 이슬람 문학작품 중 가장 세계화된 작품을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모자랄 판에 출판금지를 요구했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아라비안나이트`라고 부르는 `천일야화`에 관한 이야기를 이 지점에서부터 풀어보고자 한다. 이집트 변호사들이 판금을 요구한 구체적인 이유는 "무슬림의 정서를 해치는 음란하고 부도덕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신드바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알라딘의 요술램프` 같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천일야화`에는 외설적으로 볼 수 있는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슬람권 문학작품에 이처럼 외설적인 내용이 포함될 수 있었을까.
오랜 세월 구전되거나 필사본으로 떠돌던 설화를 수많은 사람이 옮기는 과정에서 지나친 과장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가장 유력한 분석이다.

사실 `천일야화`를 세계에 널리 알린 사람들은 군인이나 탐험가로 아랍을 드나들던 서양인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무슬림의 엄격한 도덕성을 바탕에 깔고 이야기를 번역하고 구성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유명한 판본은 프랑스 학자 앙투안 갈랑이 1704년에 번역한 것과 영국 탐험가 리처드 버턴이 1885년에 출간한 것이 가장 유명하다. 두 판본을 비교해 보면 나중에 출간된 버턴의 것이 훨씬 외설적이다. 전문가들은 버턴의 판본이 갈랑의 번역본에 자신이 아랍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추가해 흥미 위주로 만든 것으로 본다. 이 때문에 대중적으로는 버턴의 판본이 더 유명하지만 원전을 따질 때는 갈랑의 판본을 거론하는 게 보통이다.
`천일야화`의 주인공은 세헤라자데다.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배경음악으로 유명해진 그 세헤라자데다. 러시아 작곡가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천일야화`에서 모티프를 얻어 이 관현악곡을 작곡했다.
12세기 페르시아제국의 왕 칼리프는 왕비의 부정을 목격하면서 여성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다. 복수심에 불탄 그는 매일 밤 자신과 동침한 처녀를 다음날 죽여버리는 식으로 복수를 한다.
이때 지혜로운 여인 세헤라자데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극적으로 변한다. 세헤라자데는 하룻밤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가지씩 들려주는 방법으로 죽음을 면한다. 이런 식으로 3년 가까이를 보낸 세헤라자데는 왕의 아이를 갖게 되고 제국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이 전설에서 세헤라자데는 구원자다. 그녀는 매일매일 처녀 한 명의 생명을 살렸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국가의 운명을 구한 것이다.
그 `1001`일 동안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 바로 `천일야화(千一夜話)`다. 하지만 `천일야화`에는 딱 떨어지게 1001개 이야기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야기는 하룻밤에 끝나지 않은 것도 있고, 나중에 생략된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천일야화`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건강하고 유쾌한 웃음에서부터 인간에 대한 연민, 그리고 아랍 대중이 꿈꾸는 자유와 정의 등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이야기의 무대도 매우 폭넓다. 이라크 바그다드와 바스라, 시리아 다마스쿠스 등이 자주 등장하고 중국과 인도를 무대로 한 이야기들도 있다.
`천일야화`는 중동과 아시아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준 최초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