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등의 가족들
외등의 가족들
“아휴, 밝아서 좋네.”
사십 후반으로 뵈는 서희엄마의 목소리와 함께 나는 눈을 반짝 떴다. 사방을 둘레둘레 살폈다. 앞으로는 검은 개울물이 흘렀고 둑을 따라서 다닥다닥 낮은 집들이 늘어섰다. 이 동네에서는 내 키가 제일 커 보였다. 근래에 들어서 자꾸 도둑놈이 설치자 동네의 사람들이 읍사무소에 진정서를 제출해서 방범등으로 달았는데, 전기공사하는 사람들이 기둥을 서희엄마 집의 추녀 끝에 못질해 박고는 그 위에 불쑥 나를 올려붙여 놓은 것이었다. 내가 태어난 후로 서희엄마는 밤이 되어도 안방에 불을 끄고 지냈다. 하나 뿐이 없는 자식인 서희가 원주로 유학을 떠나 중학교에 입학했기에 아이 공부 때문에 불을 환하게 켜고 지낼 일도 없었지만, 길거리로 난 서희네 안방 창문의 바로 위에서 내가 불을 밝혀주기 때문이었다. 한 등이라도 전기세가 절약되는 맛에 서희엄마는 기꺼이 나의 관리를 맡은 것이었다. 해가 지면 서희엄마가 스위치를 올려서 내 눈을 뜨게 했고 찬 기운 서늘한 아침이면 빨간 보자기에 싼 도시락을 들고 출근하는 서희아빠가 스위치를 내려서 내 눈을 감게 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서희엄마가 투덜대기 시작했다. 밤마다 환한 내 밑이 동네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먹고 옹기종기 몰려든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술래잡기나 구슬치기 또는 머리를 맞대고 조잘조잘 떠들면, 서희엄마는 속을 짓누르며 꾹꾹 참다가 기어이 창밖으로 목을 길게 빼고는 “빨리 집에 들어가 자빠져 자지 못해? 내 말이 안 들려?”라며 울화통을 터뜨렸다.
광부들이 모여 사는 이 동네는 낮보다 밤이 더 시끄러웠다. 내가 서 있는 골목의 모퉁이를 돌아서 저쪽으로 쪼르륵 늘어선 술집에서는 밤마다 싸움판이 벌어졌다. 이틀이 멀다하고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밖으로 뛰쳐나온 사람들이 멱살을 쥐고 옥신각신하다가 어느덧 환한 내 밑에 까지 밀려드는데, 이게 참 서희엄마의 골칫거리였던 것이다. 밖으로 나와서 한 손을 허리춤에 떡 얹고 다른 한 손으로 싸움질하는 사람들에게 삿대질해 대며 “이 양반들이 도대체... 여기가 무슨 굿당인 줄 알아? 정말 지겨워 죽겠네, 밤마다 살풀이를 하는 거야? 뭐야? 어서 다른 곳으로 가요.” 소리치지만 술 취한 사람들에게 통할 리가 없다. 그러면 안방에서 다리를 쭉 뻗고 텔레비전에 눈을 박던 서희아빠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어슬렁어슬렁 밖에 나오는데 대충은 싸움꾼들과 서로 아는 처지라서 야박하게 다른 곳으로 마구 밀어내지도 못한다. “이 사람아 감정이 있으면 말로 하지, 왜 이러는가? 이제 그만들 하게. 서로 대화를 해야지.”라며 끼어들게 되고, 이에 사람들은 서희아빠를 마치 재판관처럼 가운데 놓고 누가 먼저 성질을 건드렸느니, 누가 잘못했느니 언성을 한참 높이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서로가 제 풀에 겹고 기운도 빠지기에, 늘 그런 것처럼 형님이 어떻고 아우가 저떻고 하는 화해의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면 영락없이 서희아빠까지 가세한 술판이 또 창밑에서 벌어지니 서희엄마는 이래저래 불만을 터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때로는 화가 난 서희엄마가 아예 나를 켜놓지 않기도 했지만 이럴 때마다 동네 사람들은 골목이 어둡다고 성화를 부렸다. 어느 날 나를 켜놓지 않는 바람에 술 취한 사람이 개울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으니, 처음에는 환해서 좋다고 말하던 서희엄마에게 내가 점점 골칫덩어리로 변해간 것이었다.
서희네 집은 둑을 따라 일자로 지어졌는데 내가 선 바로 아래에는 서희네 내외가 한 방을 쓰고 그 옆에 부엌이 딸렸다. 부엌문을 나서면 대문으로 연결된 좁은 통로가 있고 그 맞은편으로 또 부엌문이 달렸는데 그 안을 들어서면 작은 방이 보였다. 쌀쌀한 늦가을에 이십대 후반으로 뵈는 청년이 그 방으로 이사 왔다. 키도 크고 우람한 덩치인 청년의 이름이 영배였는데, 과묵하고 그늘이 드려진 얼굴이었지만 첫눈에 도시에서 흘러들어온 티가 났다. 이 동네에서는 조금만 사려가 깊은 사람이라면 낯선 얼굴에게 왜 이런 산골짝의 탄광촌까지 흘러왔는가를 묻지 않는다. 오죽 하면 이런 곳에까지 떨어진 인생일까, 눈치로 교감을 나누는 정도였고, 뻑 하면 터지는 갱도매몰사고에 죽거나 병신이 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언젠가 서희아빠가 집안의 내력이나 여기 흘러들어온 사연을 영배에게 슬쩍 물어봤으나 그는 무표정하게 씩 웃고는 돌아서 버렸다.
영배도 이곳을 찾아든 다른 사람처럼 막장인생을 시작했다. 서희아빠는 자기가 영배를 취직 시켜줬다고 은근히 생색냈지만, 사실 탄광일이란 완력을 요하기에 힘이 장사인 영배와 한 조가 되면 자기가 편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배는 이사 오자마자 서희엄마의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었다. 술꾼들이 내 밑에까지 밀려와서 고성과 함께 싸움판을 벌이면 영배가 큰 덩치를 낮은 처마 아래의 그늘에서 불쑥 밖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싸움꾼 가운데에 떡 버티고 서서 근육으로 단단히 뭉친 우람한 어깨를 흔들었다. 그 위협적인 기세에 대부분의 술꾼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멀리 물러났다. 가끔 싸움깨나 한다는 술꾼이 영배에게 대들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어김없이 퍽퍽 소리가 두어 번 들린 후 솥뚜껑만한 영배의 손아귀에 멱살을 잡힌 술꾼이 멀리 내팽개쳐졌다.
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저녁이었다. 별안간 동네 전체가 술렁대기 시작했다. “어디야? 820항이야? 뭐라고? 810항에서 터졌다고?” 스위치를 올려서 나를 반짝 켜놓고 돌아서던 서희엄마가 동네사람들의 말에 기겁했다. 810항이라면 남편과 영배가 함께 일하는 지하 이천 미터까지 파내려간 갱도였다. 흙빛으로 안색이 변한 서희엄마는 저녁거리를 내팽겨 치고 탄광 쪽으로 뛰어갔다. 갱도매몰사고가 터졌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서 튀어나온 사람들도 그 뒤를 따라서 둑을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동네는 텅 비었고 아이들의 울음소리만 멀리서 간간이 들려왔다. 나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사람들이 올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에도 서희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대낮에도 불을 밝히며 서 있었다. 가끔 눈가에 핏발을 세운 광부의 아내들이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주려고 쏜살같이 왔다가 사라지는 모습만 보였다.
사일 째 되던 날 드디어 사람들이 동네에 들이닥쳤다. 서희 옆집의 억순엄마와 개울 건너편에 사는 철수엄마가 정신을 잃은 채 등에 업혀 들어왔고, 그 뒤를 따라서 몇 명의 여자들이 엉엉 울며 둑길을 걸었다. 810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동네에 줄초상이 난 게 분명했다. 나는 두리번대며 서희엄마를 찾았다. 밤이 되자 환한 내 밑에 천막이 쳐지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12명이 막장에 갇혔었는데 난데없는 지하수가 흘러들어서 그 중에 반이 죽탄에 묻혀 죽었다고 웅성댔다. 새카만 죽탄에 사람이 반죽 되어서 사망자를 아직 다 끌어내지 못했다고 했다. 다행히 영배와 서희아빠는 무사했다. 서희아빠는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지만 살았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초상을 치루는 동안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들은 줄곧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막장의 검은 사람을 담은 관이 뺨을 물어뜯는 골짜기 바람을 뚫고 먼 산으로 줄지어 떠날 때에 동네 전체가 울었다. 하얀 소복들이 설핏설핏 갈피를 못 잡았다. 얼마가 지나자 남편을 잃은 여자들이 하나 둘씩 아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그들이 살던 집에는 들이닥치는 탄차의 굉음처럼 또 다른 검은 얼굴들이 들어섰다.
갱도에 묻혔을 때 서희아빠는 영배가 아니면 죽었을지도 몰랐다. 지하수가 몰려들 때 서희아빠는 다리를 다쳐서 일어서지 못했다. 제일 먼저 익사할 지경이었다. 이에 영배는 서희아빠를 등에 업고 천정을 가로지른 갱목에 매달려 지냈는데, 혹시 등에 업혀 졸다가 목을 감고 있는 팔이 풀어질까봐 서희아빠의 두 손목을 자기의 목 앞으로 돌려서 꽁꽁 묶었다. 이틀이 지나자 가슴까지 차오른 물속에서 버티던 광부들이 탈진현상을 보이고 삼일 째에는 저산소증과 저체온증에 견디지 못해 하나 둘씩 의식을 잃어갔다. 공포감을 떨치려고 일부러 벽을 더듬다 보면 물컹하고 숨진 사람의 몸이 손에 걸리기도 했다. 영배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등에 업힌 서희아빠를 자주 흔들었다. 졸지 마세요, 잠들면 죽어요. 하며 일부러 큰소리를 지르고 허벅지를 꼬집었다. 응응, 하는 서희아빠의 조는 목소리가 가냘픈 숨결로 목 언저리를 감돌았다. 그렇게 사흘간 버텨서 살아났으니 서희아빠는 영배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한 핏줄처럼 여겼다.
영배가 이곳에 온지도 어언 일 년 가까이 되었다. 그 동안에도 영배의 그늘진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낙엽이 개울에 날리던 밤이었다. 우두커니 불 밝히고 서 있는데 멀리서 한 쌍의 남녀가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영배와 이십 대 중반의 여자였다. 여자는 멈칫대며 쫓아오지 않으려 했지만 영배가 여자의 팔목을 잡아끄는 것 같았다. 자그마한 체구와 곱상한 얼굴의 여자는 내 밑에까지 끌려오더니, 영배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창문을 빨개진 얼굴로 쳐다봤다. “깜찍아, 저기가 내가 사는 방이야.” 하고 영배가 여자의 얼굴에 대고 말하자 여자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영배는 여자를 창문 밑으로 바짝 끌고 가더니 자기 손바닥으로 창문을 텅텅 두드렸다. 그리고 또 여자의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여기에 찾아오면 이렇게 창문을 두드려. 알았지?” 했다. 여자의 얼굴이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수줍은 몸짓으로 손목을 슬그머니 빼면서 돌아가겠다는 몸짓을 보였다. 그러자 영배는 은근히 여자를 풀어주는 척하다가 별안간 콱 끌어안고는 입을 맞췄다. 깜짝 놀란 여자가 얼른 밀치려했지만 영배의 커다란 덩치 안으로 조그만 몸이 그만 쏙 딸려들고 말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강렬하게 키스를 퍼붓던 영배가 미안한 표정으로 여자를 풀어놓고 내려다봤다. 순간 품에서 풀려난 여자의 몸이 휘청대는 것 같았다. 손바닥으로 입술을 가리더니 두어 발자국 뒷걸음질치며 “어더더더, 어더더더” 했다. 그리고 얼른 돌아서서 둑길을 마구 뛰어 저쪽 골목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로부터 보름 정도 지난 밤이었다. 영배와 깜찍이는 환한 내 밑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서희네 내외는 창가에 귀를 세우고 있었지만, 여자가 벙어리였기에 영배의 음성만 들려왔다. 깜찍이가 퍼런색이 감도는 김치에 지글지글 기름이 떨어지는 삼겹살을 얹었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집어서 앞으로 쑥 내밀자 영배는 큰 입을 쩍 벌리더니 날름 받아먹고 히히 웃었다. 그리고 소주를 한 잔 휘딱 들이켰다. 사실 이때 영배의 웃는 얼굴을 나는 처음 봤다. 이번에는 영배가 삼겹살에 김치를 감아서 깜찍이의 입 속에 넣어주었다. 환해진 영배의 표정이 어린아이 같았다. 깜찍이는 연신 영배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렇게 한참 지나자 취기가 오른 영배의 목소리가 점점 침중해지기 시작했다. 입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깜찍이의 표정도 까막까막 내려앉았다.
“우리 아버지는 깡패였어. 박정희정권 때에 붙잡혀서 국토재건대로 끌려간 게 마지막이었데, 그 후로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라. 어머니는 여동생하고 나를 삼촌집에 맡겨두고 술장사를 하다가 누구하고 붙어서 없어졌다더군. 그게 내 부모의 전부야. 째지게 가난한 삼촌집에서 구박받으며 눈칫밥 먹는 것도 힘들더라고. 그래서 여동생하고 길바닥에 나선 거야. 남들 학교 다닐 때에 나는 구두 닦았고, 여동생은 껌을 팔았지, 씨팔, 그러다가 나는 주먹으로 엮이고 여동생은 몸 파는 데로 흐른 거야.”
영배의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귀머거리인 깜찍이었지만 마치 다 알아듣고 있다는 듯이 말이 끝날 때마다 눈썹을 찡긋거렸다.
“어렸을 때부터 감방에 들락거렸어. 빵에서 나와 봐야 또 그 짓이고, 정말 지겹더군. 여기 오기 전에는 종로에서 칼질 한 번 잘못한 걸로 또 들어가서 세 바퀴 반, 그러니깐 삼년 반을 돌고 나왔어. 그리고 588에 있는 동생을 찾아갔지. 나 때문에 고생 무진장 했어. 번지수 없는 새끼들 밑이나 닦아준 치사한 돈을 벌어서 변호사 비용과 옥바라지에 많이 날렸지. 정말 서럽게 울더군. 제발 빵에 갈 짓을 그만두라고 청량리역 광장에서 엉엉 통사정을 하더라고. 그래서 곧바로 소주 한 병 꿰차고 야간열차에 올라탄 거야. 내가 죽어도 불쌍한 동생년의 소원 하나 못 들어주겠냐고.”
깜찍이는 다 알아 듣고 있음이 분명했다. 눈물이 번질대는 영배의 뺨을 손바닥으로 문질러주며 꼭 다문 입술로 뺨을 실룩댔다.
“탄가루 뒤덮인 이 동네에 오니깐 다들 넌더리난다고 떠나려는 생각뿐이야. 나는 제대로 마음을 잡자고 뛰어든 동네인데 다들 건들 거려. 허기야 매일 무덤 속에서 꿈꾸듯 막장을 파고들다가 거기에 뼈 묻으면 뭔 낙이 있겠어? 그런데 나는 갈 데가 없어. 좆같아, 정말 세상이 왜 이런지 모르겠어. 이 새카만 공동묘지촌에서 삽질이나 하다가 뒈지면 그게 인생의 전부인 모양이야.”
영배는 흐르는 눈물도 의식치 못하는 것 같았다. 어느덧 영배의 무릎에 바짝 몸을 붙여온 깜찍이가 두 손으로 영배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그 위로 깜찍이의 눈물이 뚝 떨어졌다. 잠시 후에 몸을 휘청 일으킨 영배가 깜찍이의 어깨를 팔로 감싸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나는 젊은 남녀의 행복을 위하여 힘껏 불을 밝혔다. 서희네 내외는 귀를 바짝 세우고 창가에 앉아서 엿듣다가, 문 열리는 소리에 얼른 이불 속으로 기어들었다. 조금 있다가 서희엄마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어서 자요. 왜 자꾸 몸을 붙여오고 그래요?”
“응? 이쪽으로 돌아누워 봐. 응?”
“아이 참, 정말. 홍~”
이 동네는 사계절 중에서 겨울 색깔이 제일 또렷했다. 함박눈이 밤새 내린 아침이면 모처럼의 제 색깔에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출근하는 광부들의 하얀 입김 사이로 파란 하늘과 하얀 산천이 원색으로 빛났다. 문밖에 뽀얗게 타버린 구공탄을 내놓고 돌아서던 깜찍이는 잠깐 허리를 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세상을 다 떠먹을 만큼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멀뚱멀뚱 눈뜨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얼른 다가와서 스위치를 내렸다. 내가 눈 감으면 미안한 듯 빙긋 웃었다. 빨간 보자기에 싼 도시락을 들고 나오던 영배가 뒤에서 깜찍이를 슬쩍 안았다. 허리를 뒤틀며 몸을 뺀 깜찍이가 영배를 올려다보고 빨개진 얼굴로 또 웃었다. 서희아빠가 어험, 헛기침을 하며 문밖으로 몸을 내밀고 곧이어 드러낸 서희엄마의 부스스한 얼굴이다. 성큼성큼 서희아빠가 앞장을 섰다. 영배는 큰 덩치를 꺼떡이며 그 뒤를 따르다가 구부러진 둑길에서 힐긋 뒤돌아본다. 처음 잠자리를 함께 하던 날, 영배의 고백에 어깨를 바들바들 떨며 입술만 삐죽삐죽 대다가, 몇 마디 어더더더 꺽꺽 하고는 눈두덩이 퉁퉁 붓도록 밤새 울먹이던 깜찍이었다. 손을 폈다 쥐면 한 손아귀 안에 다 들어올 것만 같은 자그마한 체구와, 무사히 잘 다녀오라고 손을 살짝 들었다 내리는 그 깜찍한 모습에 영배는 또 이를 씩 드러내며 하얀 입김으로 웃었다.
김치만한 반찬이 또 있을까, 하늘과 맞닿은 언덕에서 토실토실 돋아 오른 속이 꽉꽉 들어찬 배추를 뽑아다가 왕소금을 덥석덥석 뿌려 저리고, 채로 썩썩 썰어낸 무의 속살과 향기 짙은 각종 양념, 그리고 잘 삭은 젓갈과 동태를 다져 넣은 다음에 고춧가루를 골고루 뿌려 같이 벅벅 버무리면, 뒤꼍에서 장독을 묻는 남정네의 손길이 바쁘고 배추국 끓는 냄새가 다정하다. 마무리가 끝나면 알록달록 고춧가루 겉돌아 친 배추가 붉은 치마를 두른 각시 같다. 차곡차곡 넣고 꼭꼭 눌러 장독에 담은 다음에 스르렁 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을 덮으면, 겨울을 앞두고 허리를 펴는 아낙네의 근심이 하나 줄어든다. 설익으면 처녀 같은 풋맛에, 잘 익으면 확 피어난 새댁 같은 감칠맛에, 시면 중년아낙의 그윽한 맛에, 군내가 나면 노파의 지혜와 같은 또 다른 맛으로, 세 끼니 꼬박꼬박 썰어서 먹고, 쭉쭉 찢어서 먹고, 참기름 두어 방울 떨어뜨려 쪄서 먹고, 국 끓여 먹고, 찌개로 먹고, 빈대떡으로 먹고, 그러다가 명절 때는 통통한 만두속으로 먹는다.
산골의 겨울밤은 한 발 일찍 다가온다. 저녁에 서희엄마가 스위치를 올려서 나를 밝히면 돼지고기를 뭉텅뭉텅 썰어 넣은 김치찌개 냄새가 문전을 감돈다. 지붕 아래는 서희엄마의 속 좋은 웃음소리가 크고, 어더더더 어더더더 하는 깜찍이의 목소리가 명랑하다. 의붓아버지와 또 씨와 배가 다른 형제들 틈에서 자란 깜찍이를 서희엄마는 보듬고 귀여워했다. 작년 가을, 영배와 살림을 차렸을 때 태백에 사는 깜찍이 엄마가 서먹서먹한 눈길과 황망한 발걸음으로 잠깐 다녀갔다. 그것을 본 서희엄마는 깜찍이가 얼마나 외롭게 자랐는가를 눈치 챘다. 사실 깜찍이는 수화(手話)조차도 배우지 못했다. 그저 내키는 대로 손짓하고 표정을 짓고 몸짓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상대방의 안색과 입술을 보고 무슨 말인가를 귀신같이 알아채기도 했다. 잠시 후에 어두컴컴한 저 끝에서 또 하나의 똘똘 뭉친 어둠이 나타났다. 영배와 서희아빠였다. 드러난 하얀 이가 마치 옆으로 누운 초승달 같았다. 두 가족이 둘러앉아서 후후 불어가며 입에 떠 넣는 밥과 가난한 광부에게도 한없이 공평하기만 한 김치, 또 얼큰한 김치찌개, 그리고 옆에 구색을 맞춘 동치미가 반달로 둥둥 떠돈다. 그렇게 겨울 내내 파고든 김장독이 바닥났을 때에 이 동네의 봄은 그 밑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1980년 4월, 치맛자락처럼 펄럭대는 봄바람에 실린 탄가루가 떠올라 돌아치는 거리에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밤이면 지나던 광부들이 내 밑에서 거친 말투를 주고받았고, 검은 색만큼 암울했던 그들의 표정과 발걸음에 야릇한 분노가 출렁댔다. 번뜩이는 첩자의 눈초리로 광부가 술에 취해 떠드는 이야기나 행적을 낱낱이 감시하던, 회사의 암행독찰대를 광부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뭐? 노조지부장이 제 멋대로 임금협상을 끝냈단 말이야?” 누군가 던진 말에 번들대던 다른 광부의 눈초리가 파랗게 변했다. “씨팔, 18만원도 안 되는 봉급으로 어떻게 살라고......” 흐려지는 말꼬리에 검은 칼이 드리워졌다. 구사택과 신사택에 몰려 사는 광부와 그의 가족들, 그 닭장도 못 얻어서 월세방을 들락대는 동네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다 똑같다. 회사나 정부나 공화당이나 광산노련이나 지금의 노조집행부나 다를 게 없다. 사기꾼 지부장과 그 부하들을 몰아내고 우리 손으로 다시 노조집행부를 구성해야 한다. 회사에 빌붙어서 노동자에게 거꾸로 총구를 들이대는 지부장을 없애야 한다.” 높아져가는 욕설과 사나워지기 시작한 사람들의 눈빛이 다이너마이트 뭉치를 향해 빠직빠직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별안간 동네가 텅 비어버렸다. 멀리서 “ㅇㅇ을 석방하라. ㅇㅇㅇ은 사퇴하라.”는 함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다음날 내 아래의 거뭇거뭇한 벽에 네모진 벽보가 붙었다. “1980년 4월 21에 예정된 집회를 일체 불허한다.”
전국은 작년 가을에 박정희대통령이 시해를 당한 후부터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사건을 주도했던 중앙정보부장과 그 부하들이 전격적으로 처형되었고,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그 수하들이 줄줄이 군복을 벗었고, 계엄령이 떨어졌으며 거리에는 총을 든 군인과 경찰들이 깔렸다. 또한 산업전사로 마구 내몰리던 노동자들이 극도의 생활고로 술렁댔다. 대학생들은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한국에 봄이 왔다고 거리로 쏟아졌다. 정치권은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라는 세 명의 김씨로 패가 갈려 촉각을 곤두세웠다. 군부는 혀를 날름대며 이들 모두를 노렸다. 마치 암흑의 막장에서 갱도가 우르릉 쾅쾅 지축을 흔들며 무너져 내리기 직전과 같았다. 벽보 앞에 모여든 광부들의 눈에 핏발이 서렸다. 자기들을 대변하던 ㅇㅇ을 잡아넣고 오히려 사기꾼인 ㅇㅇㅇ지부장과 간부들을 보호하는 경찰이 아닌가,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역시 모두가 다 똑같다.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이 뭔데 그것 때문에 집회를 못한단 말이야? 군인들도 다 똑같다. 작년에는 탄이 실린 광차의 무게와 갱목의 등급을 매기던 사람이 양심선언을 했다가 당한 꼴을 봤지? 몇 년간 무게를 속이고 갱목의 등급을 낮춰서 회사가 수억 원을 갈취했다고 정부에 진정서를 냈다가 거꾸로 징역을 살았어. 그것을 봐라.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아무리 우리가 떠들어도 개 짖는 소리다. 어제는 분명히 지서장이 집회를 허가해 준다고 각서까지 써줬는데 오늘 이 벽보를 봐라. 경찰서장이 지금 어디 있는 줄 알아? 광업소 휴양소에서 팔자 편하게 늘어져 있어. 경찰이고 뭐고 다 똑같단 말이야.”
벽보를 확 뜯어내고 불끈 주먹을 쥔 사람들이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이 점점 거칠고 높아져갔다. 다음날에도 그 함성은 하루 종일 들려왔다. 밤이 되자 사람들이 별안간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뭐? 경찰이 찝차로 사람을 깔았다구? 사람이 바퀴에 깔려 죽었어? 에잇, 씨팔, 다 갈아 엎어버려. 이제는 경찰이고 나발이고 다 죽여 버려. 그 새끼들도 다 똑같아.” 분노한 사람들 모두가 지서를 향해 달려갔다. 함성이 지서 쪽에서 마구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서에 난입한 사람들이 기물을 부수고 그곳을 장악한 모양이었다. 새마을 사택에 높이 매달린 마이크에서 “임금인상 40% 쟁취하자. 모든 노동자들은 빠짐없이 나와라.”하는 소리가 밤공기를 흔들었다. 얼마가 지나자 컴컴한 개울 건너편 둑을 누가 막 뛰어가고 그 뒤를 성난 사람들이 좇고 있었다. 도망치던 사람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자 몰려온 사람들이 짓밟고 몽둥이로 내리쳤다. 아이쿠, 아이쿠, 비명을 지르던 사람이 두 손을 위로 올려 싹싹 빌며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너 새끼야, 경찰지랄이 그렇게 좋아?” 하며 누가 몽둥이로 머리를 내려치려는 순간, 옆에 있던 사람이 얼른 가로막았다. “쫄따구가 뭔 죄가 있어? 이제 그만 해. 다 윗대가리 짓이지.” 그리고 서로 수군수군 대더니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고 뒤돌아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다. 큰길에선 계속 “사람답게 살고 싶다. 임금과 상여금을 인상하라. 어용노조는 물러가라. 노조지부장은 사퇴하라.”는 구호가 외쳐졌다.
날이 밝자 사태는 더욱 험악해져 갔다. 당일신문에 난 머리기사를 본 사람들이 길길이 날뛰었다. “폭력이 휩쓴 공포의 무법천지”, “곡괭이와 도끼로 무장한 파괴와 방화”, “부녀자들도 흉기 들고 가세”. 기사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또 똑같다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신문기자도 신문사도 다 똑같다. 우리가 막장에서 얼마나 착취를 당하고 사람 취급을 못 받았는데 겨우 이런 기사를 내보내다니, 우리를 무장폭도로 몰아버리다니, 진실이 도대체 뭔지나 알고 기사를 쓴 거야? 세상에 믿을 놈이 하나도 없다고 분노했다. 오전에 두문재를 넘어 총으로 무장한 수백 명의 경찰관이 투입되었다. 험악한 그들의 기세에 지서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읍내를 벗어나 철길 너머로 멀어져가더니, 부녀자들도 합세한 수천 명 광부의 대열이 철길과 좁은 다리를 가운데 두고 경찰과 대치했다. 잠시 후에 탕탕 하는 총성과 함께 펑펑 최루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의 진압작전이 개시된 것이 분명했다. 함성소리가 한 순간 멈칫했다. 그러다가 와 하고 한꺼번에 터지더니 갱목이 언덕에서 구르고 돌멩이가 일제히 공중을 뒤덮었다. 성난 광부들의 맹렬한 돌진에 진압경찰의 대열이 와르르 무너졌다. 수백 명의 경찰관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시 함성이 읍내쪽으로 가까이 밀려오자 저쪽의 골목과 둑길로 황급히 도망치는 경찰관의 모습이 보였다. 핏발이 선 광부들이 다시 지서와 광업사무소, 그리고 읍내를 장악했다. 그들은 경찰과 노조지부장, 그리고 노조간부를 색출하기 시작했다. 공화당지부의 간부도 끌려나왔다. 경찰서장은 군중에게 얻어맞아 갈비뼈가 부러졌고, 경찰관 한 명이 갱목에 깔려 죽었으며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때 서희아빠는 집에 틀어박혀 꼼짝도 안 했다. 5. 16 구테타를 군대에서 직접 경험하고 이 저주받은 땅에서 파란의 인생을 겪어온 서희아빠는 현정국이 꼭 삼십 년 전 같다고 느꼈다. 밖으로 뛰어나가 대열에 합류하려는 영배를 엄격한 눈초리로 막았다. 그러나 찾아온 동료들을 어쩌지 못하여 영배는 같이 대열에 끼곤 했다. 광분하는 사람들의 질서를 잡아야겠기에 영배는 자체적으로 움직이는 치안유지에 여념이 없었다. 증산 쪽과 고한 쪽으로 통하는 길이 경찰과 군인에 의해 봉쇄되었고 열차의 운행도 중단된 읍은 고립무원이었다. 전두환 계엄사령관이 무장헬기를 동원하여 모두를 초토화 시키고 공수부대도 투입한다는 소문이 흉흉했다. 시간이 갈수록 성난 군중의 표정이 점점 두려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힘차게 구호를 외쳤지만 분명히 계엄령하의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었다. 싹쓸이 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떠도는 가운데 그들은 정부와 협상을 추진했다. 정부 측은 의외로 순순했다. 이쪽에서 제시한 조건을 거의 다 들어준다고 했다.
“임금을 30% 인상하고 노조지부장도 사퇴시키고, 주동자들도 잡아들이지 않는다고 분명히 협상했어.”
“그것을 어떻게 믿어?”
불 밝힌 내 아래에서 몇 명의 광부들이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협상안에 대하여 회의를 품는 사람은 영배였다. 그저 남들을 따라다니고 뒤에서 소리나 질러준 영배였지만 힘도 세고 덩치도 크기에 묘한 카리스마를 그는 풍겼다. 과묵하기만 했던 영배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솔낏 고개를 돌렸다.
“이제 엎질러진 물이라구. 주동했던 사람들은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해. 정부야 급하니깐 여기서 제시하는 대로 다 들어준다고 하지만, 그 말을 믿어? 두고 보라고. 그들이 여기를 접수하면 곡소리 날 걸.” 동료들은 영배의 말에 반신반의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군경에 의해 사방이 포위된 이 골짜기를 무슨 수로 탈출한단 말인가,
드디어 날이 밝자 중무장한 군인과 경찰들이 읍내에 들이닥쳤다. 두세 명씩 짝을 진 군인들이 총을 번뜩이며 길에 깔렸고 집회를 풀고 집으로 돌아간 광부들은 조용했다. 이상하게 기분 나쁜 분위기가 검게 엉켜들며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밤늦게 검은 지프차가 둑길에 나타나더니 바로 내 밑으로 천천히 다가와서 소리 없이 섰다. 총을 든 군인 두 명과 사복을 한 건장한 남자가 내렸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서희엄마가 문을 열자 안으로 쑥 들어선 남자는 대뜸 영배의 방문을 활짝 열어 제켰다.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잠시 조사할 것이 있으니 동행합시다.” 깜짝 놀란 영배와 깜찍이의 눈에 남자의 뒤에선 군인이 들이댄 총구가 보였다. “조용히 나오슈. 다른 사람들 모두 잠자니깐.”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나온 영배는 차안으로 끌려들어갔다. 소리 없이 지프차가 움직이며 둑 저 끝으로 사라졌다. 깊은 밤이면 검은색 지프차가 다니며 사람을 잡아간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찍 경찰서로 간 서희아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찰서 부근에도 접근하지 못하게 군인들이 막았다. 하루 종일 수소문하여 평소에 친했던 김형사를 겨우 밖에서 만났다. 김형사는 허리를 쿡 찌르며 모기만한 목소리로, 지금 주동자들 체포작전을 벌이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평소에 사람 좋기로 소문난 김형사였지만 그의 표정이 무척 어둡고 음울했다. 남의 눈에 뛸까봐 골목 안으로 조용히 서희아빠를 잡아끌더니 침을 꼴깍 삼켰다.
“지금 경찰서 안에는 보안사에서 나온 군인들 투성이에요. 밤마다 주동자로 찍힌 사람을 사냥 해다가 주리를 틀고 있는데 정말 아비규환입니다. 형사질 십 오년을 한 나도 본서에 들어가기가 무서워요. 사람 두드려 패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엄청난데 지금 수십 명이 붙들려 왔고 여자도 끼어있어요. 영배 하나가 문제가 아니에요. 형님은 어서 집에 돌아가서 조용히 있으세요. 괜히 돌아다니다가 사냥당하지 말고요.”
서희엄마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자꾸 짜증을 냈다. 밥 먹을 생각도 안하고 방구석에 멍청히 앉았거나 밖에 나가 우두커니 서서 지프차가 사라진 둑 끝을 바라보는 깜찍이를 대할 때마다, “쯧쯧 벙어리 냉가슴이라더니 얼마나 속이 답답할까,”하고 혀를 찼다. 며칠 후에 김형사가 서희아빠를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바짝 다가앉은 서희네 내외와 깜찍이에게 침울한 소식을 전했다. 오늘 새벽에 영배가 다른 곳으로 실려 갔다는 말이었다. 서희아빠가 재판소로 갔냐고 묻자 김형사는 도리질 쳤다.
“삼청교육대라는 곳이래요. 그곳이 뭐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끌려가면 성해서 나오지 못한다는 소문이에요. 겉으로야 교육이 어쩌구 하지만 어디 그런가요? 또 언제 나올지 아무도 몰라요. 면회도 갈 수가 없어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깜찍이의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서희엄마는 깜찍이의 등에 손을 올려 도닥이며 물었다.
“도대체 영배가 무슨 죄가 있어요? 사람도 안 패고 물건도 안 부셨어요. 남들 눈 때문에 할 수 없이 뒤따라 다니기는 했어도 오히려 동네 질서를 잡는다고 고생만 했는데,”
김형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무슨 죄를 따져서 잡아 가나요? 군인들 세상이에요. 그들은 그런 거 안 따져요. 그냥 찍히면 끝장나는 거예요.”
깜찍이의 붉어진 눈자위 아래로 눈물이 흘렀다. 서희엄마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깜찍이의 번질번질한 눈과 뺨을 손바닥으로 훔쳤다. 그리고 품에 꼭 안더니 물었다.
“이 애가 지금 임신 중이에요. 말도 못하는 애가 얼마나 속이 타겠어요? 어떻게 해 보는 방법이 없어요?”
김형사는 입을 다문 채 일어섰다. 큰길까지 서희아빠가 배웅하며 단 둘이 걷자 김형사는 신음을 토하듯 나직한 목소리로 새로운 사실을 하나 털어놓았다.
“영배가 아주 지독한 새끼를 만났어요. 칸을 막아놓은 고문실이랄까, 그런 곳에서 무진장 당했죠. 하지도 않은 주동자질을 자백하라고 족쳐서 완전히 걸레가 되었어요. 영배는 아니라고 버텼던 모양인데, 그렇다고 안 엮이나요? 기어이 주동자로 엮이고 또 독종이라는 딱지까지 붙어버린 거죠. 더구나 영배는 폭력전과가 많더라고요. 그게 불리하게 작용한 거죠. 삼청교육대에서 성하게 살아오기만 하면 다행이랄까, 하여튼 지금 분위기로는 그래요.”
깜찍이는 내가 비춘 불빛 안을 밤마다 떠도는 종이배였다. 하룻밤에도 서너 번씩 밖에서 서성댔다. 천천히 내 불빛이 끝나는 지점까지 걸어가서는 먼 어둠에 대고 한참 기웃거리다가, 되돌아와서 반대편으로 걸어 올라간다. 그리고 또 불빛의 끝에서 그림자처럼 어른대다가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아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곤 했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며 다시 걸어 내려오면 썩 대문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하고 또 서성대다가 다시 한번 반대편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낮에도 자주 대문 앞의 둑 가장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가끔 끼욱끼욱 숨죽인 목소리가 들렸다. 그럴 때면 여지없이 깜찍이의 가느다란 어깨가 떨렸다. 강철에 짓눌린 5월은 침울해져만 갔다.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었으며 광주에서 군인들이 시민들을 마구 학살했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아무런 조직도 없이 그저 배고팠기에 터졌던 광부들의 분노가 군홧발에 떠밀려 검은 표정 뒤로 숨어들었다. 누구도 세상을 말하려 들지 않았고, 배고프다고 울지 않았다. 밤이면 환한 빛이 맴도는 내 밑을 스치던 사람들이 힐끗 고개를 들어서 나를 쳐다보곤 했다. 각질로 굳어진 그 표정 뒤에 겨우 숨쉬는 생존만이 가냘프게 엎드려 있었다. 얼마 후부터 깜찍이는 고랭지 채소밭으로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영배가 없이 먹고 사는 것도 문제였지만 태어날 아기에 대한 경제적인 대비였고, 무엇보다도 영배가 떠난 마음자리가 너무 컸기에 깜찍이를 잡아주려는 서희엄마의 배려였다. 그러나 따가운 햇살과 타들어가기만 하는 냉가슴에 깜찍이의 얼굴도 광부처럼 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자 깜찍이는 배만 불쑥 나온 검은 종이배처럼 뒤뚱거렸다. 여전히 밤이면 내 밑을 맴돌았고 숨이 턱에 차는지 훅훅 소리를 내기도 했다.
10월,
깜찍이는 문 앞에 나와 있었다. 김장배추를 출하하는 밭에서 하루 종일 시달렸지만 잠이 쉽게 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솟아오른 배 때문에 오랫동안 쪼그리고 앉아 있을 수도 없기에 일어섰다 앉았다 하며 서성댔다. 문득 내 눈에 낯익은 몸짓이 저 끝에서 보였다. 나는 영배다, 영배다, 하고 소리쳤다.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영배는 약간 비척비척 대는 걸음걸이였다. 아마 직감의 끈이 깜찍이를 끌어당겼을 것이다. 별안간 깜찍이의 얼굴이 옆으로 휙 돌더니 영배에게 딱 꽂혔다. 어버버버, 어버버버, 깜찍이는 입을 딱 벌린 채 발을 실렁실렁 댔다. 좀처럼 앞으로 나갈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꺽꺽 소리를 내며 뒤뚱뒤뚱 영배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영배의 허리를 감싸 안고는 어버버버, 어버버버, 손짓하며 뭐라고 자꾸 외쳤다. 비명 같은 깜찍이의 목소리에 서희엄마가 깜짝 놀라서 손살같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영배가 눈에 띄자 안에다가 대고 서희아빠를 불러댔다. 서희엄마가 달려가자 영배는 그 자리에 푹 주저앉아서 마주 쪼그리고 앉는 깜찍이의 뺨을 마구 더듬고 있었다. 서희아빠도 달려왔다.
“아이구, 자네가 살아왔구먼. 깜찍이가 얼마나 애태웠는데, 이렇게 왔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다가오는 영배를 나는 갸웃 유심히 살폈다. 영배의 한쪽 어깨가 약간 무너져 내린 듯 기울었고 또렷했던 그의 눈동자가 가끔 흔들렸다. 발걸음도 전처럼 또박또박하지 않았다. 집안이 한참 들썩대더니 안방에 술상 겸 저녁이 차려진 모양이었다. 서희아빠가 그 동안의 일을 몇 번 캐물었지만 영배는 술만 들이켰고 가끔 맥 빠진 웃음만 보였다. 일찍 영배와 깜찍이를 제 방에 돌려보낸 후에 서희아빠가 중얼거렸다.
“영배가 뭔가 이상해졌어. 골병도 들고 정신이 들락날락하는 거 같아.”
이런 서희아빠의 염려가 그날 밤에 터지고 말았다. 술에 취해 금방 잠들었던 영배가 새벽에 벌떡 일어나 앉더니 별안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넷. 알겠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서희네 내외가 잠자다가 놀라 깨어 달려가니 영배는 혼이 나간 표정으로 허공에 대고 소리치고 있었다.
“넷, 오십 번 복창하겠습니다. 나는 인간이 아니닷. 하낫, 나는 인간이 아니닷, 둘. 나는 인간이 아니닷, 셋. 나는 인간이 아니닷. 넷...”
그러다가 꼭 뱃속에 들은 태아처럼 영배는 옆으로 푹 고꾸라져 두 팔과 무릎을 웅크렸다. 어깨를 움찔움찔 대고 팔과 다리를 가냘프게 흔들었다. 그리고 굴욕감이 섞인 울음으로 웅얼댔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시정하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서희아빠는 연신 담배만 피워댔다. 그 동안에 얼마나 혹독했으면 이 지경으로 사람이 망가졌을까,
다음날부터 영배는 얼굴에 파란 도깨비불을 붙이고 문득 골목으로 사라지곤 했다. 때로는 술집이 줄지어선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남들처럼 누구와 시비를 붙는 것도 아니고, 한 두 술집을 뒤집어엎는 것도 아니었다. 한번 광기에 휘둘리면 줄줄이 줄선 술집 전체를 초토화시켰다. 사람들은 야수처럼 날뛰는 큰 덩치를 막을 수가 없었다. 박정희정권 때에 국토재건대로 끌려간 아비의 자식이라서 이번에는 삼청교육대인가, 세상과 엇박자만 되풀이하는 삶에 넌덜이가 나다 못해 미쳐버린 것이다. 영배는 각목이건, 돌이건, 칼이건 손에 잡히는 대로 휘둘렀고 맨 주먹으로 유리창을 박살내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관들도 피투성이가 된 영배의 모습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몇이서 달려들어 겨우 지서로 끌고 오면 지서장 앞에서 부동자세로 딱 서서, “앞으로 시정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하고 경례를 딱 붙이고는 별안간 엎드려서 팔굽혀펴기를 하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인간이 아니닷, 하낫, 나는 인간이 아니닷, 둘... 나는 인간이 아니닷, 셋...” 경찰관들도 모두 혀를 찼다.
그런 영배에게 사람들은 이상한 증상을 하나 발견했다. 길길이 날뛰다가도 깜찍이가 앞에 나타나면 금방 순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언젠가는 지서에 붙잡혀오기만 하면 벌벌 떨던 영배가 갑자기 돌변하여 지서를 몽땅 뒤집어엎었다. 그때 황급히 달려온 깜찍이가 영배 앞에서 두어 번 어더더더, 어더더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눈물을 찔끔 흘리며 소매를 잡아끌자 영배는 마치 거대한 항공모함이 조각배에 딸려가듯 자그마한 깜찍이에게 손 붙잡혀 가는 것이었다. 그 후로부터 술집골목에 나타난 영배의 낌새가 좀 이상하다 싶으면 동네사람이 황급히 깜찍이의 집에 찾아오고, 이에 급히 뛰어나간 깜찍이가 골목으로 사라지고, 한참 있다가 보름달처럼 쑥 내밀어진 만삭의 배를 뒤뚱이며 영배의 큰 덩치를 끌고 오는 그림자가 내 밑을 스쳐 집으로 사라지면, 이 길은 눈물의 강이었다. 맑았던 깜찍이의 눈에서 터져 나온,
12월 말,
골짜기로 아랫배를 묵직하게 드리운 잿빛하늘에서 눈발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폭설로 변했다. 쇠갈고리로 긁어내듯 맹렬한 바람과 추위가 쌩쌩 골짜기를 훑고 달려와 검은 개울을 스쳐 위로 치솟자, 이리저리 줄지어 몰리는 눈이 하얀 자락 펄럭펄럭 포물선을 그렸다. 멀리 교회의 첨탑 십자가 아래에 늘어진 반짝반짝 꼬마등이 눈보라에 가려 희미하고, 거리에 나돌던 크리스마스 케롤이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밤에 나는 희소식을 기다렸다. 오늘 점심때에 서희아빠의 등에 업혀서 병원에 간 깜찍이가 아들을 낳았을까? 아니면 깜찍이처럼 정말 깜찍한 딸을 낳았을까? 저녁에 서희엄마가 급한 걸음으로 집에 달려오더니 스위치를 올려서 나를 켠 후, 보따리를 하나를 챙겨들고 또 병원으로 총총 뛰어갔다. 영배는 어제부터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날씨만 꾸물꾸물하면 온 삭신이 쑤시고 뼈가 저릿저릿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깜찍이가 병원에 업혀간 시간에 영배는 술집골목을 돌며 마구 술을 뺏어먹고 있었다. 주인은 난장판을 피하려고 선선히 술을 내줬다. 내가 초조하게 등을 밝히며 깜찍이를 궁금해 하는데, 자정쯤에 둑 저쪽에서 영배가 나타났다. 영배는 몇 발자국 걷다가 미끄러져 넘어지곤 하면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술에 많이 취해보였는데 오늘은 넘어졌다가 일어서는 모양새가 이상했다. 꼭 가랑잎처럼 힘없이 풀썩 주저앉고, 또 겨우 몸을 일으키다가 휘익 어깨가 옆으로 돌며 나가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가까워져 올수록 가슴이 섬뜩했다. 정상적인 몸동작이 아니었다. 안간힘을 쓰고 있음이 분명했다. 꾸물꾸물 다시 몸을 일으켜 허리를 세우던 영배의 중심이 또 휘익 돌더니 둑 가장자리로 풀썩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개울 아래로 쿵 굴러 떨어졌다. 한참 지나서 서희아빠가 눈보라를 뚫고 나타났다. 어깨를 움츠려 잰걸음으로 총총 오더니 영배의 방문을 열어봤다. 아무도 없자 꿍얼댔다.
“살림밑천을 낳았는데 어디로 간 거야?”
밖으로 나온 서희아빠는 사방을 두리번대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영배가 밖에서 사고라도 치면 꼭 누군가가 연락하기에 영배가 바로 집 앞의 개울로 굴러 떨어졌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활짝 날이 개자 집 앞에 쌓인 눈을 개울로 밀어버리던 서희아빠가 눈에 덮인 채 발끝만 삐죽 나와 보이던 영배를 발견한 시간이 오전 열한 시 경이었다. 영배는 숨진 채로 두 팔과 다리를 가슴과 배에 몰아 옹크린 자세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리고 차마 깜찍이에게 이를 전하지 못하여 복도에서 수없이 서성대던 서희엄마가 엉엉 울음을 터뜨리며 영배의 죽음을 알린 때가 다음날 새벽이었다.
낮은 처마 앞에 천막이 쳐지고 그 아래에 빈소가 차려졌다. 얼음보다 더 찬 공기가 동네 사람들의 발걸음을 묶었지만, 영배의 죽음이 알려지자 4월의 함성에 연루되어서 치도곤을 당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그들은 아직도 블랙리스트에 오른 폭도였고 감시의 눈초리는 여전했다. 빈소 앞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서 모두 침묵했다. 영배가 고문당하다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서 정신이 돌아버렸다는, 그러다가 개울에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이 이들의 가슴에 얼음으로 박혔다. 어제에 이어 오늘 아침에도 형사들이 다녀갔고, 보이지 않는 모종의 움직임이 이들과 팽팽하게 맞섰다. 아직도 전국은 침묵의 강철시대였다. 언제 불쑥 총부리가 튀어나오거나 검은 지프차가 나타날지 아무도 몰랐다.
소주잔만 주고받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한 곳을 바라봤다. 깜찍이가 서희엄마의 등에 업혀 오고 있었고, 그 양 옆으로 이웃집 여자들이 서희엄마를 부축하고 종종 걸음을 쳤다. 얼어붙은 눈길을 조심조심 걸어와서 빈소 앞에 깜찍이를 내려놓은 서희엄마의 입가에 뽀얀 입김이 가쁘게 맴돌았다. 깜찍이의 치마에는 아직도 다 멈춰지지 않은 하혈의 흔적이 불긋불긋 맺혀 흔들렸다. 영배의 시신은 동그랗게 옹크린 자세 그대로였다. 장의사와 사람들은 차마 뼈마디를 뚝뚝 부러뜨려 시신을 펴지 못했다. 치도곤을 당했던 사람들도 이 자세가 자기들이 얻어맞거나 짓밟힐 때에 가장 편했다고 했다. 깜찍이는 마치 유령처럼 희뜩희뜩 움직였다. 밤새 내린 눈보다도 더 하얀 표정과 백지 보다도 더 하얗게 변한 흰자위에는 한 점의 감정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관은 라면박스처럼 네모졌다. 그 안으로 시신이 들어앉자 벽을 더듬어 방에 들어간 깜찍이가 베개와 이불을 가지고 나왔다. 베개를 옆으로 드러누운 영배의 머리 아래에 받치고, 자기가 배던 베개를 두 팔과 발을 잔뜩 옹크린 영배의 가슴 안으로 꾹꾹 눌러 넣었다. 그리고 이불을 반으로 접어서 영배를 다독다독 덮었다. 깜찍이의 얼어붙었던 눈물이 뚝 하고 영배의 얼굴에 떨어졌다. 또 한 방울의 눈물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깜찍이는 더 크게 눈을 뜨고 이 자갈밭 같은 세상에, 쨍쨍 몰아친 추위에 눈물마저 얼리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손짓으로 서희엄마를 불렀다. 아기를 안는 시늉을 했다. 아기에게 젓 먹일 시간이라는 뜻이었다. 서희엄마의 등에 업혀 병원으로 향하던 깜찍이는 둑이 휘어지는 그 마지막 자리에서 딱 한 번 뒤를 돌아봤다. 그 혹독한 겨울을 깜찍이는 방구석에 묻혀 지냈다. 아니, 지냈다기 보다는 겨우 살아났다. 그리고 봄이 왔다.
이 세상을 안을 수 없는 사람에게 다가온 봄이란 아무렇지도 않은 창공의 춤일 뿐이다. 깜찍이는 그런 봄에 기저귀가방을 들고 서울행 야간열차에 올랐다. 종교 자선단체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센터로 떠난 것이다. 나는 영배와 깜찍이가 쓰던 불 꺼진 창을 우두커니 밝혔다.
2007, 이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