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퇴고실

착각하는 소리일 뿐

미송 2014. 8. 23. 08:15

 

우리의 잘못은 서로의 이름을 대문자로 착각한 것일 뿐. 네가 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나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겠다고 결심한다. 네가 없어지거나 내가 없어지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그러나 너는 등을 보인 채 창문 위에 뜻 모를 글자만 쓴다. 당연히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가느다란 입김이라도 새어나오는 겨울이라면 의도한 대로 너는 네 존재의 고독을 타인에게 들킬 수도 있었을 텐데.

대체 언제부터 겨울이란 말이냐. 겨울이 오긴 오는 것이냐. 분통을 터뜨리는 척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리고 중얼거린다. 너는 등을 보인 채 여전히 어깨를 들썩인다. 창문 위의 글자는 씌어지는 동시에 지워진다. 안녕 잘 가요. 안녕 잘 가요. 나도 그래요. 우리의 안녕은 이토록 다르거든요. 너는 들썩인다 들썩인다. 어깨를 들썩인다.

헤어질 때 더 다정한 쪽이 덜 사랑한 사람이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나는 더 다정한 척을, 척을, 척을 했다. 더 다정한 척을 세 번도 넘게 했다. 안녕 잘 가요. 안녕 잘 가요. 그 이상은 말할 수 없는 말들일 뿐. 그래 봤자 결국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

이제니「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 부분

 

 

 

 

착각하는 소리일 뿐 / 오정자

 

 

우리의 잘못은

문명이 낳은 언어로 닿으려는 것일 뿐
기다리는 미래도
끌어올 수 없는 과거도 애당초 없었다  
의탁한 바 없으면 오늘도 없는 것

 

시간의 다른 인사는 관념일 뿐
허망한 척, 허망한 척, 척을 한다
안녕 잘 가요 안녕 잘 가요 그
나머지는 말할 수 없는 말들일 뿐
내일을 여는 동시 내일에 닿을 수 없는
어제로 갈 수 없는 오늘은 변화일 뿐

 

새로운 언어로도 닿을 수 없는 것이 진실이라서
빙산 아래 겹쳐진 웃음들만 수억 년 인연으로 남는다는 ,
사랑에 관한 과학적 해석이다

 

겨우내 눈 속에서 구멍만 파다 돌아온
그해 겨울도 그랬다 
 
새날의 태양은 매일의 태양 
춤사위 진동들 순간을 스치는 현상일 뿐
눈을 감아야 들리는 눈 내리는 소리
시간의 오해는 언어로 시작된 자기 해석일 뿐.

 

 

 

 

2010년 이제니의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이 모토가 된 패러디 시다. 

언어와 인간의 불완전성, 군더더기의, 군더더기로서의, 묘함이 한층 또렷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