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김경주<내 머리카락에 잠든 물결>
미송
2013. 2. 14. 11:35
내 머리카락에 잠든 물결 / 김경주
한 번은 쓰다듬고
한 번은 쓸려 간다
검은 모래 해변에 쓸려 온 흰 고래
내가 지닌 가장 아름다운 지갑엔 고래의 향유가 흘러 있고 내가 지닌 가장 오래된 표정은 아무도 없는 해변의
녹슨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씹어 먹던 사과의 맛
방 안에 누워 그대가 내 머리칼들을 쓸어내려 주면 손가락 사이로 파도 소리가 난다 나는 그대의 손바닥에 가라앉는 고래의 표정,
숨 쉬는 법을 처음 배우는 머리카락들, 해변에 누워 있는데 내가 지닌 가장 쓸쓸한 지갑에서 부드러운 고래 두 마리 흘러나온다
감은 눈이 감은 눈으로 와 서로의 눈을 비빈다 서로의 해안을 열고 들어가 물거품을 일으킨다
어떤 적요는
누군가의 음모마저도 사랑하고 싶다
그 깊은 음모에도 내 입술은 닿아 있어
이번 생은 머리칼을 지갑에 나누어 가지지만
마중 나가는 일에는
질식하지 않기로
해변으로 떠내려온 물색의 별자리가 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