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교 <빨래 너는 여자>
빨래 너는 여자
햇빛이 바리움처럼 쏟아지는 한낮, 한 여자가 빨래를 널고 있다
그 여자는 위험스레 지붕 끝을 걷고 있다
런닝셔츠를 탁탁 털어 허공에 쓰윽 문대기도 한다
여기서 보니 허공과 그 여자는 무척 가까워 보인다
그 여자의 일생이 달려와 거기 담요 옆에 펄럭인다
그 여자가 웃는다, 그 여자의 웃음이 허공을 건너
햇빛을 건너 빨래 통에 담겨 있는 우리의 살에 스며든다
어물거리는 바람, 어물거리는 구름들
그 여자는 이제 아기 원피스를 넌다
무용수처럼 발끝을 곧추세워 서서 허공에 탁탁 털어 빨랫줄에 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그 여자의 무용은 끝났다
그 여자는 뛰어간다. 구름을 들고
시집 <어느 별에서의 하루> 중에서
한꺼번에 몰아 읽었던 시인의 시들 중 이미지가 가장 뚜렷했던 시로 기억한다. 그때 누군가 말했던가. '야, 시가 참 예쁘네'. 이미지의 형상화를 시의 목적으로 둔다면, 이 시는 확실히 성공한 거라고 감탄했던 기억이다. 빨래줄은 여자라면 누구라도 추억담으로 엮을 수 있을 것 같은 소재다. 이 시의 화자처럼 말갛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간결미가 돋보이면서도 넘실대는 심리묘사까지 그려낸다는 건 쉽지 않겠지. 그녀의 웃음이 햇빛을 건너 빨래 통에 담겨 있는 우리의 살에 스며든다, 는 구절이 오늘은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메를리 퐁티의 감각이론을 듣는 기분이다. 시를 통해 바리움이 불교용어가 아니라 신경안정제 이름인 것을 알았다. 시적 화자는 (어물거리는 바람인지 구름인지, 손녀옷을 빨아 너는 할머니인지 막 신혼을 연 새댁인지) 좀 헷갈렸지만, 시집 밖에 시인은 바리움을 오래 복용할 정도로 신경줄이 약했다는 것을 알았다. 시 안에 화자의 삶과 시 밖의 시인의 고백이 한 시집 속에 있었다. 빨래를 널며 발레를 하는 여자, 그러다 구름을 들고 뛰어가는 여자. 미적 승화작용이 없었다면 마냥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있었을 것 같은 여자와 오버랩이 된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