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와 독백
이상한 사이
미송
2013. 7. 26. 22:58
나는 피식 웃는다. 특히 숫자 앞에서 아둔해 지는 나에게 웃는다. 너는 사기는 거의 안 당하고 살거야, 고지식해서. 아니 욕심이 없어서 전문 사기꾼에게도 안 넘어갈 거야 나는 중얼거리며, 한번 더 웃는다. 왜 이렇게 숫자에 아둔한 사람일까 나는, 애당초 숫자를 싫어했기 때문일까. 천부적으로 산수가 느렸기 때문일까. 어찌나 느린지 한참 계산하다 보면 내가 뭘 은근 띵겨먹은 게 있지나 않나 스스로 까막까막한다. 두 세번 이상 계산해서 통장과 일지의 숫자가 몇 십 일원까지는 아니라도 근사치에 닿으면 나는 신이 난다. 계산이 맞아서도 그렇지만 더 이상 숫자 때문에 눈 아프지 않고 잘 수 있어서 나오는 비명인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정말 회계를 맡아선 안 될 사람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한 달에 한번은 회계를 한다. 지겨운 숫자와 눈싸움을 한다. 천만 원도 아닌 일 십 백만 원 수준의 월간 회계보고를 꼬박꼬박 대체 나는 누구를 위해 전송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아무튼 내게 여전히도 부러운 족속들은 회계와 미술에 능한 자들. 내게는 너무도 먼 그 부류의 세계. 싫어도 해야 하는 계산. 숫자와의 씨름을 즐겨야지 하지만 나는 숫자 앞에만 앉으면 내가 꼭 누군가를 실컷 사기 치거나 띵겨먹는 기분이 드니. 사실 숫자 보다 그 D 같은 기분이 싫어 더 싫은 숫자인지도. 하지만 어쩌리. 더 지긋지긋한 건 숫자가 아니라 민생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