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이정문 <저 안전해요>

미송 2013. 8. 19. 22:35

       중국양자강 계곡모습

     

     

    저 안전해요 / 이정문

     

     

     

    젊어 돈 많이 벌어 늙어 글 편히 쓰겠다는 사람이

    한 단계도 모르는 내게 다단계를 권하면서

    - 안전한 노후를 준비하셔야 되지 않겠냐고

     

    문득 잊었던 나이가 생각나

    하낫, 둘, 셋, 넷, 짚어보니 내일 모레면 예순인데

    젊어 늙어, 늙어 젊어 뒤죽박죽 그렇게 살아왔는데

     

    집에 돌아와

    망둥강아지 모양 뒹굴러 침대 모서리까지 갔을 때

    또 하낫, 둘, 셋, 넷, 줄이 서길래

    노후가 어디쯤인가 궁금하여 더듬더듬 찾아보다가

    그것을 확 집어 빼내 형광등에 비쳐보니

     

    서너 살도 되고, 스물 몇 살도 되고, 어제도 되고, 그제도 되고

    벌써 몇 번 노후를 지내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준비란 늘 저 앞에 떨어지는 손님인지라

    똑똑한 양반이 이미 지나간 손님을 말할 리는 없을 테고

     

    이번에는 새끼고양이 모양 침대 모서리 밖으로 고개를 쭉 빼고

    방바닥에 눈알을 들이대 갸웃갸웃 죽어 나자빠진 가을모기를 보다가

    문득 고개 쳐드니

     

    텔레비전에서 왈, 노후연금보장이 어쩌고, 노후대책보험이 저쩌고,

    한 마디로 노후 안전망이라기에

     

    죽어 나자빠진 모기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려

    하낫, 둘, 셋, 넷, 소리 내어 팔다리도 세어보고 날개도 세어보고

    고것 참, 온전하게도 잘 뒈졌기에

     

    한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다단계 세상에 사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 저 안전해요.

     

    2007, 가을  

     

    신체발부수지부모니 하는 한자성어까지 가지 않아도 좋다. 아직 사지가 멀쩡하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시 속에 모기처럼 날개까지 무사히 접힌 채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1인칭 화자가 던지는 메시지가 또렷하다. 저는 죽을 때까지 보험이나 다단계 비스무레한 근처에는 얼쩡도 안 할끼야요 ! 하는, 인생 신조. 왠지 모르게 웃기는 얘기다 하다가 자꾸 쭈빗대다가 스스로 서글퍼지는 시, 어쩌면 시인의 삶이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구어체로 편안함을 더해 주었지만 죽어 나자빠졌다니 잘 뒈졌다니 하는 어투는 추측이지만 시인의 평소 말버릇인 듯 싶다. 아무튼, 용감한 신조 앞에 두 손을 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