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너무 늦지 않은 어떤 때」
김소연, 「너무 늦지 않은 어떤 때」
먼 훗날,
내 손길을 기억하는 이 있다면
너무 늦지 않은 어떤 때
떨리는 목소리로 들려줄
시 한 수 미리 적으며
좀 울어볼까 한다
햇살의 손길에 몸 맡기고
한결 뽀얘진 사과꽃 아래서
실컷 좀 울어볼까 한다
사랑한다는 단어가 묵음으로 발음되도록
언어의 율법을 고쳐놓고 싶어 청춘을 다 썼던
지난 노래를 들춰보며
좀 울어볼까 한다
도화선으로 박음질한 남색 치맛단이
불붙으며 큰절하는 해질 녘
창문 앞에 앉아
녹슨 문고리가 부서진 채 손에 잡히는
낯선 방
너무 늦어 너무 늙어
몸 가누기 고달픈 어떤 때에
사랑을 안다 하고
허공에 새겨 넣은 후
남은 눈물은 그때에 보내볼까 한다
햇살의 손길에 몸 맡기고
한결 뽀얘진 사과꽃 세상을
베고 누워서
여름의 끝자락에 이르니, 극성한 여름의 끝자락에 이르니 꾹꾹 눌러두었던 울음보가 터질 것만 같아요. 극점을 돌고 나면 허위허위 울음 이상의 알 수 없는 숨이 차오르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참으려고 한 것도 아닌데 참아진 것, 그게 여름의 더위뿐이겠어요?
‘사랑한다’는 현재형의 단어가 ‘묵음으로 발음되도록 언어의 율법을 고쳐놓고 싶어 청춘을 다 썼다’는 시인의 먼 훗날의 회고, 가상의 회고가 저절로 울음을 불러오는군요. 그것은 시인이니까 ‘언어의 율법’이라고 썼지만 실은 사랑의 율법, 삶의 율법을 ‘묵음’으로 바꾸고 싶은,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아 막막하고 먹먹한 고백입니다.
‘묵음’은 침묵, 여백, ‘울음’과 동의어입니다. 들판 같고 들판의 어둠 같고 밤 같고 새벽 같고 새벽의 코발트빛 하늘같습니다. 모두의 사랑은 역으로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발음하지 못할 세계니까요.
햇살 위에 누워 떠가는, 사과꽃으로 장식한 영원한 잠이 어여쁩니다. <문학집배원 장석남>
고개 끄떡이며 읽는다. 아침식사와 출근준비 시작이 있기 전, 고개를 끄덕이며 읽고. 언제 난 이 시를 또 읽게 될지 모른다.
목소리 참 허스키하네, 한참 울고 난 후에 시를 썼을까, 낭송을 했을까. 문득, 시란 한 밤중에 자다가 깨어 쓸쓸히 쓰는 것이라던가,
실컷 울고 난 후에 차악 가라앉은 맘으로 읊는 게 제 맛이야, 하던 어느 싸부의 옛말이 떠오른다. 어쨌거나 음, 괜찮은데 하며
시를 읽는 아침, 회한과 사과꽃은 무슨 상관일까, 왜 꼭 슬픈 땐 미안하단 사과가 따라오는 걸까, 도 생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