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반전(反转)의 나뭇잎들
사진 by_ 채란
반전(反转)의 나뭇잎들
오정자
백지白紙를 너무 좋아하는 것일까, 누군가의 입을 빌어 나의 말을 듣는 일에 익숙한 것일까. 나는 들나귀처럼 뛰어다니는 일 보다 앉아 있는 일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무엇을 더 좋아하고 무엇을 더는 강박强迫하지 말아야 할 지를 가늠하며 엉덩이를 다시 깊이 붙이곤 한다. 앉았거나 누웠거나 본능 안에서 만나게 되는 어제의 하늘과 나무와 계절의 빛깔들. 우연한 행복이라 해야 할까. 떼어놓는 발자국만큼 살아지는 일은, 경이驚異롭다.
천지의 유쾌한 것들을 다 맛보는 듯 천지의 불쾌한 것들을 다 호흡하는 듯, 나의 하루에는 천태만상千態萬象이 머물다 간다. 스쳤을 뿐이지 해도 저녁까지 남아 있어 집까지 데려 오는 사람도 간혹 있다. 스스로 과제를 안고 귀가하는 날이면 나는 그 과제의 원인자를 타인에게서 찾는다. 목소리 크고, 눈빛 거만하고, 사사건건 참견하고, 나대어 피곤하게 만들고, 등등의 성향을 재생하다 분석하면서 스스로 지친다. 오 나의 마지막 시련이여! 신의 이름처럼 시련을 부르짖는다.
누군가는 지나가는 말로 내 일이 나와 잘 어울린다 고 한다. 사근하게 또 때로는 엄격하게, 옆에서 보기에 내가 제법 유연해 보였을까. 이상하게도 예민한 나는 그 ‘누군가’라는 익명匿名의 한 마디에도 빠른 반응을 보인다. 민첩하게 눈썹을 치켜 올리며 ‘제가 원래 무엇에나 잘 어울리고 무엇이든 잘 처리하는 사람인 걸요’ 말한다. 물론 속으로는 더 길게 말하지만 곧바로 얼굴이 화끈해짐을 느끼는 나,
누군가는 들뜬 목소리로 내 일이 자기가 꿈꾸던 바로 그 일이라고 말한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또 대답한다. ‘원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거예요, 뭐’ 그러면서 무의식중에 어깨를 들썩이는 나. 사실 나도 지금의 내 일이 만족스럽다. 비록 보수는 적지만. 시민단체라는 프레임과 녹색활동가 라는 명분은 소박한 나의 꿈에 어느 정도의 보상을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공백을 메꿔주는 이의 응원까지 있어서 나의 업業은 자유롭다. 조용히 사는 게 꿈이었는데, 너무 조용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까 해서 였을까, 또 한 누군가는 내 오른쪽 가슴에 명찰을 달아 주기도 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나는 숨 쉬고 활기차게 움직였을 텐데 하면서도, 생각해 준 그 마음이 고마울 뿐이다.
단, 괴롭히는 한 사람만 없으면 더 금상첨화겠는데 여전히 장애물은 내 곁에 남아 있다. 내 년年에도 그대로 남아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누군가는 그냥 그런 자의 소행을 보면 당신의 클라이언트라 생각하세요 말하지만, 사실 나는 그럴 능력이 없을 뿐 더러 내 안에 에너지를 쓰는 일에 분별심이 너무 발달해 있어서, 집에 오면 귀를 씻기에 바쁘다. 어느 날은 내 귀에 그 크고 지루하고 거친 목소리가 덕지덕지 붙어 따라온 것 같아 짜증을 내며 샤워를 한다. 귀부터 말이다.
누군가는 너무 쉽게 약속을 어기고 누군가는 습관처럼 공간을 드나들고 누군가는 집안에서 하던 버릇 나와서도 하고, 트집을 잡기도 하고 생떼를 쓰듯 칭얼대기도 하고 헛소리를 하기도 하고, 커피나 한 잔 할까요 넘실대기도 한다. 커피 못 마셔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나, 원. 별의 별 일, 별의 별 사람들, 별의 별 모양의 우주들이 나를 가운데 세워 둔 채 돌고 도는 하루는, 그러나 재밌기도 하다. 산에 들어가 수행하는 일 보다 '혹' 하는 재미도 있다.
다.
아무튼 나는 일요일 아침에 모처럼 길게 앉아 내 안에 것들을 펼친다는 의미로 이렇게 문자인지 마음인지를 늘어뜨리고 있는데, 마당 한 곁에서는 두 마리의 강아지가 잠을 자고 있다. 사람이 눕는 포즈로 완벽하게 누워 잠꼬대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 순간에 우스워 죽겠는 저 풍경은 또 무슨 계시啓示인가. 나는 다시 웃는다. 나의 사랑스런 강아지들 때문에.
남은 한 모금의 커피를 홀짝 마시면서 그래, 이제 정리해 두기로 하자. 좀 전에 백지에 쓰기 시작했던 말들을 책상 아래 내려놓고, 어제 보았던 하늘 아래 그 나뭇잎들을 다시 보기 할 것. 팔랑이는 것은 나뭇잎이나 바람이 아니라 말 많으려 했던 마음일 뿐이니, 작고 크고 파랗고 노오란 마음들을 나뭇잎에 끼워 하늘 아래 걸어두면 어떨까 하며, 반성 모드는 아니었지만 잠시 명상의 모드였다 최면을 걸면서.
‘ 꽃잔치 벌어지는 여름날의 낡은 담장 아래
강아지 두 마리 ‘
스물 세 글자의 행복을 노래하며 치매시인처럼 웃던 그 '누군가'의 미소처럼, 나뭇잎들은 아직도 여름날의 뜨거움을 품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