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보르헤스 <1899년 어느 무명시인에게>
미송
2013. 10. 24. 07:41
Photo by_ ssun
1899년 어느 무명시인에게
하루의 가장자리쯤, 숨어서 우리를 기다리는
서글픈 시간을 위해 시를 남긴다는 것,
황금빛 반짝임과 희미한 그림자의 아픈 날짜에
너의 이름표를 단다는 것, 그것이 네가 원했던 것.
하루가 기울고 있을 때, 또 얼마나 열심히
그 이상한 시구를 쓰고 다듬고 했었을까 !
우주가 흩어져 사라질 때까지, 여기 이상한 푸르름이
존재했음을 알리려는 그 이상한 시구 !
네 뜻이 성공했는지, 심지어 나는 네가 실제 존재했는지조차도
나는 모른다, 세월 속의 희미한 이름의 힘아,
하지만 나 또한 홀로 남았다. 그래서 나는 망각에게
세월 속에서 너의 가벼운 그림자를 다시 찾아오도록
부탁한다, 땅거미가 지는 순간에, 이 지친 나의
안타까운 말벗이라도 되어주도록.
보르헤스는 시가 황금 월계관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지 않았다. 살아 있음은 곧 망각을 향하여 가는 길임을 알았다. 다만 땅거미가 질 무렵의 푸르름,
그 작은 위안을 위해 시가 있다고 믿었다. 영원한 것은 무명에 가까운 작아짐의 형태에서만 또렷해진다. 그것은 세월 속에 너도 나도 살아 있었음의
더러는 슬프고 더러는 행복했었음의 마지막 증표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