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의 작품

[칼럼] 제우스(Zeus)들의 탄생

미송 2013. 10. 28. 10:35

          

                             G. 바사리 작 [우라노스], 피렌체 베키오 궁전

 

 

 

 제우스(Zeus)들의 탄생

 

 

 

"우주 최초의 지배자는 우라노스였다.” 그리스 신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라노스는 서쪽 하늘을 타고 내려와 밤마다 대지의 신 가이아와 몸을 섞었다. 둘 사이에서 자식들이 탄생했고 티탄(TITAN) 신족이라 불리는 이들이 세상을 최초로 지배했다. 1912410. 잉글랜드 남쪽 사우샘프턴 항에 그때까지 인류에게 출현하지 않았던 거대한 배가 물위에 떴다. 52천 톤급의 여객선이었다. 티탄 신족을 상징하여 붙여진 배의 이름 타이타닉(Titanic)’은 불길했다. 나흘 후, 뉴욕을 향하던 여객선은 빙산과 충돌하여 깊은 바다 속에 잠기고 말았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는 고민했다. 자식들 중에 헤가톤케이레스 형제와 귀클롭스 삼형제들 때문이었다. 헤가톤케이레스 형제는 강력한 백 개의 손과 쉰 개의 머리를 각각 가지고 태어났다. 퀴클롭스 삼형제는 천둥과 번개와 벼락을 각자 하나씩 손에 쥐고 태어났다. 이들이 힘을 합하면 자신의 권좌까지 넘볼 막강함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우라노스는 이들을 묶어 저승의 가장 깊숙한 곳인 타르타로스(Tartaros)에 던져버렸다.

 

가이아 여신은 남편 우라노스의 행동에 분노했다. 티탄 신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나의 사랑하는 자식들이여, 누가 너희들의 형제인 헤가톤케이레스와 퀴클롭스들을 구할 것인가?” 티탄들에게 이는 곧 자신의 아버지이며 최고의 신인 우라노스에 대한 반란을 의미했다. 두려움에 모두가 머뭇거렸다. 이를 본 가이아는 하나의 제안을 그들에게 던졌다. “우라노스가 누리고 있는 최고의 권좌를 그를 제거한 자에게 물려주겠다.” 막내인 크로노스(Cronos)가 분연히 일어섰다. ‘제압되지 않는 쇠로 만든 낫을 든 크로노스는 우라노스가 서쪽 하늘에서 내려오는 길목에 숨었다가 그의 성기를 잘라버렸다. 어둠 직전의 서녘이 우라노스가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다.

 

가이아의 약속대로 크로노스는 티탄 중의 최고의 티탄, 신들 중의 신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크로노스는 자신의 형제인 헤가톤케이레스와 퀴클롭스를 지옥에서 구해내겠다는 애초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우라노스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강력한 힘을 두려워한 탓이었다. 가이아 여신은 당연히 분노했다. 크로노스에게 무서운 저주의 말을 남겼다. 너도 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너의 권좌를 네 자식에게 빼앗길 것이다.”

 

우주 최초의 지배자는 우라노스였다.”라는 서두의 그리스 신화는 우주 최초의 불안한 자는 우라노스였다.”고 바꿔 써도 손색이 없다. 이 신화는, 지배자의 권력은 오로지 힘에서 비롯된다는 뜻이고, 또한 주변의 다른 힘의 원천을 미리 철저하게 차단시켜 자신의 권좌를 지켜내야 된다는, 지배자의 끊임없는 경계심과 불안의식을 내포한다. 그 불안의 본색인 다른 세력의 저항과 반란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지배자의 권력과 억압이다. 뒤집어 말하면 절대 권력과 억압은 숙명적으로 그 위기와 반란을 스스로 조장하고 잉태한다는 뜻이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지배자의 권좌가 하늘의 신인 우라노스로부터 세상을 지배하는 티탄 신에게로 넘어왔다. 잉글랜드 사우샘프턴 항을 벗어난 타이타닉 호가 드디어 우람한 몸체를 대서양에 드러내며 처녀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크로노스의 뇌리에는 가이아의 저주가 떠날 날이 없었다. 아내인 레아여신이 자식을 낳으면 그는 즉시 입을 벌려 뱃속에 넣어버렸다. 그러나 실현되고야 마는 것이 신의 저주다. 레아여신은 제우스를 낳자마자 멀리 이데산의 동굴에 숨겼고 자신의 요정들에게 양육을 맡겼다. 대신 레아는 강보에 싼 돌덩이를 아기라고 속여 크로노스로 하여금 삼키게 했던 것이다.

 

성장한 제우스에게는 자연스러운 사명이 하나 주어졌다. 크로노스에게 삼켜진 자신의 다섯 형제들을 구하는 일이었다. 이는 아버지인 최고의 신에 대한 도전이고 즐비한 티탄신들에 대한 전면전인 선전포고였다. 요리사로 신분을 속인 제우스는 크로노스의 음식물에 토하는 약을 섞어 넣었다. 크로노스가 삼켜버린 다섯 형제들을 토하자, 제우스는 이들과 힘을 합해 티탄신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가이아 여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자기를 배신한 자식들에 대한 손자들의 응징이었다.

가이아 여신은 제우스에게 승리의 비법을 알려주었다. 지옥에 갇혀 있는 퀴클롭스들과 힘을 합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제우스는 이들과 연대했고, 퀴클롭스 삼형제는 각자 가지고 있는 천둥, 번개, 벼락을 제우스에게 모두 넘겨주었다. 10 년간에 걸친 치열한 전쟁 끝에 제우스는 티탄신들을 모두 몰아내고 올림포스 정상에 올라 최고의 권좌를 차지하게 된다. 여기까지의 줄거리가 그리스 신화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는 신들의 전쟁이다.

 

그리스 신화는 지배자 권좌의 쟁탈전과 억압과 저항, 음모와 배신과 보복으로 얼룩졌고, 힘의 논리가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우주 최초의 지배자는 우라노스였다.”라는 신화를 우주 최초의 지배자는 이었다.”라고 고쳐 써도 무리가 없다. 이것이 지금도 서양정신을 지배하는 한 축이다.

 

1945년 오전 815, 일본 히로시마.

맑은 하늘에서 투하된 물체 하나가 지상 570미터 상공에서 엄청난 굉음을 울리며 폭발했다. 지구상에 등장한 최초의 원자폭탄이었다. 이 폭탄을 만든 오펜하이머를 미국 언론들은 인류에게 최초의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라고 대서특필했다. 과연 신화처럼 인류의 행복을 위해 오펜하이머가 불을 가져다주었을까, 제우스가 손에 쥔 무적의 힘인 천둥, 번개, 벼락을 인간이 뺏어온 것은 아닐까, 그 무기가 인간의 손에 들어오자마자 수많은 제우스가 탄생되어 우주 지배자의 자리를 노리고 있을 뿐이다.

 

지금 한반도는 핵강대국들로 둘러싸여 있다. 제로섬 게임만이 존재하는 힘의 역학지대다.

정의란 무엇인가?” 얼마 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마이클 센들 교수의 저서다. 그러나 약소국가의 입장에서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국제관계에 있어서 어떤 의미라도 좋으니, 정의란 것이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2013. 10. 27 한류넷닷컴 이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