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와 독백

이천십삽년십일월십일

미송 2013. 11. 10. 11:26

 

1

스마트폰 모닝콜 소리에 잠이 깼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가를 제일 먼저 물었다. 울어대는 모닝콜을 끄러 가는 사이에 일요일인 게 기억나기 시작했다.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똑같이 묻는다. 토요일도 문을 여나요, 월요일은 왜 문이 닫혀 있었죠. 셀 수 없이 대답을 해 주어도 다음에 오면 또 묻는다. 3월부터 게시판에 오픈시간을 붙여놓았는데, 문 여는 시간을 한글로 쓰지 않은 게 잘못이었나. 간혹 나도 헷갈린다. 계절과 시간이 종종 뒤바뀌어서, 한 여름에도 가을바람을 느끼고 편히 자도 되는 시각에도 조급함을 느낀다. 꽈당 다시 누울까 해도 착각을 느끼고 나면 습관이 작동되어 그럴수도 없다. 어차피 인생은 수레바퀴.

 

2

뉴스의 정치면을 들추었다가 화들짝하니 닫는다. 세상이 온통 흉흉하여 더 펼쳐 볼 수가 없다, 아니 펼치기가 싫다. 기사의 제목들은 온통 낯설고 본의 아니게 주인공이 된 이들과 음모자들이 겹쳐 놓은 화면들은 음울하기 짝이 없다. 다시 시작된 마녀사냥인가. 회귀본능이라 보기엔 너무나 원시적인 퇴행의 모습들. 절망스럽다. 내시같은 이들을 국민의 대변자로 내세운 노년층의 화석화된 의식에 젊은이들은 분개하고 있다. 직설화법으로, ‘늙은이들은 그냥 돌아가세오아고라 광장에서 격분하는 저들. 민낯이 뜨거워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세대 간의 치명적인 균열에 절망하는 그런 순간엔 쇼핑할 기분도 나지 않는다. 물건 값은 왜 이리 차이가 나는 거야. 그러니깐 다들 대형마트로 달려가는 군. 씁쓸함.

 

3

늦게라도 아침밥을 갖춰 먹어야 할까 보다 하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붓고 고추 튀각을 튀긴다. 튀길 때 중요한 건 하나씩 튀겨야 한다는 점, 두 개 씩 넣었다간 자칫 두 개 다 태울 수도 있다. 요리를 할 때 마다 재료를 공급해 준 사람과 요리법을 외우는 습관 하나, 그리고 요리를 하고 있는 내 등허리에 닿는 손길을 느끼는 습관 하나, 잠 잘 땐 조용하다 먹기 전이나 먹을 땐 유별스러워 지는 습관 하나, 가 있다. 밥을 먹으며 생각하다 동시에 입을 떼어 말한다. 에잇, 역시 우리나라 기장이 맛있네. 어젯밤에 사온 중국산 기장쌀이 하나도 구수하지 않다. 목욕을 하고 나왔는지 밍밍하다. 세 배나 싸길래 집었던 건데, 싼게 비지떡이란 말, 비지떡이 어떻게 생겼지, 그러니깐 궁합이 안 맞아 오히려 햅쌀 맛만 떨구네, 하면서 밥을 먹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되뇌며 밥을 먹는다. 우선 배가 불러야 깜찍이의 미세한 털도 보이고 털의 리드미컬한 윤기도 보임.

 

4

변덕이 났는지 심술이 났는지 멜롱이는 깜찍이 집을 이리저리 뒤적여 놓고 이불도 홱 마당 중앙에 갖다 놓는다. 버리기 아까운 쑥색 천을 박음질해 이불을 만들어 준게 멜롱이의 심기를 뒤틀리게 했는지. 깜찍이의 이불 소품들을 자꾸 흩어 놓고, 깜찍이는 옮겨진 자리에서도 이불에 필사적으로 붙어 누워 있다. 어제 아침엔 깜찍이 이불을 멜롱이가 깔고 누워 있고 깜찍이는 달랑 쿠션에 엎드려 다정하게 마주보고 있더니만 오늘 아침엔 심술을 내는 멜롱이. 기운이 남아서 그런 걸까. 어쨌든 깜찍이의 얼굴도 변하고 있다. 몸짓도 오빠를 닮아 가고 앞발을 터프하게 올려 세우는 폼도 오빠를 닮아 가고 있다. 야성미가 깃든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고 들어온다. 가을비가 내리더니 바람이 더욱 차갑다.

 

5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적 퇴행을 듣거나 읽거나 하다 보면, 결국 임종국의 업적을 생각하게 된다. 바보처럼 살다 간 사람들만 눈물나게 그립다. 친일청산을 미루는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를 백 년 후의 내 자식들은 얼마나 원망할까. 저항할 의식이나 있을까. 스마트폰 속 세상에서만 사는, 취업 걱정에만 시달리는 이들이 과연 역사에 대한 분노심이란 걸 갖고나 있을까. 돈이면 다 되는 삶이고 세상인데, 그들에게 우리가 하지 못한 혁명을 재주문할 자격이나 있을까. 생각할수록 절망이기에 생각을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임.

 

6

에드워드 스노든, 스물아홉에 CIA를 따돌리고 여우처럼 소련으로 망명한 스노든은, 오늘 아침 무슨 요리를 해서 먹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아침밥은 먹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