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벅차다
정우영 시인은 올 3월 병원에 입원해 두 번째 암 수술을 받았다. 혼자 병원 침대에 기대어 앉았는데 갑자기 ‘죽음’이란 단어가 떠오르더니 마치 폭풍처럼 옆구리를 강타하는 순간, 숨이 턱 막힌 채 옆으로 무너졌다. 생각이 몸을 유린하는 경험을 한 그는 상당 기간 죽음, 소멸, 종말 등의 단어를 피해다녔다.
그러다가 시 전문지에 연재해오던 시평 에세이를 쓰기 위해 박성우의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을 읽으면서 예전의 쾌활함을 되찾았다. 시의 치유효과를 경험한 그의 입에서는 “성우야, 고맙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외딴 강마을/ 자두나무 정류장에// 비가 와서 내린다/ 눈이 와서 내린다/ 달이 와서 내린다/ 별이 와서 내린다// 나는 자주자주/ 자두나무 정류장에 간다// 비가 와도 가고/ 눈이 와도 가고/ 달이 와도 가고/ 별이 와도 간다// 덜커덩덜커덩 왔는데/ 두근두근 바짝 왔는데/ 암도 없으면 서운하니까// 비가 오면 비마중/ 눈이 오면 눈마중/ 달이 오면 달마중/ 별이 오면 별마중 간다’(박성우 시 ‘자두나무 정류장’ 부분)이 시를 읽으면서 저자는 “자두나무는 공상과 현실의 경계를 이루는 곳, 그 자두나무 정류장에서 풋익어 들뜨고 청신했던 지난날과의 대면을 기대하게 된다”고 말한다. 또 ‘후다닥’ 내리는 비, ‘휘이잉’ 내리는 눈, ‘찰바당찰바당’ 내리는 달, ‘와르르’ 내리는 뭇별 등의 표현에서 부사의 싱그러움을 느낀다. 이 시 이외에도 ‘돌밭’ ‘목단꽃 이불’ ‘물의 베개’ ‘가뜬한 잠’ ‘참깨 차비’ 등 같은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착한 시가 주는 정화와 희열의 효과를 경험한다.
<시는 벅차다>는 “시와 사람 사이에 길을 내고 싶다”는 바람으로 동시대 시인들의 시를 찾아 읽고 쓴 시평 에세이다. ‘시는 약이다’(1부) ‘시는 놀랍다’(2부) ‘시는 벅차다’(3부) 등 3장에 걸쳐 많은 시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백무산·이상국·황규관·이은규·권덕하·김선우의 시를 다룬 ‘시는 약이다’는 우리 시대의 우울과 스트레스, 특히 아이들이 느끼는 억압과 죽음에의 충동을 고발하고 위로해주는 시를 소개한다.
‘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 새들도 갈 데가 있어 가지를 떠나고// 때로는 횡재처럼 눈이 내려도// 사는 일은 대부분 상처이고 또 조잔하다// 그걸 혼자 버려두면 가엾으니까// 누가 뭐라든 그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나의 시는 나의 그늘이다’(이상국 시 ‘그늘’ 전문)
‘사는 일은 대부분 상처’임을 깨닫는 일은 상처를 극복하는 첫 걸음이다. 그런가 하면 극심한 경쟁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남을 밀치고 위로 솟구치는 세계가 아닌, 남과 함께 옆으로 퍼져가는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고른 시도 있다.
‘척박한 땅이어서 더욱 단단해진/ 비구상의 슬픔,/ 할 말이 너무 많아 입을 꾹 닫은 심장 같다/ … / 땅 밑 어둠 속/ 옆에서 옆으로 번져간 뿌리줄기/ 자기 옆의 슬픔에 가만히 기댄 듯한,// 꽃을 본 적 없는데 꽃의 향내를 품게 된/ 내 캄캄한 당신의 옆’(김선우 시 ‘옆-고구마밭에서’ 부분)
저자가 뽑은 시는 감동과 위로를 건네는 시인 동시에 자연을 소재로 한 자연시이다. 언어의 유희가 시의 본령이기도 하지만, 언어의 감옥에 갇히지 않고 자연을 향한 시들은 훨씬 치유 효과가 높다.
“인간사 제반 문제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스스로 망각하거나 거부하는 데서 발생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 본성을 조금이라도 되찾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몸을 대문자 자연을 향해 돌려세울 필요가 있다.”(소설가 현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