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를 위한 춘향이
c를 위한 춘향이 / 오정자
1
어깨
기억나는 노래와 노동가를 지우고 나면
다음은 무얼 할 차례인가
푸른빛 빛이란 배경 때문에 생겨난 푸름
막다른 바람 길에서 나무들 이름을 외우는 건 그닥 중요하지 않다
어슴푸레한 시간 무렵
군홧발 닮은 곤혹스런 발자국들
횃불 든 목소리들 얼룩으로 남겨진 것이 보일 때
출렁인다 아비의 어깨는 이미 무너져 버렸다
아껴쓸 걸
2
시베리아 당나귀
청사진을 펼쳐 드는 밤
흑백으로 뛰어 노는 음탕한 내가
문 밖에서 떨고 있을 것 같은 동물을 걱정하였다
불면의 상상력을 도닥이려는 목소리 그때 말했지
시베리아 당나귀는 밤새 꼿꼿이 서서 잠을 잔대
성에꽃이 피듯
서서히 얼음이 되어가는 몸을
세우고 잠드는 당나귀
시베리아 당나귀를 생각했지
3
1도 차이
인간의 체온은 36.5도 보태면 더 뜨거운가
우리 집 아지들은 겨울에도 바닥에 배를 붙이고 잔다
열을 식혀야 하는 그들
열나게 비벼 발바닥을 만져줘야지
겨우 온기라고 느낄지 체온이 1도 높은
동물과 우리의 차이
4
바닥
멍하니 끔뻑이는 물고기 눈동자
누구의 시에 나오던 가재미라 할까
지속 가능한 천국 백성이 되었으므로 무료해 죽어버린 시간이라 할까
침묵도 모든 경계의 운운도 불필요해진
이상한 적막 속에서
일식 삼찬을 먹는다
여자의 애교는 양심
미안해요 맨날 그렇고 그런 반찬만 줘서
위로인 듯 체념인 듯 들려오는 말
먹을 게 한두 가지 밖에 없을 때가 가장 맛있을 때야
더 기어오를 곳이 없어진 바닥이 가장 편하다.
20131215-20161030